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피해자들 하나둘 세상 떠나는데 6년 장고 끝에 ‘판단 유보’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12.31 18:03
  • 호수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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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박정희 정권 때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 ‘각하’

 

 “한일청구권협정은 위헌심판 대상이 아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재판에 직접 적용되는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

헌법재판소(헌재)는 2015년 12월23일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그동안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과 한국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일본 측은 이번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한·일 관계 개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각하는 헌법소원 청구가 헌재의 심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때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 즉 헌재가 한일청구권협정이 강제 동원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을 제한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지금까지 일본 전범 기업들을 상대로 총 11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6년여 간의 장고(長考) 끝에 나온 헌재의 결정이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싸움은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2015년 12월23일 헌법재판소가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각하한 후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P 연합

日 “한·일 양국 청구권 문제 완전히 해결됐다”

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65년 한·일 양국은 14년 동안의 교섭에 종지부를 찍고 7개 조, 4개의 부속 협정 및 25개의 문서로 구성된 한·일 기본관계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으로 양국은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면서 외교·영사 관계를 개설한 것은 물론 한일병합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무효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조업권 문제나 문화재 반환 문제 등은 해결하지 못했고, 이 중 청구권과 경제 협력에 관한 협정은 두고두고 분쟁의 불씨가 됐다.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은 한국과 일본 양 정부는 물론  법인을 포함한 국민의 재산·권리·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3항은 협정 서명일 이전에 발생한 사유로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 조항을 근거로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일본 정부는 그동안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에 대해서도 ‘조선에서 건너온 노동자’ 등 불명확한 표현을 써가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200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관련 문서를 공개하면서 ‘위안부·원폭 피해자·사할린 동포 등은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한 발짝 물러섰다.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에 추가 배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2009년 강제징용 피해자 이화섭씨의 딸 윤재씨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가 부친의 미수금 5828엔을 1엔당 2000원으로 계산해 1165만6000원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이 현재 가치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행정 소송을 냈다. 이윤재씨는 또 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사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은 1999년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양금덕 할머니 등은 일본 재판부에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징용 보상 소송을 냈다. 10여 년의 긴 시간이 지나 최고재판소인 도쿄재판소까지 올라갔지만 2008년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개인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되지 않아”

대일(對日) 청구권에 대한 중요한 결정은 2011~12년 연이어 나왔다. 2011년 8월 헌재는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일본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입힌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또 2012년 5월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 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칙적으로 거부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일제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이와 관련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즉,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 간의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불법성에 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향후 소송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3년 7월 마침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등법원은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각 1억원씩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같은 달 30일에는 부산고법이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강제징용 피해자 5명에게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이 실제로 배상을 한 경우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 11건 중 3건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기나긴 세월 동안 강제 동원 피해자들은 한 명 두 명 고령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각하 결정을 내리는 데 무려 6년이란 세월을 보낸 것이다.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782만여 명에 이른다. 도요타·니콘·도시바·미쓰비시·일본제철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은 군함도(軍艦島) 탄광 등 조선인이 징용된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징용 사실을 빼버리거나 자원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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