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의 ‘깊은 슬픔’ 함께 나누는 그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07.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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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농성’ 김진숙씨와 ‘김진숙 사수대 4인방’은 누구인가

▲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의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김진숙 사수대 4인방(왼쪽 사진). ⓒ시사저널 박은숙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 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지난 1월6일 새벽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A4용지 한 장 분량의 편지글을 남긴 채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1981년 10월1일 대한조선공사에 선대 조립과 용접공으로 정식 입사했다. 그러나 1986년 7월 노조대의원 활동을 하던 그는 명예 실추, 상사 명령 불복종 등의 이유로 해고되었고 25년이 흐른 현재까지 ‘한진중공업 해고자’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왜 하필 85호 크레인이었을까? 시간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3년 한진중공업은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6백5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다. 회사는 단체 교섭을 거부했고, 검찰과 경찰은 10월1일 김주익 당시 지회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금속노조 지회 간부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김주익 지회장이 올랐던 곳이 바로 85호 크레인이다. 그는 35m의 크레인 위에서 1백29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국 10월27일 김주익 지회장은 크레인에서 목을 맸다. 그 뒤 2년여가 흐른 뒤에야 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복직되었다. 단 한 사람,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반대했다는 김진숙 지도위원만이 복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함께 책임 지기 위해 올라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8년여 전 김주익 지회장이 앉았던 그 자리에 올라갔다. 그는 정리해고가 철회되기 전까지는 크레인 농성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 그리고 그를 돕는 사람들과 함께 1백98일째(7월22일 기준) 크레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35m 높이에 있는 조종석 아래쪽, 지상에서 10여 m 떨어진 크레인 중간에 그와 함께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진숙 사수대’ 4인방이 있다. 박성호·박영제·신동순·정홍형 씨이다. 박성호씨는 현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의 해고자 대표로, 배의 엔진을 만드는 기관실 소속 노동자였다. 지난 1991년 이미 회사에서 한 차례 해고된 후 복직 투쟁을 하며 살다가 2006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계기로 복직이 되었지만 그 사이 이미 세 번의 징역살이를 경험해야 했다.

박영제씨는 한진중공업 입사 6년 만인 1986년 6월 해고되었다. ‘대의원 대회를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 이유가 되었다. 그 역시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다가 박성호씨와 함께 2006년 복직되었다. 신동순씨는 한진중공업 노조 대의원으로 입사 15년차인 노동자였다. 마지막으로 정홍형씨는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조직부장이다. 동료인 류장현 교선부장은 “정홍형씨는 한진중공업 조합원은 아니지만 함께 책임을 지기 위해 올라갔다. 2003년 85호 크레인 상황실장을 맡은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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