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세 영웅 베이징 점령하리라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6.12.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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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이원희·손혜경 선수의 ‘성공과 도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제15회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잇단 낭보를 전해오고 있다. 야구·축구·농구의 부진으로 가라앉은 대회 분위기를 유도·수영·사격 등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이 바짝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이들은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선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수영의 ‘마린보이’ 박태환이다. 17살로 경기고 2학년인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믿기 힘든 괴력을 뽐냈다. 자유형 2백m와 4백m에서 금메달, 1백m 은메달, 계영 4백·8백m 동메달 등 무더기 메달을 따냈다. 종목에 상관없이 헤엄만 치면 무조건 메달을 땄다. 2백m에서는 아시아신기록, 1백m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등 내용도 좋다.

메달과 기록뿐만 아니라 박태환에게 특히 놀라운 점은 단거리와 중장거리에서 모두 세계 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태환의 주력종목은 4백m와 1천5백m. 박태환이 지난 8월 캐나다에서 열린 범태평양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4백m와 1천5백m였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1백m에서도 은메달을 땄으니, 거리에 상관없이 메달을 따고 있는 셈이다.

수영에서 가장 짧은 거리는 50m, 가장 긴 거리는 1천5백m다. 중장거리와 단거리를 모두 잘 하는 박태환을 육상과 비교한다면 1백m, 2백m 뿐만 아니라 마라톤에서도 메달을 따는 것과 비슷하다. 박태환이 믿을 수 없는 괴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박태환에게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체육과학연구원 송홍선 박사에 따르면 근력 향상에 중점을 둔 것이 좋은 기록으로 이어졌다. 송박사는 “스피드를 올리기 위해서는 근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박태환의 기록이 단거리에서도 좋아진 것은 근력을 강화한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에 주력했다. 그 결과 훈련 무게가 30% 안팎으로 늘면서 근육량은 2.3㎏, 몸무게는 2㎏가 늘었다. 그리고 몸의 균형이 좋아지면서 좌우 밸런스도 잘 맞고 있고, 천부적으로 타고난 심폐 지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진 기자들이 수영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며 호흡하는 순간. 하지만 박태환의 경우에는 1백m를 헤엄치는 동안 두세 번밖에 고개를 내밀지 않아 사진 기자들이 애를 먹을 정도다.

박태환은 가는 곳마다 구름 같은 취재진을 몰고 다녔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전통적인 수영 강국이 일본·중국 기자들도 박태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들은 “박태환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드물게 세계 기록을 낼 수 있는 선수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박태환의 목표 역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다.

끔찍한 시련 딛고 금메달 딴 ‘오뚝이 사수’

이번 아시안게임 메달 레이스에 탄력을 불어넣은 것은 유도였다. 특히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5·KRA)의 활약이 눈부셨다. 73㎏급 이원희는 왼쪽 무릎이 탈골되는 악조건 속에서 금메달 약속을 굳게 지켰다. 그는 이번 금메달로 아시아선수권·세계선수권·올림픽·아시안게임을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원희가 이같은 업적을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은 지능지수(IQ) 148의 뛰어난 두뇌, 첫 번째 기술이 먹히지 않을 경우 잇달아 다른 기술을 쓸 수 있는 다양한 테크닉,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강인한 정신력이다. 선수로서 이원희의 남은 목표는 올림픽 2연패. 이원희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지만, 경기 내용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내용에서 100% 만족하는 경기를 하는 게 앞으로 목표다”라고 말했다.

 
베테랑 중에서는 사격 더블트랩 손혜경(30·국민은행)이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 2 개를 따내며 2002년 부산대회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다. 그녀는 ‘오뚝이 사수’라는 별명처럼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따 잔잔한 감동까지 주었다.

손혜경은 고등학교 시절 접시에 눈을 맞아 4시간 동안 큰 수술을 받았다. 결국 시력은 1.5에서 0.5~0.7로 떨어졌고, 지금도 눈에는 시신경이 죽어 생긴 검은색 점이 돌아다닌다. 사격 선수에게는 독수리같이 예리한 눈이 생명. 손혜경이 사선에 다시 선 것만으로도 인간 승리다.

또 개인사도 무척 고단했다. 1990년대 말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안이 빚더미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결혼을 계획하고 청첩장까지 만들었지만 “빚쟁이가 와서 결혼식을 망칠까 두렵다”라는 부모님의 눈물어린 걱정 때문에 혼인신고만 했을 뿐 결혼식은 취소했다. 이 때문인지 부모님은 그녀에게 전화할 때마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도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한편 한 달에 50만~60만 원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드리고 있다.

손혜경의 꿈은 두 가지다. 집 없이 떠돌고 계시는 부모님이 편히 사실 수 있는 집을 마련해드리는 것과 못다 이룬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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