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무의식에서 ‘신세계’ 찾아내다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8.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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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소재와 공간 배경을 빼면 아주 단순한 구조…‘펜로즈 계단’ 이론 차용한 창의력 돋보여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 돔 코브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친다. 최고의 실력으로 생각을 훔치는 그는 꿈속에서 다시 꿈속으로, 또다시 꿈속으로 들어간다.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타인의 꿈과 접속한 후 생각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거나 생각을 심기도 한다. 한마디로 생각을 조작하는 인셉션(Inception)의 설정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생각을 심는 것은 그의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혹은 현실 세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꿈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 속의 수많은 꿈속 전투는 생각을 조작하려는 침입자와 그것을 막으려는 잠재의식 간의 전쟁이다.

<인셉션>은 꿈이라는 소재와 공간 배경을 벗기고 보면 아주 단순한 영화이다. 즉, 무의식의 세계인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주입한다. 이것이 진짜라면 소름 끼칠 기술이다. <인셉션>은 바로 이 무의식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 작용이 곧 인간의 마음 작용이다. 의식이 사회적인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에 부응해 행동과 욕망을 통제하고 포기하게 한다면, 무의식은 제한 없는 만족을 요구하는 원초적 소망이자 의지를 벗어나는 정신적 작용이다. 꿈만이 아니라 말실수, 농담, 망각, 실착 행위 등은 다 무의식의 작용이다. 따라서 의식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영화 의 한 장면.

꿈에 대한 해석을 학문으로 체계화시킨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꿈 연구를 가리켜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라고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꿈의 의미는 한마디로 ‘소원 성취’이다. 내면의 억압된 갈등이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은 소망이 꿈이라는 형태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나타나면 사람들이 자기 무의식의 세계에 놀라게 되므로 뇌 속에서 각색된 스토리를 갖고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꿈은 달리 말해 이성적 의지와 무의식적 소망의 갈등과의 타협이며, 무의식적 소망을 대리 충족시킴으로써 갈등을 완화시킨다. 프로이트는 의식은 성욕이나 열등감, 폭력성 등을 무의식의 영역에 가두어 둔다고 말한다. 그래서 밤마다 꿈을 통해 일종의 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꽤나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한다. 의식과 무의식 둘 사이의 상호 작용에서는 잠재의식이 가로막이 역할을 한다.

사람의 잠재의식은 흔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빙산의 형태와 비교된다. 표면에 올라온 부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수면 밑에는 거대한 덩어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식도 이와 같아서 표면 의식은 현실적인 판단과 계산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잠재의식은 표면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그 사람의 성격과 성향, 감정을 조절한다. <인셉션>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에 대한 잠재의식의 심리적 저항을, 침입자와 저항군의 총격전으로 형상화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엿보는 방법으로 꿈, 최면 등을 제시했다. 이를 이용하면 잠재의식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그의 꿈이 보여주는 무의식을 들여다본 뒤에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의 이중적 속성이나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억압하고 회피하는 면을 꿈을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영화 의 한 장면.

소재들이 여러 설정들로 정교하게 얽힌 영화

<인셉션>은 복잡한 영화이다. 꿈과 상상, 생각에 대한 여러 가지 설정들이 매우 정교하게 얽혀 있고, 꿈이 다 그렇듯 사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포개진다. 이는 프로이트의 ‘꿈의 압축 작용’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일반적으로 꿈의 이미지는 낯설고 어색하다. 예컨대 꿈에 나타나는 사람은 특정한 인물이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이미지가 압축되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이미지가 합쳐져서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우리가 실제로 꿈을 꾸는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수많은 일을 겪은 것처럼 기억되는 것은 이렇듯 여러 요소가 꿈속에서 한꺼번에 합쳐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꿈의 압축 작용이다. 책을 언뜻 읽을 때 중간 중간의 굵은 글씨가 눈에 띄지만 행간에 많은 의미가 들어 있듯, 꿈의 이미지도 그 속에 중첩되어 있는 무의식적 표상들이 복합적이며 무궁무진하다. 꿈 해석은 이처럼 압축된 것을 풀고 표상들 간의 연관성을 찾는 작업이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침입자들이 ‘꿈속의 1시간은 현실의 3분’으로 계산해, 그 짤막한 꿈속에서 시간의 속도 차를 활용해 수많은 일을 해낸다. 우리의 두뇌는 꿈을 꿀 때 평소보다 약 20배쯤 빠르게 활동한다. 꿈속에서 꿈속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다시 첫 번째 꿈 속도의 20배가 된다. 예를 들어, 현실의 10초를 꿈으로 계산한다고 하자. 현실에서의 10초는 첫 번째 들어간 꿈속에서는 약 3분, 꿈속의 꿈에서는 60분이 된다. 따라서 꿈속에 들어간 주인공이 생각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거나 생각을 심는 일에 성공하기 위해 계속 머리를 써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움직인다. 꿈속의 꿈으로 한 단계씩 들어갈 때마다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이 디테일한 설정은 이 영화 최고의 시퀀스를 잡아내는 열쇠이다. 정말로 ‘억’ 하는 감탄사가 이어진다. 외신들이 <인셉션>을 호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셉션>에서는 주인공들이 꿈속에서 꿈속으로, 또다시 꿈속의 꿈속으로 다층적 세계를 침입한다. 그 단계마다 등장하는 것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펜로즈 계단’(Penrose stair)이다. 펜로즈 계단 개념은 끝이 없는 무한한 회전 혹은 이동, 연속성을 의미한다. 코브의 동료 아서는 영화 후반에 이 계단을 활용해 적을 물리친다. 이 무한 계단은 영국의 수학자이며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실제로는 불가능한 입체이다. 그는 3차원 공간에서는 실제로 만들 수 없지만, 2차원 평면에 오류 없이 그릴 수 있는 삼각형을 고안했다. 이 삼각형은 단면이 4각형 입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차원 그림으로만 가능한 도형이다. 왜냐하면 삼각형의 각 변을 이루는 평행한 면들은 각 꼭짓점에 이르면, 서로 다른 위치에서 본 직각의 모서리이기 때문이다. 각 변을 이루는 막대는 모두 서로 직각을 이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각형을 만든다. 이러한 구조의 계단은 끊임없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한 회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로저 펜로즈의 이 불가능한 삼각형을 영화적 장치로 끌어들여 영상으로 재현해낸 창의력은 정말 놀랍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런 뛰어난 창의력이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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