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치고 나가기’ 작전 묘수일까, 악수일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1.0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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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 경선에서 실패한 학습 효과 때문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전격 발족시키면서 큰 걸음을 내디뎠다. 대선 출정을 사실상 공식화한 셈이다. 박 전 대표측이 노리는 것은 ‘조기 대세론 확산’이다. 그의 승부수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 2010년 12월27일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가운데)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2007년 8월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은 한마디로 ‘친이계’의 치밀한 전략에 따른 대역전극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친박계’는 손 놓고 그냥 당한 것이다. 전략도 전술도 없었다. ‘의원 포섭’은 물론이고, 대의원 확보를 위한 노력에서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원래 친박 성향이었던 DR(김덕룡 현 국민통합특보)도 막판에 친이 쪽으로 돌아섰는데, DR이 장악하고 있던 당내 호남 지역 대의원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경선을 앞두고 DR이 호남 대의원들과 화합을 하자, 친박계 쪽에서 뒤늦게 알고 득달같이 달려와서 ‘김선배, 이럴 수가 있나’라고 흥분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거기서 승부는 끝난 것이다.”

 

여의도 등에 예비 캠프 성격의 사무실도 운영

중도파로 분류되는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이 기자에게 들려준 2007년 8월 경선 비화이다. 그에 따르면, 대선을 2년 앞둔 2006년 초만 해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비해 당 밖에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당내 세력은 현저히 열세였으나, 이재오 의원이 중심이 되어 적극적으로 의원들을 포섭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당내 무게 중심이 서서히 친박에서 친이 쪽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DR만 해도 2006년 4월 공천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계 은퇴까지 고려할 정도로 코너에 몰렸을 때 손을 내민 것이 친이계였다는 것이다. 영남 지역 일간지의 한 중견 언론인은 “비단 DR뿐만이 아니다. 당시 영남권 의원 중에는 박 전 대표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가 많았다. 그런데 ‘얼음공주’라는 별명의 박 전 대표가 먼저 손을 안 내미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마치 ‘이너서클’처럼 폐쇄적으로 나오고, 그런 터에 친이계가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서니까 그쪽으로 말을 갈아타서 오늘날 친이계 핵심이 된 이들도 많다”라고 전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12월27일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전격적으로 발족시킨 것은 그런 면에서 크게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대선 출정식을 사실상 공식화한 셈이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전 대표답지 않은 파격 행보에 친박계 의원들과 주변 참모들도 다소 당황해하고 있다. 사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여의도와 강남 등에 박 전 대표의 예비 대선 캠프 성격의 사무실이 비밀리에 운영되어왔고, 몇몇 스터디 모임도 존속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인사 ㄱ씨는 “원래 디데이는 올 3월이었다. 그때 우리 사무실도 공개하고, 주변에서 박 전 대표를 돕는 정책 자문 그룹들도 서서히 모습을 나타낼 계획이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그중의 하나로서 당초 예상보다 좀 일찍 공개된 것일 뿐, 다른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정책과 정치, 조직은 별개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그래서 이번 연구원 출범식에도 의원들은 일부러 배제한 것으로 안다. 여기에는 ‘향후 2012년 대선은 정책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김용환 전 장관 등 원로 자문 그룹의 충고가 박 전 대표를 움직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외곽 조직을 담당하는 이 사무실에서는 이미 수도권과 영남은 물론, 충청·강원·호남까지도 조직 정비에 상당 부분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친박계인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1월 중으로 광주·전남 지역에서 조직 결성을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친박계 무소속인 정수성 의원도 별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D와도 어느 정도 교감 확보했다”

박 전 대표측이 노리는 전략은 ‘조기 대세론 확산’이다.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표 외에 대안이 없다는 점을 여권 전반에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2위 그룹들의 추격 의지를 아예 꺾을 수 있게 확실히 더 치고 나가야 한다는 전략이다. 2위 그룹 주자 가운데 한 명인 김문수 경기도지사측의 한 인사가 “아마도 김지사나 오세훈 시장 등이 현재 도정과 시정에 발목이 잡혀 있고, 이재오 장관 역시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표가 먼저 치고 나가더라도 당장 뒤를 쫓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라고 보여진다”라고 분석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2011년 상반기의 정치 일정도 고려했음직하다. 2월에 국회가 열리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인준 문제로 여야 간에 또 한 차례 격돌이 예상되고, 4월에는 재·보선이 실시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내에서 또 ‘조기 전대론’이 대두할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조기에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2011년부터 본격적인 선거 관리 국면으로 전환된다고 보아야 한다. 당장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은 불가피하고, 혹시라도 현재 권력인 청와대가 힘이 약화되면 자기 생존에 민감한 의원들은 급격히 미래 권력으로 쏠리는 현상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박 전 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대권 주자들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호하리라고 본다. 2011년 하반기부터는 대권 레이스가 더욱 본격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친박계측 인사들은 “‘대세론’을 위한 1차 관건은 친이계의 결속력 와해에 있다”라고 보고 있다. 친박계 내의 정무통으로 통하는 국회 인사 ㄴ씨는 “현 상태로는 경선을 하면 무조건 필패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분포도가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나. 따라서 100여 명에 이르는 친이계를 반 토막 내든지, 3분의 1 토막이라도 내야 한다. 친이계를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SD(이상득 의원)와는 어느 정도 교감이 있다고 본다”라며 구체적으로 이의원을 거론하기도 했다. ㄱ씨는 “SD는 원래 온건파이다. 이재오, 정두언 등과는 성향이 다르다. 오히려 우리와 더 가깝다. 이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안정적으로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SD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에게 더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의 지나친 원칙과 소신이 우리 입장에서는 때로 답답할 때도 있지만, SD 입장에서는 신뢰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독대도 SD가 적극 주선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친박계 주변에서는 “친이계 의원들 중 이미 몇몇은 ‘주이야박’(晝李夜朴)을 하고 있다. 이들이 앞장서서 박 전 대표와 SD측 사이에 연결을 도모하기도 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비공개를 전제로 친이계의 ㄱ의원과 ㅈ의원을 대표적으로 거명하기도 했다.

 

지지율에 큰 변화 없으면 역풍 맞을 수도

이에 대한 SD측의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SD의 한 측근 인사는 “정치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향후 상황을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의원이 그동안 여권의 화합을 위해 친박계의 목소리에 가장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온 것은 맞다”라고 밝혔다. 반면 SD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SD는 대통령의 형님이시다. 그가 움직이면 자칫 그것이 곧 청와대의 뜻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노련한 이의원이 그것을 모르겠나. 절대 당내 경선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모처럼 ‘승부수’를 던졌지만, 오히려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특정 대선 주자가 장기간 선두를 독주하는 것은 절대 유리하지 않다. 집중 타깃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대통령 역시 마지막까지도 절대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박 전 대표가 노리는 것처럼 설사 친이계가 와해되어 한나라당 경선이 싱겁게 끝나더라도, 그때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야권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야권 경선에서 극적인 승부가 연출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특히 국민들은 ‘역전의 희열’을 느끼기를 원한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장기간 선두 독주를 하다가 막판에 뒤집어진 것이 그 좋은 사례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조기에 불을 지폈음에도 지금의 30% 지지율에 변화가 없으면 오히려 ‘한계론’이라는 역풍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SD계 의원은 “향후 박 전 대표는 빠른 시일 안에 정체된 ‘박스 지지율’ 30%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설사 3자 대결로 가더라도 박 전 대표는 어렵다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박 전 대표를 대세로 믿고 의원들이 그 블랙홀에 빠져들 수 있겠나. 제아무리 선두라 한들 현재와 같이 정체된 지지율로는 절대 안 된다”라고 단언했다.

이런 걱정은 친박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온다. ㄴ씨는 “자꾸 우리끼리 대세론, 대세론 하는데, 솔직히 지금의 30% 지지율로 대세론이 어떻게 되나. 20~30대 젊은 층에서는 7 대 3의 비율로 여전히 박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이회창 대표는 한때 지지율이 60% 가까이 육박했다. 그래도 결국 뒤집어지는 것이 선거이다. 최소한 지지율 50%에는 육박해야 대세론이 먹힐 수 있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의 조기 대선 행보는 지금의 정체된 30% 박스 지지율을 어떻게 하든 탈피하겠다는 절박한 몸부림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12월27일 발족한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싱크탱크로 불린다. 박 전 대표가 회원으로 참여했고, 그와 가까운 학계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경제 교사로 불리는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제외하고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지난 12월29일 이의원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했는데.

정치인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연구 전문가로 참여한 것이다. 앞으로도 전문 지식이 있고 그것을 활용해 연구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연구원이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싱크탱크는 아니다. 공개적으로 연구하고 결과물을 나누는 싱크탱크가 어디 있나. 국가미래연구원은 완전히 공개형·개방형이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소들은 누군가 돈을 내고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결과물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여기는 전문 지식인들이 자신의 재능(전문 지식)을 사회에 기부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박 전 대표와 친한 사람들이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친한 것과 누구 한 사람을 위해 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국가미래연구원은 공동 작업을 통해 정책을 개발하고 결과물은 공유한다. 누구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그동안 산재해 있던 것을 모은 것이다. 서로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 지식을 나누고 연계 관계를 강화해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함이다. 일종의 통섭 학문을 이용한 융·복합 정책 개발로, 국민 행복과 국가 미래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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