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초상’ 상조업계, 새판 짜인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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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비리 뽑힐 때까지 수사” 천명…에스원·농협·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진출설 ‘모락모락’

 

▲ 업계 2위인 현대종합상조의 회장과 대표이사가 구속된 지난 11월1일 서울 여의도 현대종합상조 사무실 로비에서 직원들이 회사 로고를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상조업체에 가입한 회원 수는 지난 9월 말을 기준으로 약 2백75만명에 달한다. 고객 불입금(선수금) 잔고는 1조8천5백억원이다. 보통 1가구를 4인 기준으로 보면 전체 인구 1천만명이 상조에 가입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히 ‘국민 1인 상조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조업체들은 온갖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졌고, 경영 상태가 엉망이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받은 업계 상위권 업체인 보람상조, 현대종합상조, 국민상조, 한라상조 등이 이러했다. 검찰은 이참에 상조업체들의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벼르고 있다.

차맹기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장은 기자에게 “상조업체들에 대한 비리 수사를 계속할 것이다. 기존의 관행이 바뀔 때까지 결코 수사를 멈추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이미 몇몇 업체들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향후 검찰 수사의 향방에 따라 상조업체들의 경영진 상당수가 형사 처벌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조에 가입한 고객들은 “상위 업체가 이럴진대 나머지 업체들도 뻔한 것 아니냐. 혹시 내 돈이 떼이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상조업체들은 왜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것일까. 지금까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상조업체들의 실체는 ‘하수구’에 비교될 정도로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특히 경영진들의 비리가 도를 넘고 있었다. 이들은 고객의 돈을 마치 주머니 쌈짓돈처럼 물쓰듯 사용했다. 부동산을 구입하고, 호화 주택에 살며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녔고, 자녀들의 유학비도 고객의 돈을 빼내 조달했다. 또 차명 계좌 등을 이용해 거액의 고객 돈을 빼돌리고 정기예금이나 펀드 등에 들기도 했다. 고객의 돈을 마치 ‘개인 금고’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경영진이 야금야금 돈을 빼내는 사이에 회사는 경영 부실에 빠졌다.

상조업체들의 부정과 비리는 제도권의 관리·감독 밖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업체들을 관리하는 주무 기관도 없었고, 가입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보증 시스템도 전무했다. 이러다 보니 자본금 5천만원만 있으면 누구든지 상조업에 진출할 수 있었고, 그 뒤부터는 경영진 마음대로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할부거래법 도입, 영세 업체 파산 도미노 예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전국 상조업체는 3백37곳이다. 2003년 53개에서 7년 만에 무려 2백84개가 증가했다. 업체 숫자와 경영 상태는 딴판이었다. 총 자산이 100억원 이상인 상조업체는 23개(7.0%)인 반면, 자산이 10억원 미만인 업체가 2백19개로 전체 67%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10개 업체 중 일곱 곳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마다 소비자 피해만 급증했다. 2005년 2백19건에서 2008년에는 1천3백74건, 2009년에는 2천4백46건으로 늘어났다.

재정이 열악한 업체들은 회원을 끌어들인 후 그 납입금을 가지고 기존 회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일명 ‘돌려 막기 식’이다. 신규 회원 모집이 잘 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존 회원들에게 돌아갔다. 일부 부실한 상조 업체들은 고의 파산하고 선수금을 떼먹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 뒤늦게 정부 당국이 관리·감독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18일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할부거래법) 개정법을 공포하고, 설립 요건 등을 까다롭게 변경했다.

우선 자유업이던 상조업을 ‘선불식 할부거래’로 명시했다. 등록제를 도입해 자본금 3억원 이상인 회사만 등록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자본이 영세한 업체들이 진입하는 것을 차단했다. 다만 기존 업체들은 1년간 등록을 유예했다. 또한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켜 할부거래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5년간(벌금형은 3년) 다시 회사를 차려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상조업체들의 자산·부채 등 재무 상태와 선수금 합계액 및 선수금 보전 방법, 취급 상품 등도 공개하도록 했다. 선수금의 50%를 금융 기관에 예치하거나 지급 보증 또는 보험이나 공제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장치를 대폭 강화하고 재무 상태 등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서민들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상조업계 내부에서는 지각 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상조업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할부 거래법이 시행되면서 업체들도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폐업하는 업체도 속출할 전망이다.

특히 대기업의 상조업계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일대 지각 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이미 지난 1월에 교원공제회의 상조 서비스인 ‘예다함’이 진출했다. 예다함의 자본금은 5백억원이다. 처음부터 파격적인 서비스를 내세우며 상조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삼성그룹의 보안회사인 에스원과 농협, 대우조선해양상조 등도 상조업계 진출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홍건 에스원 홍보팀 차장은 “올해 초 ‘상조업’을 신규 사업에 등록하면서 상조업 진출 얘기가 나왔다. 아직은 검토 수준이다. 당장 내년에도 ‘한다’ ‘안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재향군인회도 조계종과 손잡고 상조업에 진출했다.

상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조업의 자본 흐름을 보면 적자가 날 수 없는 구조이다. 장례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회원 납입금의 절반도 안 되기 때문이다. 장례가 발생하기 전까지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금이 납입되기 때문에 그 돈으로 엄청난 이자를 불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경영만 제대로 하면 상조업은 ‘돈 되는 알짜배기 사업’이다”라고 강조했다.


 ‘상조’ 가입하면 오히려 손해 본다?

‘상조에 가입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요즘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 가운데 하나이다. 갑자기 일을 당하게 되면 그나마 ‘상조업체’밖에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상조업체들의 비리가 터지면서 상조업체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가입이 꺼려진다.

일단 ‘상조’는 보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험은 사고가 나면 그 순간에 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조는 그렇지가 않다. 몇십 회를 불입하더라도 사고가 나면 일시불로 잔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다. 상조에 가입하면 미리 돈을 나누어서 낸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또 하나는 상조업체가 장례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업체들은 광고를 통해 모든 물품을 ‘보장’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실제로는 꽃, 관, 수의, 도우미 정도를 제공받는 데 불과하다.

상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보통 상조의 총 납입금은 3백50만~4백만원 정도이다. 그런데 원가를 따져보았을 때 장례 때 사용하는 꽃, 관, 수의, 도우미를 합쳐보았자 100만원이 채 안 된다. 고객이 낸 불입금의 3분의 1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상조회사가 가져가는 식이다. 상을 당했을 때 상조업체에게 돈만 주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굳이 미리 상조에 가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을 은행에 넣어 놓고 이자를 받는 것이 더 낫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들지 마라”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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