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반대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용산역에 건립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4 10: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토부 반대로 3·1절 설치 무산…8·15 앞두고 ‘강제징용자 집결지’ 용산역에 설치

 

대일항쟁기 강제징용을 고발하고, 희생된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국내 처음으로 서울 용산역 광장 앞에 설치됐다. 노동자가 한 손에 곡괭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햇빛을 가리며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노동자상의 어깨에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상징하는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추진위)는 8월12일 오후 용산역 광장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을 열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과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더불어민주당·정의당 국회의원들이 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 

  

 

8월12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한수(99)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용산역 광장을 건립 장소로 정한 이유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용산역이 강제징용자들을 일본이나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 등의 지역으로 보내기 전 집결시킨 ‘전초기지’였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동상을 기부하는 조건으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동상을 세우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 용산역 광장이 건립 장소로 최종 선정됐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 집결지 용산역 의미

 

추진위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 용산역에 끌려와 일본 국내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 등 광산·군수공장에 끌려가 착취당했다”며 “마지막으로 고향땅을 떠나던 용산역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016년 8월24일 일본 강제노역 현장인 교토 단바망간 기념관에 노동자상을 건립한 바 있다. 양대 노총은 올해 3·1절에 서울에 노동자상을 세우고, 다음 해에는 평양에 노동자상을 설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서울에 세울 동상은 바로 제작됐지만, 3·1절에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가 동상 건립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양대 노총이 선정한 부지가 ‘국가 소유 부지’가 아니고, 한일 관계를 고려해 외교부도 반대하고 있다”면서 부지 협조 불가 입장을 내렸다. 국토부는 공문을 통해 “역 광장을 포함한 철도부지는 국유재산법에 따른 행정재산으로, 영구시설물을 축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역 광장에 설치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유재산법은 ‘기부’를 조건으로 할 경우 영구시설물 축조가 가능하다. 국토부 측의 반응에 대해 양 노총은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국가 부지라서 안 된다’는 말은 강제징용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한일관계를 고려해 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발언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당시 조선 민중들의 참혹했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민족의 주권을 지켜나가야 할 정부 당국의 당연한 의무”​라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이 먼저 추진함에 대해 감사할 일이며 그 어떠한 경우에도 협조와 지원을 약속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당연히 할 일을 못하니 민간이 대신”​​

이후 외교부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이나 관련 부지 제공에 대해 외교부가 반대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외교부의 공식 입장은 이 사안이 완전히 국토부가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뿐이며, 국토부는 우리와 협의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토부의 거짓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부의 반대로 노동자상 설치가 미뤄지자, 노동자 단체들은 릴레이 행동에 나섰다. 용산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정부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서울 건립을 보장하고, 조선인 강제동원 진실과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등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또 일본 정부에 대해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일본 기업이 배상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군함도 등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시설에 대해 강제동원 역사를 기록하는 등 과거사에 대한 미화를 중단하고 진실 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마침내 광복 72주년 만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처음으로 국내에 설치됐지만, 정부의 허가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추진위에 따르면 제막식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해왔으나 정부는 노동자상이 건립되는 날까지 부지와 관련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노동자상 제막식 진행을 막는 움직임은 없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안타깝게도 우리는 정부당국의 협조 없이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했다”며 “일제 식민지 시절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작은 실천에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용산역에 설치된 국내 첫 노동자상에 이어, 인천 부평공원에도 8월12일 두 번째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시민들이 보낸 성금으로 제작된 이 동상은 대일항쟁기 당시 강제로 징용된 부녀(父女)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동상이 세워진 부평공원은 일제강점기 조병창 터(현 부평미군기지)를 마주 보는 장소다. 조평창은 조선 식민지 최대의 무기 공장으로, 인천에 남아 있는 일제 수탈의 흔적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