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난맥’은 너무 깊고…어깨 무거운 ‘홍준표 체제’
  • 감명국·김회권·조현주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7.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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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비주류’ ‘독불장군’으로 불리던 홍준표 의원이 당 대표가 되어 한나라당호의 키를 새로 잡았다. 하지만 그 앞에 가로놓인 바다는 높은 파도에 휩싸여 있다. 당·청 간의 갈등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홍대표를 바라보는 정계 원로와 전문가들의 시선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과연 홍준표 대표가 이끌 한나라당은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7월7일 자정 무렵. 지구 반대편인 남아공 더반에서 들려온 “평창!”이라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짧은 외침은 한반도를 들썩이게 했다. 강원도 평창이 삼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순간, 누구보다 가슴을 쓸어내린 곳은 청와대였다. 그 시간 이명박 대통령은 더반 현지에서 이건희 IOC 위원, 조양호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등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지난 7월2일 남아공 출국길에 나선 이대통령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7월8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IOC 총회 전)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려 애썼으나, 판단이 서질 않았다. 분명히 (올림픽 유치) 가능성은 컸지만, 그렇다고 자신할 상황도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라는 어두운 전망도 제기되었다. 대통령까지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했는데, 만약에 또 안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한 이대통령의 집념 그리고 청와대의 노심초사는 역설적으로 현 국정의 난맥상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더 강하게 부각시켜주는 대목이다.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린 여권으로서는 ‘평창’이야말로 절박한 국면 전환용 돌파구였던 셈이다. 이날 강원도 평창군을 방문해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 개최지 선정 발표를 지켜보았던 홍준표 신임 한나라당 대표는 “내가 당 대표로 선출된 지 이틀 만에 또 이런 경사스런 일이 생겨서 기쁘다”라며 활짝 웃었다.

‘만년 비주류’ ‘독불장군’으로 불리던 홍준표 전 최고위원이 7월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자 청와대의 반응은 지극히 공식적이었다. “홍대표가 경륜과 식견을 갖추고 있어 당을 잘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내심 기대했던 원희룡 전 사무총장이 4위에 그친 것에 대한 실망감도 감추지 않았다. ‘무너진 친이계, 친박계 당권 접수’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향후 당·청 관계의 험난한 여정이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홍준표 대표측은 “당·청 간 갈등은 여권의 공멸을 가져온다. 앞으로 청와대와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다”라며 청와대와 ‘친이계’의 불안한 시선을 의식한 듯 화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새로운 홍준표 체제가 오히려 국정 난맥에 빠진 여권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시사저널>은 정계의 원로와 정치학 교수 등 10인의 인터뷰를 통해 현 국정 난맥상의 원인과 함께 홍준표 체제 출범 후 변화 가능성을 들어보았다(36~39쪽 딸린 기사 참조). 대다수 정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홍준표 신임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고 해서 여권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라고 밝혔다. 홍대표 체제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은 셈이다. “오히려 당·청 간의 갈등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라는 의견도 많았다.

▲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7월6일 평창군에서 열린 유치 염원 대국민 응원전에서 나란히 앉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박근혜·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왼쪽부터). ⓒ시사저널 유장훈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인명진 목사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싸움만 더 커질 것 같다. 홍준표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못지않게 독선적인 인물이다. 두 사람이 만나면 자기 고집대로 갈 것이 뻔하다. 아무래도 두 사람 간 대립이 만만찮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4선 의원 출신인 김종인 전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은 “홍준표 체제는 내년 4월 총선에 자기 운명이 걸려 있다. 어떻게 해서든 총선에서 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홍대표의 이해관계와 청와대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 그야말로 큰일이 나는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결국 이대통령과 홍대표가 이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서로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인데, 내가 보기에는 조정되기 힘들 것 같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당·청 간 갈등 오히려 심화될 수도”

신율 명지대 교수 역시 “홍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국정의 난맥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당·청 간의 갈등도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기본적으로 홍대표는 자신이 이대통령에게 신세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 여태까지 혼자 힘으로 커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당신한테 할 말은 한다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홍대표는 ‘당·청 일체’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것은 ‘청와대가 지시하는 것을 벗어나 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말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갈등의 소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홍준표 대표의 정치력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한 의견도 있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세력에 기반한, 힘이 있는 대표 체제가 아니어서 향후 여권이 화합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은 물러나는 정권과 당내에서 부상하는 박근혜 세력을 어떻게 잘 조정하느냐, 거기에 홍대표 체제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과연 홍대표에게 그런 조정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라고 밝혔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홍대표가 예전처럼 그렇게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실천하는 대표가 되어야 한다. 말수를 좀 줄이고 좌충우돌식의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홍대표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고원 교수는 “홍대표는 하나의 세력이 아니라 일종의 개인으로 보인다. 상당한 정치력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파 간 이합집산을 해결한다는 것도 단기간에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여당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독자적인 노선으로 청와대를 밟고 넘어가려고 한다면 곤혹스러워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 홍준표 체제가 현 국정 난맥상을 타개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앞으로 중요한 것은 청와대의 ‘정치력’이다. 어차피 여당의 입장은 어느 정도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니만큼, 청와대에서 더 정치력을 발휘해서 최대한 충돌을 줄일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는 “일단 홍대표가 ‘당·청은 운명 공동체’라고 했던데, 그 말은 잘했다. 하지만 당·청 관계에서 중요한 열쇠는 홍대표가 쥐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달려 있다”라고 한계성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산하 여의도연구소장 출신인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역사적인 과정이 있는데, 홍대표가 하루아침에 다른 당을 만들 수는 없다. 홍대표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논평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리더십이다. 어떤 차원을 보여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은 기대 반, 불안 반의 심리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 한나라당은 7월4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후보를 새 대표로,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 후보를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가 중요 변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돌이켜보면 지난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 때에는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스스로 책임지고 사퇴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에게 새로운 한나라당을 물려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친이계가 스스로 내준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해 타의로 물러난 것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는 이명박 정권을 옹호했던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현 국정 난맥상에 책임을 느끼고 2004년처럼 그렇게 새로운 무대를 넘겨주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홍준표 체제 출범 이후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의견으로는 청와대가 소외된 채 여당과 대권 주자 그리고 여당과 야당과의 공조가 강화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김형준 교수는 “선거 환경 속에서 앞으로 공직자들은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청와대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은 정부가 한 발짝 물러나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이상돈 교수는 “당·청 간의 공조보다는 오히려 여야 공조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에서 어떤 안건에 대해 야당과 현안들을 공조하게 되는 그림을 말한다. 예를 들어 ‘4대강 지류 사업’을 보자. 과연 지금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가 그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계기가 되면 정기국회 때 여소야대가 오히려 빨리 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끌고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질적인 권력 레임덕이고, 레임덕은 이런 식으로 타의에 의해서 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장기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를 돕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제 정권 막바지이기 때문에 설사 이대통령을 돕더라도 그 책임이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오히려 돕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결국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가 향후 정국의 변수라는 데 정계 원로 및 전문가들은 의견이 일치했다. 홍대표가 부쩍 친박 성향의 발언을 쏟아내는 지금의 분위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홍대표는 7월5일 한 인터뷰에서 “공정하게 선거 관리가 이루어지고 방해 공작만 없다면 현재로서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라고까지 말했다.

홍대표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이재오·김문수와 함께 ‘반(反)박근혜 핵심 3인방’으로 꼽히기도 했다. 친박계에서 여전히 “홍대표를 믿을 수 없다”라며 떨떠름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지금까지는 당·정·청 3자 간의 삐걱거림이었다면, 앞으로는 박 전 대표로 상징되는 ‘미래 권력’까지 더해 당·정·청·박 4자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왼쪽부터) 조문환 의원, 조윤선 의원, 김정권 의원, 이범래 의원. (왼쪽부터) ⓒ 연합뉴스, ⓒ 시사저널 유장훈, ⓒ 시사저널 윤성호, ⓒ 시사저널 유장훈

한나라당 친이계의 반격은 ‘레토릭’에 불과했다. 예견된 일이었다. 7·4 전당대회는 친이계의 추락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친이계의 지원을 받은 원희룡 의원은 4위에 머물렀다. 홍준표 신임 대표와 양강 체제라는 당초 분석은 허망하게 폐기 처분되었다. 친박계 단일 후보인 유승민 의원이 2위에 올랐다. 드라마틱한 약진이다. 

친이계는 당권을 노렸다. 당연하다. 당권을 쥐고 있어야 신주류(친박계+소장파)와의 ‘거래’가 가능하다. 유력한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하는 무기도 된다. 가진 것이 없다면 무기력하게 항복해야 한다. 내년 총선 및 대선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난 5월 초 원내대표 경선에서 내주었던 당권을 되찾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뭉치자’고 외쳤다.

현실은 달랐다. 친이계의 당권 회복 꿈은 패잔병의 절규로 막을 내렸다. 한 친박계 인사는 “당원들의 마음이 친이계를 떠난 것이 아니냐. 대중적 토대가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표현을 빌면 친이계는 이제 ‘기력’이 다했다”라고 말했다. 

전대가 진행되면서 친이계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결집을 외쳤지만, 이탈자가 속속 생겼다. ‘홍준표 대세론’에 몸을 실은 것이다. 불확실한 결집보다 각자 도생하는 길을 택했다.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줄 세우기’ 논란의 이면이다. 

비례대표인 조문환·조윤선 의원을 비롯해 김정권·이범래 의원이 열성적으로 홍대표를 도왔다. 조문환 의원은 홍준표 캠프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SD(이상득)계로 알려진 이병석 의원과 이은재 의원도 홍대표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 초·재선 의원 모임인 ‘민생토론방’ 소속의 박준선 의원은 물론 고승덕 의원도 ‘홍대표 만들기’에 적극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3선인 안경률 의원의 이름도 나온다. 안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황우여 의원에게 패한 친이계의 핵심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의 아바타로 불린다. 뿌리부터 흔들렸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친이계의 결속력은 약화되었다. ‘충격의 4위’는 친이계 내부의 문제였던 셈이다.  

친이계 의원들은 홍대표만 지원한 것이 아니다. 일부는 유승민 최고위원에게 표를 던졌다. 이재오 장관의 최측근인 ㅈ의원과 ㄱ의원이 유최고위원을 선택했다. 유최고위원측은 “ㅈ의원과 ㄱ의원이 한 표를 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친이계 비례대표인 ㅇ의원도 유최고위원을 적극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남권의 친박계 재선 의원은 “유최고위원을 향한 구애는 미래 권력에 대한 보험의 성격이 아니겠느냐. 친이계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홍대표와 유최고위원을 지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유승민 최고위원을 지지하는 인사 명단에 정정복 전 의원과 이방호 전 사무총장도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흥미롭다. 정 전 의원과 이 전 사무총장은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친박계 공천 학살’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인사이다. 

한나라당에서 친이계의 목소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홍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계파 활동에만 전념하면 공천에 불이익을 주겠다”라며 ‘계파 해체’를 선언했을 때도, 반발은 친박계에서 나왔다. 친이계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친이계는 사라지는 존재이다. 이제 한나라당에 친이와 친박의 구분은 없어졌다”라는 한 수도권 친이계 의원의 ‘고백’이 현실감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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