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사태 발생하면 정면 충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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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북측 ‘통행 차단’ 경고로 위기 몰려 ‘김태영 메모’에도 비상한 관심“추방한 뒤 폐쇄할 것” 관측도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지난 5월27일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현 정부는 북한을 너무 모른다.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에는 대외적인 효과와 실제 북한 내부에서 체감하는 아픔에서 차이가 있다. 센 듯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아프지 않은 것이 있고, 별로 안 센 듯하면서도 실제 상당히 아픈 것이 있다. 전자로는 유엔 안보리 회부, 자위권 발동, 한·미 합동 훈련 등을 들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큰 이슈이지만, 실제 북한 내부에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후자로는 우리의 대북 심리전이 있다. 북한은 여기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지난 2004년 북한이 먼저 요구해와서 여기에 합의한 바 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최근 북한 인민군의 군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남한에서의 심리전 방송 등에 북한은 상당히 예민해한다.”

북한은 5월26일 남측이 대북 심리전을 재개할 경우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출입을 봉쇄하면서 사실상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남한에 있는 우리 기업 관계자들이 개성으로 올라갈 수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우리 기업 관계자들이 남한으로 내려오지도 못하고 북한에 억류되는 셈이다. 지난해 3월 개성공단에서 북한에 의해 1백36일간 억류된 바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 아무개씨와 같은 경우가 수백 명에 이를 수도 있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실제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점 더 현실성 있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치킨 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맞서고 있는 남북한의 기 싸움에서 어느 한쪽이 먼저 약한 면을 노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던 ‘개성공단’ 문제를 북한이 기어이 대북 심리전과 연계해서 꺼내든 것도, 결국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협박 수단이 개성공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 협력의 상징’에서 졸지에 ‘남북 갈등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있다.

북한은 향후 모든 남북 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전시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선포했다. 이는 전시에 적국의 자산 동결은 물론, 적국의 국민을 억류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 우리 국민들을 억류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자칫 남북 간 전면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5월27일 “7백여 명이 넘는 인질을 구출하는 것은 통상적인 대테러 작전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25일 청와대 국민원로회의에 참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메모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사진기자들에 의해 포착된 그의 메모에는 ‘개성공단 내 인질 사태에 대한 조치 방안 강구’라고 적은 뒤 상황을 ‘소규모 인질시’와 ‘대규모 인질시’로 분류해놓고 있다. ‘대규모 인질시’ 대응 방식에 대해 김장관은 ‘공중 ?? 통제’와 ‘미 전력 대규모 전개’라고 적고 있다. 김장관의 메모에서 공중 통제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에 대해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정보 분야에서 근무했던 한 예비역 장성은 “이것은 제공권을 제압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는 곧 적의 대공화기부대 타격은 물론 적의 전투기 타격까지 감행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전면전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 쪽에서도 날로 강경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국방 분야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예비역 장성은 “김장관의 메모에서 ‘미군 전개’ 내용이 나온 것을 보면, 개성공단에 대규모 인질 사태가 발생하면 일종의 무력 시위를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을 동원해서 북한에게 ‘인질을 석방하라’라며 국제적 압박 효과를 노리겠다는 뜻이다. 이는 소극적 대응이며 실질적이지 못하다. 좀 더 적극적인 대응으로 ‘엔테베 작전’ 같은 대규모 특공 작전이 수행되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는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군의 강력한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5월2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할 경우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에서 남측 인원·차량에 대한 전면 차단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아래는 이날 도라산 전망대에서 촬영한 개성공단의 모습. ⓒ연합뉴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 ‘절대 철수 불가’ 입장 밝혀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 관련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북한으로서도 남한의 대북 심리전 재개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백 명의 우리 국민을 인질로 붙잡아두는 모험수를 쓸 가능성도 희박하다. 우선 중국이 등을 돌릴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 북한은 설 자리를 완전히 잃게 된다. 인질 사태를 벌이면 북한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북한의 초강수 카드로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개성공단 내의 남한 관계자를 모두 추방하고 공단을 폐쇄시키는 쪽이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물론 돌발 변수는 있다. 북한의 철수 통보에도 우리 기업이 못 하겠다고 버티거나, 또는 철수 과정에서 북한 체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면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절대 철수 불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문창섭 삼덕통상 대표는 5월26일 오후 개성공단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직후 가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늘까지도 공단 내의 분위기는 아주 안정적이다. 북한 근로자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불안하다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는 전혀 없다. 1~2년 전과 똑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기업이 개성공단을 지키고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갖고 있다. 현재로서는 폐쇄나 철수에 대해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학권 재영솔루텍 대표 또한 27일 전화 통화에서 “아직까지는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인질 가능성에 대해 그는 “그런 부분을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예측해서도 안 되고. 자꾸 언론에 그런 것이 보도되면…”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대표는 “과거 북핵실험 등의 상황보다 지금 분위기가 훨씬 더 심각하다. 현재 공단 체류 인원을 50%가량 줄이고 있는데, 사태가 더 악화되면 결국 전원 철수하라는 조치가 내려지지 않겠나”라며 한숨을 지었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이 폐쇄된다면 남북한 모두 경제적 타격을 입지만, 솔직히 우리측 손해가 훨씬 크다. 폐쇄되면 당장 입주 기업들이 아우성칠 것이고, 정부의 보상도 단기 처방일 뿐이어서 한계가 명확하다. 입주 기업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 되는 셈이다”라고 밝혔다.

 “이심전심으로 지방선거 때까지는 입 다물자는 분위기”
개성공단 입주 업체 사장의 토로

개성공단 입주 업체 사장인 ㅈ씨는 요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북 간 초긴장 대치 국면이 조성되면서 개성공단의 존폐가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 직후만 해도 개성공단 분위기를 제법 자세히 전해주었던 ㅈ사장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 조치가 발표된 이후인 5월28일 전화 통화를 할 때는 상당히 말을 아끼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그는 “머리 위에다 바위를 하나 얹어놓은 느낌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무거운 심정을 비유했다.

어떻게 지내나? |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방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다 입을 막고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이다. 

왜 지방선거까지 입을 막아야 하나? | 이심전심이 아닌가. (개성공단) 정보를 들을 만한 곳은 다 눌려 있다고 보면 된다. 기업인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앞뒤를 재고 계산해보면 말을 많이 하지 못한다.

우리 정부에서 함구령이라도 내렸나? | 공식적인 지시나 지침은 없었다. 기업인들이 알아서 기는 것도 있고, 정부에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기업인들이 왜 알아서 기나? | 기업인들이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업인의 생리로 갈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나중에 정부로부터의 보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산권과 직원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분위기는 어떤가? | 평상시와 같다. 되레 북한 관계자들이 더 호의적이다. 전보다 소프트해졌다. 평소 안 하던 농담들도 한다.

개성공단 폐쇄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 저쪽(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폐쇄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북한은 우리가 대북 방송을 할 경우 공단을 폐쇄하겠다고 했는데. | 그것은 그대로 될 것이다. 대북 방송을 하게 되면 시끄러워서 공장을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밤에는 관리자들이 제대로 잠이나 잘 수 있겠는가. 

개성공단의 북한 관계자들도 공단 폐쇄를 얘기하는가? | 직접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개성공단 공장을 폐쇄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폐쇄할 수도 있다.

폐쇄하면 우리 기업의 경우 경협 보험을 받을 수 있지 않나? | 경협 보험을 받는다 해도 실질적인 투자액의 3분의 1이나 2분의 1 정도밖에 못 받는다. 개성공단에 입주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 정도만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나? | 개성공단 문제는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원래 취지대로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기를 바란다.

이 상황이 오래 갈 것으로 보나? | 지방선거 이후에는 괜찮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예단할 수 없지만 두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지 않나.

두세 가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 업주들끼리 하는 얘기이다. 선거 끝나고 경색 국면이 완화되어서 공단이 존속되느냐, 강경 일변도로 가서 폐쇄되느냐 하는 시나리오이다. 어떻게 보면 후자를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

후자를 선호하는 까닭은 뭔가? | 이렇게 강공책으로 계속 갈 때는 기업이 거기서 생존할 수 없다. 지금도 대단한 리스크를 입고 있다. 일감이 다 떨어져 간판만 달아놓는 경우도 있는데….

현 정권과 전 정권의 대북 정책의 차이 때문으로 보나? | 사실이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바이어들이 많이 떨어져나갔다. 부실이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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