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개그는 ‘시스템’에서 나온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3.0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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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코미디 빅리그>의 성공 비결로 꼽혀…다양한 형태 지속 생산할 수 있어야 ‘장수’

tvN ‘옹달샘’ 팀과 KBS ‘애정남’과 ‘비상대책위원회’ 코너. ⓒ tvN

요즘 뜨는 개그와 KBS <개그콘서트>는 거의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개그콘서트>의 입지가 단단하다. 한때 개그 프로그램은 <개그야>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 방송 3사에서 대결을 벌이며 개그 삼국지의 형국을 만들기도 했지만, 어느새 타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은 시들시들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이 개그 불황기를 호황기로 바꾼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때로는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기도 했고, 최근에는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체 예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그콘서트>만의 어떤 특별함이 이런 경쟁력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시스템이다. 많은 이들이 개그는 코너 자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요즘 뜨는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나 SBS <개그투나잇>의 ‘하오차오’, 또 MBC <웃고 또 웃고>의 ‘나도 가수다’ 같은 코너를 생각해보면 일견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각각의 개그 코너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개그맨 역시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없었다면, 그것은 그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고 만다. 결국 개그 프로그램은 그 다양한 개그 형태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의 비밀은 도대체 뭘까.

개그맨들, 주 5일 출근해 아이디어 짜고 연습하며 ‘동고동락’

직장인 개념을 닮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시스템은 확실히 독특하다.

<개콘>의 개그맨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한다. 강압적인 느낌도 들지만 매일같이 한 공간에 개그맨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연습을 하며 동고동락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쟁력이 된다. 단지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동료 개그맨들의 스타일과 성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짜면서도 거기에 적합한 인물을 척척 집어넣을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예 뜨는 캐릭터의 개그맨을 아이디어 속에 집어넣고 자신은 거기에 빨대(?)를 꼽을 수도 있다. 게다가 ‘감독’으로 불리는 서수민 PD는 끊임없이 새 코너를 보고 함께 고민해주고 때로는 거기에 새로운 제안을 해서 코너를 살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상대책위원회’가 짜일 때 김원효의 아이디어에 김준현의 연기력을 덧붙인 것은 서수민 PD의 안목 덕분이다. 이렇게 모두가 어떤 코너이든 자신의 캐릭터로 세워질 수 있다는 점(그것도 기수와 상관없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은 <개콘> 시스템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경쟁적인 시스템 자체가 가진 힘이 존재하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조율하는 것은 PD의 권한이자 책임이다. PD는 개그맨의 개그 아이템들을 발전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전체 개그의 트렌드에 맞는 방향성을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한때 시청률이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무려 30%에까지 육박하는 시청률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새로 부임한 서수민 PD 덕분이다.

그동안 개콘을 이끌어오던 김석현 PD가 CJ로 가게 되면서(그는 지금 tvN에서 <코미디 빅리그>를 성공시켰다) 서수민 PD 체제로 바뀌었다. 서PD는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중·장년층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서PD는 “드라마(적인 것)를 잡아올 수밖에 없었다. 내 또래의 아줌마에게 어필해야 했으니까. 공감형 개그가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공개 무대에서는 안 터져도 나중에 방송에서는 터질 수 있는 극적 요소가 강한 개그들이었다”라고 말했다. 무언가 앞뒤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공감형 개그는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딘지 젊은 층에게나 어울릴 것 같던 <개콘>은 중·장년층도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풍자 개그로 담아냈다. “우리 개그가 너무 시사 풍자로 한정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라는 서PD는 최근 들어 세대적인 안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나온 개그가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도 그저 즐길 수 있는 ‘꺾기도’ 같은 개그이다. 이러한 그의 세대 안배를 가장 잘 말해주는 단어는 ‘4인용 밥상’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함께 앉아 즐길 수 있는 그런 밥상으로 <개그콘서트>를 꾸린다는 얘기이다. 결국 <개그콘서트>의 개그가 꾸준히 트렌드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런 굳건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시의적절한 운용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케이블 채널에서 성공한 개그 프로그램인 <코미디 빅리그>는 어떨까.

의 ‘네 가지’ 코너. ⓒ 서수민 제공
<코미디 빅리그>는 <개콘>이나 <웃찾사> 같은 개그 프로그램들이 배출한 팀을 끌어 모아 배틀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개콘> 시스템 같은 아이디어의 교류나 개그맨들의 이합집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철저한 팀 단위의 배틀 형식이 갖는 독특한 팬덤이 생겨난다. 팬덤이 있고 없는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경쟁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개콘>과 비교해 리그가 끝날 때까지는 고정적으로 팀이 유지되기 때문에 모든 팀원의 캐릭터가 골고루 집중되는 장점도 있다. 이른바 ‘깔아주는 개그’만 하는 개그맨의 불이익이 없다는 얘기이다.

<개콘> PD를 오래 했던 김석현 PD는 그 경험을 통해 케이블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팀제가 갖는 마니아적인 특성은 팬덤을 고정 시청률로 끌어와야 하는 케이블에는 대단히 적합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서수민 PD는 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개그콘서트>와 <코미디 빅리그>의 1 대 1 비교에 대해 “그다지 의미가 없다. 코미디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각자 상황에 맞는 최적화된 개그가 있을 뿐이다. 물론 다양해진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스템 통해 성장한 개그맨에게 개인적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해

<개그콘서트>나 <코미디 빅리그> 모두 특정한 시스템과 그 운용을 통해 성공한 프로그램이지만, 여전히 한계도 존재한다. 그것은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개그맨이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수근이나 김병만의 예처럼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혹은 <개그야>를 했던 개그맨은 개그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를 알기에 자신의 성장을 위해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프로그램에 들어갔을 때, 지금까지 해왔던 개그 프로그램과의 연결 고리는 끊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즉, 방송사와 개그맨 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한번 나간 개그맨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그런 닫힌 구조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로 지목된다.

‘아메리카노’의 안영미. ⓒ tvN
물론 이것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 코코엔터테인먼트를 세운 김준호는 갈갈이 패밀리나 컬투의 사례를 하나의 타산지석으로 보고 있었다. “애초에 수익 사업 없는 매니지먼트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서수민 PD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를 해보라고 했다. 지금은 스케줄 관리 정도나 해주는데 앞으로는 굳이 버라이어티를 가지 않아도 개그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려 한다. 서수민 PD와 <개그콘서트> 이외에 다른 개그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현재 <개콘> 출연진 중 최고참 멤버이기도 한 김준호는 농담처럼 일본의 ‘요시모토 흥업’을 예로 들었다. “거기에서는 후배가 나이 든 선배에게 돈을 걷어주기도 한다고 하던데,(웃음) 그런 탄탄한 시스템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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