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한국을 무릎 꿇리다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12.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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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봉 감독의 일본 배드민턴, 강호 한국·타이완 꺾고 은메달 차지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다른 나라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많았다. 그 중에 가장 반가운 사람은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42)이었다. 박주봉은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박주봉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직후였다. 당시 말레이시아 감독을 맡고 있는 박주봉은 일본의 러브콜을 받고 장고 끝에 수락했다. 물론 국내로 복귀하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사실상 마무리된 일본측과의 협상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국내에서는 ‘배은망덕한 X’라는 비난이 쏟아진 상황. 박감독은 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배드민턴은 세계 랭킹은 높지만 실력은 떨어진다. 작은 대회에만 나가면서 포인트를 따는 데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또 실업팀 입김이 너무 강해 대표팀 소집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만큼 어려웠다는 것이 박감독의 말이다. 박감독은 무엇보다 실업팀 감독을 설득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낼 자신이 있으니까 대표팀에 보내달라”라는 것이었다. 박감독은 배드민턴계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스타. 그의 명성을 너무나도 잘 아는 실업팀은 박감독의 요구에 흔쾌히 응했고 박감독은 그들의 기대에 메달로 화답했다.

일본은 이번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땄다. 결승에서는 세계 최강 중국에 패했지만 결승까지 가는 길에서 만난 강호들은 모두 일본의 제물이었다. 20년 넘게 공식 대회 단체전에서 일본에 지지 않았던 우리나라와 올해 세계 배드민턴 단체전에서 우리나라를 꺾고 3위에 올랐던 타이완이 일본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박감독은 “중국과 결승전을 치른 날이 나의 42번째 생일이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결승에 진출한 것만으로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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