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39호실이 대주주인 ‘KKG’의 정체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5.07.0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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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비자금 마련 위해 외화벌이…중국 고위층과 가까운 홍콩 거부와 연계

지난해 중반 평양 중심가에는 주민들의 눈길을 끄는 변화가 생겼다. 시내를 운행하는 택시에 ‘KKG’란 영문 글자가 등장한 것이다. 차량 앞문짝 쪽에 새겨진 이 표기를 놓고 방북 인사들 사이에서는 의문이 증폭됐다.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고, 북측 안내원조차 그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다. ‘주체의 나라’를 표방하며 반미 기치를 내세운 북한에서 영문 글자를 드러내고 달릴 수 있는 배경이 뭘까에 관심이 쏠렸다.

 

대북 정보를 다루고 있는 정부 핵심 인사는 “KKG는 금강그룹의 영문 약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평양 시내를 운행 중인 1500여 대의 택시 중 상당수에서 이 회사의 로고가 발견되고 있다는 게 이 인사의 설명이다. 또 영문 글자가 새겨진 위치나 모양으로 볼 때 광고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KKG가 택시 운행권을 확보해 평양을 방문한 관광객이나 외교관, 교포 등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6월25일 조선중앙TV를 통해 7월1일 준공식을 하는 평양 순안국제공항 제2청사의 내외부를 공개했다. 사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승객용으로 준비된 택시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 ⓒ 조선중앙통신

배후에 중국 고위층과 친밀한 인물 있어


KKG로 알려진 금강그룹은 북한 내부에서는 금강개발총회사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게 정부 당국과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조직이나 운영 등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노동당 39호실’이 배후에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며 “서방세계의 전 방위적인 대북 제재 때문에 외화벌이가 어렵자 KKG를 내세워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비자금줄인 노동당 39호실이 달러 획득이나 해외 자금 운용에 KKG를 활용하면서 그 대가로 북한의 지하자원 등 이권을 특혜사업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택시 운송 사업도 그중 하나란 얘기다.

대북 정보 관계자들과 방북 인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던 KKG가 주목받게 된 건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가 나오면서다. 이 신문은 지난 6월25일자 보도에서 “김정은 비자금 마련 창구로 보이는 KKG가 최근 사세를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KKG는 평양 시내의 택시 운행이나 공항버스 사업, 부동산 개발, 원유 탐사에 이르기까지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KKG가 김정은 일가의 비자금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당 39호실 산하 고려대송무역총국에 소속됐다는 추정이다.

 

노동당 내 핵심 조직 중 하나인 39호실은 ‘주석폰드’(김일성 주석의 펀드란 의미)로 불리는 통치 자금이나 비자금 관리를 위해 1970년대에 설립된 조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후에는 위조 달러와 마약, 가짜 담배, 무기 밀매 등을 통해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세계가 2011년 이후 북한의 핵 개발 자금줄을 죄면서 39호실 산하 기업들이 제재 리스트에 줄줄이 올랐다. 이 때문에 활동이 힘들어지자 KKG라는 간판을 내걸고 신장개업을 한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뜨고 있는 KKG와 관련해 눈여겨볼 인물은 홍콩의 거부 쉬징화(徐京華)다. 홍콩에 주소를 둔 퀸스웨이그룹(Queensway Group)을 이끌고 있는 56세의 쉬징화는 중국공산당과 재계 고위층, 국유기업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인 뤄팡훙(羅方紅)이 덩샤오핑의 통역을 맡았었다는 설도 나온다. 쉬징화는 2003년께부터 홍콩에서 석유와 지하자원 개발 사업에 손을 대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2013년 4월 전세기 편으로 방북해 북한 당국과 희천발전소 2단계 건설과 북한 내 유전 탐사 비즈니스를 논의했다는 점이다. 퀸스웨이그룹은 2006년 평양에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KKG 애비뉴(Avenue)’ 프로젝트를 추진하려 한 적도 있다. 우리 정부 당국은 쉬징화가 최근 수년간 북한을 4~5차례 이상 방문했고, 중국 등지에서 북한 경제 관리들과도 빈번하게 접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의 정보 당국도 쉬징화의 대북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샘 파(Sam P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쉬징화는 미국 의회 보고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요주의 인물”이라며 “여러 개의 가명을 쓰는 데다 중국 내에서 모잠비크 외교관 차량을 이용하는 등의 행동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퀸스웨이 앞세워 국제무대에서 달러벌이 모색

KKG는 퀸스웨이를 앞세워 국제무대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앙골라의 유전 개발부터 짐바브웨의 다이아몬드 채굴 사업은 물론, 미국 맨해튼의 부동산 투자 사업에도 개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결국 KKG는 쉬징화를 앞세우는 우회적 방법으로 국제무대에서 달러벌이를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노동당 39호실이 실제 KKG의 대주주이고 쉬징화나 퀸스웨이그룹은 얼굴마담이나 페이퍼컴퍼니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집권 초부터 무모한 핵 개발과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 등으로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자초했다. 후견국인 중국의 시진핑 체제로부터도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 출생 100회를 맞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집권 4년 차인 현재까지도 그 약속은 이행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핵 개발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이른바 ‘경제-핵 병진 노선’을 버리지 않고서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인권 문제까지 내세워 압박을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응한 한국 정부의 5·24 대북 조치도 꿈쩍도 하지 않을 기세다.

 

북한 파워엘리트들의 이권 다툼 양상도 변수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자신의 군부 과외교사 역할을 한 권력 실세 리영호 총참모장을 전격 숙청했다. 군벌이 거머쥔 외화벌이 등 경제 이권을 노동당과 내각에 돌리려던 구상에 저항했다는 이유다. 고모부 장성택 처형의 주요한 배경 중 하나도 석탄 해외 판매 등 경제 이권이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공개 처형 등 공포 정치 속에서도 권력 핵심 실세나 그 2세들의 이권 다툼이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는 정보 당국의 첩보가 잇따르고 있다. 대북 압박 공세 수위가 높아지는 데다 파워엘리트 사이의 내홍까지 겹친 상황에서 김정은은 KKG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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