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이 군불 지피는 ‘반기문 대망론’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11.0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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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란’ 정파의 불가피한 한계…야권 일각에서도 영입 거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출마하면’ 제19대 대통령은 틀림없다. 여당 후보가 됐건, 야당 후보가 됐건….” 정가를 뜨겁게 달구는 개헌론과 맞물려 거론되는 차기 대권 주자와 관련해 일각에서 나도는 말이다. 주식시장엔 벌써부터 ‘반기문 테마주’가 등장하는 판이다. 이런 예상은 지금 거론되는 여야 대권 주자 후보군의 그만그만한 지지율에서 비롯한다. 이에 비해 한 여론조사에서 40%에 육박하는 반 총장 지지율은 현재 선두를 달리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두 배를 훌쩍 넘기고 있다. 물론 2017년 12월20일에 치러질 19대 대선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남았고, 따라서 지금의 지지율을 놓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차기 부재 친박, ‘반기문 출마’ 가능성 세미나

하지만 ‘반 후보’의 지지율이 비교적 공고하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국제무대에서 각광받는 유엔 사무총장이기에 국내에 컴백하더라도 공격받을 시간적 여유나 표적이 될 소재가 별로 없고, 따라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칠 겨를조차 없다는 점도 그 이유로 거론된다. 반 총장의 임기가 국내 대선이 치러지기 딱 1년 전인 2016년 12월까지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 유엔 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 총장과 환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기문 총장은 여야 양쪽으로부터 직간접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런 러브콜이 단순히 의견 타진 수준의 ‘찔러보기’가 아니라는 전언이다. 여권 일각에서 ‘반 후보’를 가상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반 총장에게 설명하고 수락을 채근했다는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수개월 전엔 새정치민주연합 ‘비노(非盧)계’ 수뇌급 인사가 ‘모시겠다’며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등 여야 각 정파의 반 총장 접촉 관련 후일담들이 퍼져나가는 중이다. 비노 인사의 추대 제의설과 관련해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그룹에선 “반 총장이 대선에 뛰어들면 ‘한 칼’에 벨 수 있는 약점을 쥐고 있다”며 벼른다는 등 미확인 소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김성곤 새정치연합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정치권에 들어와 활동하기보다는 세계 평화 등에 힘쓰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며 미리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중국 방문 중, 연말부터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권력 구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정으로 권력을 분담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모델로 예시했는데 이는  ‘반기문 대통령-김무성 총리’를 상정한 포석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당 대표가 되면서 여권 내 대선 선두 주자로 떠오르고 당내 최대 세력을 규합한 김 대표가 반 총장과 한 팀을 이룬다면 최강의 러닝메이트임이 분명하므로 이런 해석은 무리가 아니다.

이런 김 대표의 행보에 대응하는 ‘친박(親朴)’ 진영의 모습도 ‘반 후보’를 회자되게 만든다. 친박 그룹은 집권 여당의 주류인 자신들이 소수파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가 정권 재창출을 담보할 만한 기수가 없기 때문으로 파악한다. ‘무정란’ 정파의 불가피한 한계라는 탄식이다. 친박 의원들이 주축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10월29일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집중 조명하는 세미나를 개최한 것도 이를 극복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회생 의지 천명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당일,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세미나를 강행한 것도 친박의 절박함을 암시한다.

‘2017년 차기 대선 지지도 판세-반기문 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라는 제하의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여론조사기관 대표가 “실제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을 제외하고는 정권 연장이 쉽지 않다”며 각종 자료를 제시하자 안홍준 의원 같은 이는 “당내 인사로 도저히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 (카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얼핏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30여 명의 의원이 참석해 친박세를 과시한 듯했지만 실은 친박의 위기감을 확인한 자리에 불과했다는 게 적확하다. 친박이 아니라 ‘친반(親潘)’ 모임이라는 자조가 괜한 게 아닌 셈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조정을 위해 현지에 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0월14일 가자 지구 국경선 일대를 돌아보고 있다. ⓒ AP 연합
꽃놀이패 쥔 본인은 침묵…출마 여부 안갯속

여야가 제각기 반 총장에게 눈길을 주는 이유는 그가 지닌 상품성과 함께 자신들과의 특별한 연(緣)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권은 반 총장의 기본 성향이 여당적이라고 주장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이었다는 점도 꼽고 있다. 반면 야당에선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보좌관, 외무부장관을 지낸 후 유엔 사무총장이 됐으니 현재의 새정치연합과 각별하다고 강조한다.

여야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반 총장은 이른바 꽃놀이패를 쥔 형국이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으로 볼 때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로부터의 구애는 최대의 멍에다. 우선 반 총장 자신이 선택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무당파’인 반 총장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숱한 지뢰가 깔려 있어서다. ‘세계 지도자’라는 자리에 있던 반 총장으로서는 명분과 외양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꽃가마를 태워 모셔가는’ 모양새와 그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이 매끄러워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난망이다. 여야 모두의 내부에서는 대선 후보 지망자들을 포함한 반대 그룹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그렇기에 설령 ‘꽃가마’ 약조가 있더라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핀란드 대통령이 된 마르티 아티사리,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된 쿠르트 발트하임 등의 전례가 있어 반 총장이 퇴임 후 대선에 출마하는 명분은 어느 정도 성립된다. 하지만 반 총장의 향후 대권 가도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17대 대선을 앞둔 지난 2006년 고건 전 총리의 지지도가 40%를 넘었지만 사상누각 형세였다는 점을 거론한다. 레임덕에 대한 우려로 청와대가 그토록 경계하는 개헌 논의와 더불어 차기 주자 문제가 구체화되는 게 우리 정국 현실이다. ‘반기문 추대론’은 그 복판에 자리한다. 그러나 반 총장 자신은 ‘총장 직무 충실’만 되풀이해 강조하면서 확답을 피한다. 총장 임기 말에나 입장을 분명히 할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 어차피 논의 자체를 강제로 잠재울 수 없다면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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