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뒤에 그가 있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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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 회장 측근 “지난해 7월 LG전자 휘센 냉장고 사건 일으킨 회사 실소유주는 장 전 회장” 증언

▲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ㅅ빌라. 장 전 회장은 이곳에서 중국 내 사업을 준비했다. ⓒ연합뉴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가 지난해 7월 ‘LG전자 휘센 냉장고 기술 유출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술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개발했다. LG전자는 이 기술을 자사 냉장고에 도입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기술이 KIST 출신 연구원인 고 아무개씨를 통해 중국에 유출될 뻔했다. 다행히 국정원과 검찰의 공조 수사로 기술이 유출되는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국정원과 검찰은 연구원 고 아무개씨의 해외 행적을 면밀히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고씨를 현장에서 검거해 구속 기소했다.

<시사저널>은 7개월여 간의 추적 끝에, 장진호 전 회장이 고씨가 운영한 아이나노라는 회사의 실소유주인 것을 확인했다. 회사 설립에 장진호 회장이 돈을 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장 전 회장의 측근은 “구속된 고씨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회사 설립에 자금을 댄 사람은 장 전 회장이었다”라고 귀띔했다. 이 측근에 따르면 고씨가 검찰에 구속되자 장 전 회장측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검찰이 아이나노 자금을 역추적하면 장 전 회장의 차명 계좌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장 전 회장이) 그동안 측근을 앞세워 해외 여러 곳에 차명 계좌나 회사를 운영해왔다. 검찰 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일부 조직이나 계좌를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도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혁 인천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당시 서울지검 첨단범죄수사 제1부 부장검사)는 “피의자 고씨로부터 장진호 전 회장이 회사에 투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라고 말했다. 

장 전 회장 측근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기술 유출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07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씨는 전문 경영인 자격으로 KIST가 보유한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벤처기업 P&I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우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 와중에 장진호 전 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고씨는 장 전 회장과 인연을 맺고 장 전 회장 소유인 방배동 빌라에 사무실을 냈다. 장 전 회장 측근은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일하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고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사용하던 사무실을 비워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 전 회장이 중국에 법인을 설립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방배동 빌라는 임시 사무실이었다. 당시 고씨가 개발하던 제품은 상용화 단계까지 와 있었다. 고씨가 관련 기술 유출을 시도한 것은 중국에 위치한 장씨의 비밀 사무실에 머무르던 때로 보인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 2007년 벤처기업 P&I를 퇴사한 뒤, 노트북을 반납하지 않고 외부로 유출했다. 노트북에는 LG전자 휘센 냉장고 기술이 담겨 있었다. 고씨는 중국 사무소로 넘어갈 때 노트북을 가져갔다. 고씨는 중국에서 장 전 회장의 비밀 아파트에 잠시 머무르다 중국 다이롄 시에 아이나노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 지난 2007년 LG전자 휘센 냉장고 기술 유출 혐의로 구속된 고 아무개씨가 당시 사용했던 명함. 표시된 주소는 장진호 전 회장이 사용하던 개인 사무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장 전 회장 강제 소환하려 했으나 추적 쉽지 않아 내사 종결”

주목되는 것은 장씨가 회사 설립 자금을 투입하게 된 배경이다. 이혁 부장검사는 “고씨가 진술한 이후 장씨를 강제 소환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장씨가 이미 기소 중지된 상태였고, 추적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내사 종결이 불가피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해명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고씨가 설립한 회사의 자금 흐름이나 진술만으로도 장 전 회장의 소재나 차명 재산 추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씨가 설립한 중국 회사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글 홈페이지 역시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다. 하지만 고씨의 명함에는 한국 사무소와 중국 사무소, 헤드오피스 주소가 나온다. 한국 사무소는 고씨가 머무르던 장 전 회장 소유의 빌라 주소이다. 이 빌라는 장 전 회장 둘째 부인인 이 아무개씨 명의로 되어 있다. 장씨는 지난 2006년 8월 셋째아들을 호적에 올렸다. 셋째아들의 어머니 난에는 부인 김 아무개씨가 아니라 둘째 부인인 이 아무개씨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이 빌라는 장 전 회장 일행이 캄보디아에 간 뒤에도 한국 사무실로 이용되었다. 베이징 왕징에 있는 중국 사무소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고가 아파트촌이다. 장씨는 이곳을 중국 사업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헤드오피스는 홍콩 가든로드(Garden Road)에 있다. 이곳은 장씨의 해외 담당 변호사 고 아무개씨가 운영하는 홍콩 업체 조이플스타의 주소와 일치한다. 고씨는 기자의 해명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의 측근들은 검찰이 밝힌 100만 달러가 조이플스타를 통해 빠져나간 것으로 확신한다. 장 전 회장은 홍콩의 조이플스타를 통해 아이나노 설립 자금을 마련했다. 아이나노는 이 세 곳을 근거지로 삼아 기술 유출을 주도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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