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새로운 세대의 진출 이뤘다”
  • 천안·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0.06.0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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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 인터뷰 / “충남 도정에 노무현 정부 때의 ‘비전 2030’ 적용하겠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 6월1일 충청남도 천안.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뭘 아는 것이 있어야지. 그래도 안희정이 가슴을 싸하게 하는 맛은 있어요.” “왜 안희정을 지지하느냐”라고 묻자 거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싸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그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가슴을 ‘싸하게’ 만드는 역할을 도맡았다.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감옥에 갔고, 보상을 받기보다는 세상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낭인으로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그는 누구보다 슬퍼했고,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절규했다. 안희정 민주당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본부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김종민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처음에 출마 선언을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고 보았다. 대통령의 측근으로만 알려졌지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맨손으로 충남에 내려와서 세대와 이념, 지역주의의 장벽을 6개월 동안 두드렸다. 그리고 6월3일 새벽, 안당선자는 42.3%의 득표율로 충남지사에 당선했다. 충남을 대표하는 차세대 정치인이 새로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기자는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6월1일과 선거일인 2일, 그리고 숨 가쁘게 진행된 개표와 당선 확정 발표가 있던 3일까지 2박3일간 안당선자를 밀착 취재했다. 안당선자와의 인터뷰는 공식 선거운동이 끝나기 직전인 6월1일 늦은밤에 진행되었고, 당선이 확정된 직후 그의 벅찬 소감을 듣는 것으로 방점을 찍었다. <시사저널>이 안당선자를 특히 주목한 이유는 차세대 정치 지도자, ‘40대 기수론’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당선한 것은 새로운 세대가 진출한 것이다”라며 세대교체론을 역설했다. 

안희정’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첫 대중 선거가 이제 끝났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웠다. 사람에 대해서도 배웠고, 내 마음에 대해서도 배웠다.

마음? 어떤 마음을 말하는가.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 나의 견해를 세우고, 내 견해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정치 지도자는 서로 다른 견해와 대화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선거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과 지지하는 사람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일이다. 내 마음에 상처로 간직하느냐, 아니면 서로 다른 견해를 통합으로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을 훈련받는 기회였다.

그 이전에 참모로 선거를 치렀을 때는 몰랐나?

그때는 못 느꼈다. 내가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니까. 난 그냥 술 먹고 싸워버려도 되고.(웃음)

후보보다 주변에서 더욱 화내는 경우도 많지 않나?

물론 그런 경우도 많다. 대신 무대에 선 사람들은 화내면 손해 본다. 꾹 눌러야 한다. 지도자가 되려면 다 들어야 한다. 나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난 그것을 잘해야 수준 높은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탈지역주의’를 충남에서 외쳤는데, 평가해보면 어떤가?

이곳 어른들이 볼 때는 (내가) 왼쪽으로 가 있는 사람인데, 승리했다. ‘지역주의’나 ‘진보 대 보수’를 뛰어넘는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지역주의라는 틀로는 이제 더 이상 충청도의 이익도, 대한민국의 이익도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안정이냐 변화냐, 안보냐 개혁이냐를 물을 때 대부분 보수는 안보론과 안정론을 얘기했고, 야당은 변화와 개혁을 얘기했다. 이러한 20세기식 안보와 안정론이라는 것을 이제는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충남의 아들이어서 당선된 부분도 있는 것 아닌가?

좀 복합적인데. 어느 하나의 용도로만 사람이 특정될 수는 없지 않나. 나의 당선은 새로운 세대의 진출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자기 것을 모두 내던져 대학 교육을 시킨 첫 세대가 우리 세대이다. 그런데 자식 세대가 그냥 얼치기로 부모 세대처럼 흉내 내면 아무도 안 뽑아준다. 자기 소신을 가지고 선택당해야 한다. 기존 세대와 비슷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해달라고 선택된 것이다.

세대교체를 결실로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언론에서 20, 30, 40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할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실제적으로 동네에 가보면 나에게 덕담을 해주는 분들은 70대 부모님 세대들이다. 충청도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새로운 세대가 나서서 일해보라고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나는 기존 정치인과 다르게 해보겠다고 얘기를 해서 기회를 얻은 사람이다. 양김씨의 40대 기수론 이후 40년 만에 나온 세대교체라고 생각한다.

16명의 시·도지사가 모이는 청와대 모임에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앉아 있는 그림이 흥미로울 것 같다.

나는 이대통령이 실패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조언자가 되고 싶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고통을 뜻한다. 가능하면 내 나름대로 분권과 균형 발전, 민주적 리더십과 재정, 복지나 환경 등의 문제에 대해 지방의 몫을 분명히 내놓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역할과 사명이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안희정은 민주당 주류의 한 축인데도 민주당을 변화시키는 역할에서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다.

나도 아쉽다. 솔직히 내가 가진 판돈이 그것밖에 안 되었다. 변화시킬 만큼 안 되었다. 최고위원으로서 내 역할은 ‘존재’, 그 자체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당장 판을 정리해서 새로운 무대를 꾸민다? 불가능하다. 존재하고 생존해서 충청도에 뿌리를 내리고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지 대안 없이 무조건 싸우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세균 대표님, 나 믿고 따라 오십시오”, 이 정도 힘이 있다면 해야 한다. 내 몫만큼은 한 것 같지만 더 잘하지 못했다는 지적일 것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제는 이전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목소리를 크게 낼 생각이 있나?

천천히 할 생각이다. 당분간은 도정에 집중해야 한다. 지방 정부의 성과에 따라 내 힘 역시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지방 자치와 분권을 거스르는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시·도지사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방 정부의 재정과 권한을 줄여버리고 기업 유치에 대한 기업 이전 정책도 취소해버리는 상황이라 시·도지사 입장에서는 무엇으로 성과를 내야 할지 고민스럽다. 나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지방 분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통령처럼 권력이 집중되어서는 어떤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무사히 걸어나오기 힘들다. 결재 도장을 혼자 가지고 있다. 결재 도장 찍을 때는 기분 좋을지 몰라도 그것이 다 부메랑이 되어서 대통령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임기 말의 대통령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의 분권을 형성해야 된다. 분권을 만들자고 하는 도전이다.

외부에서는 정치인 안희정으로 거듭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그늘을 어찌 벗어나겠나. 내가 우리 아버님 아들인 것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내 정치 이력에서 ‘노무현’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애써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영역은 아니다. 다만, 이번 충남지사 도전과 승리가 노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승리한 것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충청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겠다는 뜻이 충남도민들로부터 선택받은 것이지 노대통령을 모셨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떤 면에서는 홀로 서기라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참 어렵다. 정치적 철학과 소신에서 노 전 대통령을  뺄 수 없다. 내 몸 안에 그동안 먹어온 많은 영양소를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나는 2010년 충청도민들이 요구하는 바, 그 부름에 따라서 선택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역사를 넘어간 2010년의 선택이다. 노 전 대통령 시대에서 어떤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균형 발전의 후퇴, 민주주의의 후퇴, 복지 재정의 후퇴 등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기치를 들어 선택받았다. 영원히 노 전 대통령은 내 마음속에 있고, 나는 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셈이다.

노무현 정신·노무현 가치를 도정에 어떻게 반영할 생각인가?

노무현 정부 때 수립했던 비전 2030이라는 국가 운영 목표가 있다. 비전 2030을 실천할 생각이다.

비전 2030은 이명박 정부에서 폐기되지 않았나?

이명박 정부가 폐기하려 해도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나. 중국이 쫓아오고 선진국이 도망가는 샌드위치 형국인 대한민국 내에서 R&D와 사람 투자, 안 할 도리가 없다. 그런 환경에 맞는 국가의 장기적 재정 계획이 비전 2030이다. 그것에서 못 벗어난다. 이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노무현 정부 때의 간판이 싫으니까 이름만 떼어낸 것이다. 내용은 똑같다.

너무 정책적인 부분으로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웃음) 노무현 정신과 가치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강자는 바르게 처신하도록 하고 약자에게는 힘을 주고. 서울과 수도권은 자꾸 커지고 있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기업이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좋은 일자리를 통해서 적절하게 소비할 수 있는 중산층과 급여 생활자들을 양산시키지 않고서는 기업들이 자기 살 파 먹는 짓이다. 이런 것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정의이다. 농업·노인·아동·장애인 분야가 그렇다. 그리고 말 못하는 자연 환경도 그렇다.

선거 기간 동안 악수하고 다닌 유권자들에게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솔직하고 정직한 심부름꾼이 되겠다. 나 스스로가 힘에 부치면 힘에 부친다고 얘기했다. 게으르고 업무를 나태하게 하면서 속이지 않겠다, 그런 말을 했다. 거짓말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면 좋은 지도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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