책, ‘행복’으로 행복해지다
  •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
  • 승인 2006.12.08 17: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6년 출판·유통 시장 흐름/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세몰이…출판사 양극화도 두드러져

 
올해 출판시장을 상징하는 아이콘은 ‘행복’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만의 행복 추구’다. 지난 3년간 출판시장의 흐름을 정리해보면 ‘절박한 개인의 발견’(2003년), ‘개인의 자기 상상력 추구’(2004년), ‘임파워먼트’(2005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올해 역시 대중은 ‘자신’을 중심 화두로 삼았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않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어 기쁘고 넉넉하고 푸근함, 또는 그런 상태’이다. 그러나 올해 대중이 추구한 ‘행복’은 모자라는 것이 있어도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차원의 메시지이다. 스펜서 존슨은 올해 출간된 <행복>(비즈니스북스 펴냄)이라는 책에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성공은 행복에 뒤이어 찾아오는 것이며, 내가 행복해야만 온 세상이 행복해진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결국 ‘행복’이란 ‘성공’의 대체물이다. 2003년 대중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공고화에 따라 자신의 절박함을 깨닫고 ‘돈’과 ‘부자’에 관심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무리 돈과 부자에 관심을 두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개인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는 성공을 포기하고 부족하더라도 자기 만족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듯이 보인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펴냄)은 ‘행복’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여자와 남자 사형수는 만남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차차 삶의 의욕을 찾지만 결국 사형수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사형수는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1주일 가운데 세 시간, 목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의 ‘제한’된 시간을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여긴다.

성공학·심리학·논술서 인기

이 책뿐만 아니라 행복이라는 아이콘을 화두로 삼은 베스트셀러가 여럿이다. 이기적인 발상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 10가지 원칙을 제시한 <행복한 이기주의자>(21세기북스 펴냄), 법정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행복하다>(조화로운삶 펴냄),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을 다룬 <내려놓음>(규장 펴냄), ‘달콤한 육아, 편안한 교육, 행복한 삶을 배우는’ <엄마학교>( 큰솔 펴냄),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스타일리스트의 사진 에세이 <행복한 사람, 타샤 튜디>(윌북 펴냄), 행복 전문가 6인이 밝히는 행복의 심리학을 다룬 <행복>(예담 펴냄) 등등.

또 디테일한 삶과 편안한 죽음을 다룬 책들도 많았다. 죽음 직전에 놓인 수백 명의 ‘육성’을 담아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인생수업>(이레 펴냄)이 대표적이다. 또 재테크 서적들이 ‘경제학’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줄이어 출간되었는데 이런 흐름 또한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흐름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한스미디어 펴냄), <스무살 경제학>(다산북스 펴냄) 등 20대를 겨냥한 경제학 서적들이 인기를 끈 것은 경제(재테크)가 이제 젊은이들에게마저 ‘교양’의 반열에 올라왔음을 입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반기 출판시장을 주도한 것은 <마시멜로 이야기>(한경BP 펴냄), <배려>(위즈덤하우스 펴냄), <핑>(웅진윙스 펴냄) 등 성공을 이야기하는 실용 창작우화였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나만의 길, 즉 외길을 걸을 것을 촉구하는데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복잡한 현실이 이들 우화가 던지는 ‘촌철살인의 미학’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배려>는 <뜨거운 관심>(다산북스 펴냄), <달란트이야기>(토네이도 펴냄)와 함께 올해 한국형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보여준 삼총사라 할 수 있다.

책의 다양성·창의성 쇠퇴

20대, 특히 여성이 책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올해 드러난 또 다른 특징이다. “허영과 위선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이기적이라”고 요구하는 20대 여성을 겨냥한 자기계발서 <여자생활백서>(해냄 펴냄)는 잡지 기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놓았을 뿐 달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30만부나 팔려나갔다. 사실 이 시장의 개척 공신은 지난해에 출간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이다. 이 책은 올해 2권까지 출간되어 그 인기를 이어갔다. 30대 선배가 20대 후배에게 제시하는 ‘여우 같은 지침’이 담긴 이 책들은 ‘교양’이나 ‘인생론’과는 거리가 멀다. ‘내 생각이 옳았어!’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공감’의 트렌드에 부응할 뿐이다. 그들은 또 첨단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 신화와 신기루를 동시에 보여주는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문학동네 펴냄)와 ‘살아남는’ 길이 마음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몸의 스타일에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제시하는 <스타일북>( 시공사 펴냄)도 즐겨 읽었다. 이 책들은 변형된 자기계발서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 올해 출판시장에서는 지난해에 시작된 심리학 돌풍이 이어졌으며, 교육서와 논술 관련서가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로 대대적으로 출간되었다. 청소년 출판은 기지개를 넘어 과열 현상을 보여주었고, 글쓰기를 다룬 책들이 줄줄이 출간되었다. 아동 도서 시장은 논픽션의 증가가 두드러졌는데 초등과학학습만화 시리즈 <Why?>(예림당)는 5백만 부를 넘겼다.

출판의 양극화는 올해도 지속되었다. 상위 출판사의 베스트셀러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중소형 출판사의 침체는 작년에 이어 계속되었다.

올해 두드러진 성장세를 기록한 출판사는 지난해 매출 1백47억원의 두 배가 넘는 3백억 원을 기록한 웅진이다. 웅진은 올해 내부·외부 임프린트를 늘리며 <경제학 콘서트><핑><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등 대형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내놓았다.

주니어(아동,청소년)팀이 매출을 주도하던 시공사는 올해 내부를 하나의 체제로 정비하고 <스타일북><파라니아 이야기>등 베스트셀러를 내놓아 성인 단행본 시장에서도 위세를 회복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민음사·김영사·위즈덤하우스·21세기북스 등은 여전히 2백억~4백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유통 시장에서는 주요 단행본 회사의 온라인 서점 점유율이 30%를 넘길 정도로 온라인 서점 집중도가 강화됐다. 지난 8월27일과 9월3일 MBC 스페셜 2부작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서 소개되며 일약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자녀 교육 지침서 <부모와 아이 사이>(양철북 펴냄)는 예스24, 인터파크, 교보문고(오프라인서점 포함), 알라딘 등 인터넷서점 네 군데에서만 80%가 팔려나가기도 했다. 반면 대형서점 체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오프라인 서점은 ‘주저앉았다’고 할 정도로 침체됐다.

책을 사면 한 권을 더 주는 1+1 행사를 비롯해 온라인 서점에서는 마일리지·할인쿠폰·경품 등을 활용한 무한 할인 경쟁이 벌어졌고 그 바람에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의 양극화도 심각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아사 상태에 빠져들어 변변한 화제작 하나 만들지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팔리는 책 만들기에 급급했던 출판사들이 급기야 책 사재기를 대행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대거 이용하는 바람에 한국출판인 회의는 ‘인터넷 사재기’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회원사에 보내기도 했다. 그 결과 책의 다양성·창의성·혁신성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뒤집기 위해 도서 정가제의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