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불행"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12.2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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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서울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면책 이후 불이익 없도록 제도 보완해야"
 
이진성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수석부장판사는 판사 15명을 이끌며 개인과 회사의 파산·회생 사건을 처리하는 책임자다. 최근 부쩍 바빠진 그를 지난 12월28일 만났다. 인터뷰는 오후 2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서울지방법원 남관 별관 302호에서 진행되었다.

개인 파산 신청자가 급증해 판사들의 업무 부담이 늘었다고 들었다.
2003년부터 전국적으로 세 배씩 늘어났다. 각 판사들 책상마다 관련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렇다고 법관이나 직원을 늘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2005년에 판사 한 명이 늘었을 뿐이다. 판사들은 평일 야근은 물론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절차를 간소화한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일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개인 파산 신청자들이 서울로 몰린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서울지방법원의 경우 77% 정도가 신청 7개월 내에 처리가 끝난다. 상대적으로 다른 법원들보다 처리 속도가 빠른 편이다. 파산 선고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원하는 결과가 빨리 나오는 법원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법원마다 기준·관행·속도가 달라 담당 판사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실시하는 등 이를 통일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런 노력 덕택인지 지금은 과거에 비해 서울로 몰리는 정도가 많이 완화되었다.

법원의 면책 허가율이 너무 높아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파산 선고와 동시에 면책되는 비율이 98%로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사를 해보니 파산 상태에서 파산 신청을 하기까지 1년 이상 걸린 사람이 신청자의 77%다. 노력을 기울이다가 해도 해도 안 되니 법원으로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비난할 수 있나.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최후 수단으로 삼는 것이 파산이다. 지난해 17만여 명이 파산 선고를 받은 일본에서는 이들 가운데 면책되지 않는 사람이 10명 남짓이지만, 우리는 올해 2천5백명 정도 된다. 혹시라도 그런 사례가 있을까봐 의심나는 경우가 발견되면 소관 부처에 사실 조회를 하는 등 철저하게 살펴보고 있다.

채권자들의 이의 신청도 늘었나
파산·면책을 받은 사람들의 채권자들은 개인보다는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금·보험회사 등이 많다. 그러나 이들이 파산 신청자에 대해 ‘면책을 허가해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는 전체의 3%에 불과하고, 면책 결정에 대해 항고한 것도 0.16%로 조사되었다. 2006년 1월에서 8월까지 면책 결정이 이루어진 1만7천5백84건 가운데 28건에 대해서만 항고가 이루어졌다.

파산·면책·개인회생 제도 등과 관련해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기본 절차적 제도는 어느 정도 완비가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면책 결정을 받은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이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금융권은 7년간 이들에 대한 정보를 관리한다. 똑같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의문이다. 또 기관들이 채권 추심 행위를 하는 것을 지금보다 더 엄격한 제재해야 한다.

파산·면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 아닌가.
그렇다. 파산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불행이다. 불이익을 받으며 사회·경제적으로 백안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면책은 경제적으로 다시 태어나 새 출발하는 것이다. 개인 문제 때문에 파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카드 발급 남발 등 사회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개인만 비난할 수는 없다.
포드 자동차 창업자 포드, 월트 디즈니, 영화배우 킴 베이신저, 허쉬 초콜릿 창업자 허쉬 등도 한때 파산했다가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가 재기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고 이들을 포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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