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예수의 죽음 흉내 낸 기괴한 자살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6.01.20 21:37
  • 호수 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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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채석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시신 발견 예수의 처형 장면 스스로 재현

2011년 5월1일 경북 문경의 한 채석장에서 속옷만 입은 A씨(58)가 마치 골고다 언덕의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을 처음 목격한 양봉업자들은 벌통을 설치할 장소를 찾다가 그곳까지 올라오게 돼 이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사건 현장에서 시신은 예수가 처형당한 방법과 매우 유사하게, 거의 재현하다시피 한 채로 발견됐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에 굵은 못이 박혀 있었고, 예수가 죽기 전 옆구리를 창에 찔린 것처럼 같은 부위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근처에는 자동차 한 대와 텐트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텐트 안에서 십자가 처형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메모지가 발견됐다. 메모지에 남겨진 필체는 사망한 A씨의 것이라고 그의 딸이 증언했다. A씨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가 평소 손재주가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처형 장면을 재현하기 위한 도구들도 A씨 자신이 직접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의 몸에 박힌 못이나 그 못을 박은 위치 등은 예수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고, 또 정교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메모 내용과 그 밖의 다른 정황을 놓고 봤을 때 이 변사 사건은 자살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 일러스트 오상민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이 사건은 여러 난제를 안겨줬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의문은 A씨 혼자서 어떻게 이처럼 정교한 십자가 처형 장면을 재현했느냐는 점이다. 자신의 양손·양발에 못을 박는 행위가 가능한 걸까. 2011년 6월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혼자서 이렇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했다. 당시 실험의 경우 어렵기는 하지만 어찌어찌하면 가능하기는 하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았다. 어떤 전문가는 시신의 양발 폭이 너무 좁아 중심을 잡기도 힘들고 못을 박기 위해 필요한 지지점이 없어 힘을 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스스로 손에 드릴로 못을 박을 경우 힘줄이 손상돼 다른 행동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도 혼자서 이렇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다. 역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한쪽 발을 올리고 못을 박은 뒤 십자가에 올라서서 쭈그리고 앉은 다음 나머지 한쪽 발에 못을 박고 일어설 수 있으며, 그다음 목을 묶고 바로 앞에 걸려 있던 거울을 보면서 칼로 자신의 허리를 찔렀다는 것이다. 예수는 같은 부위를 창에 찔렸지만 그 자세에서 창을 사용하기 어려워 칼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손에 박힌 못이었다. 어떻게 양손에 스스로 못을 박을 수 있었을까. 국과수는 십자가에 못을 미리 박아놓은 다음 드릴로 손에 구멍을 뚫어 못에 끼웠다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 그의 손에 난 구멍을 보면 손바닥 쪽은 깨끗하고 손등 쪽은 거칠었다. 손에 못을 끼운 다음 옆구리 출혈로 인해 몸이 미끄러져 내리면 십자가와 연결해 목에 걸어놨던 줄이 목을 조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부검 결과 사인(死因)도 목 졸림과 옆구리 상처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결정적으로 현장에는 만약을 대비해 모든 도구들이 두 개씩 준비돼 있었다. A씨 스스로 예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이제 의문은 그가 왜 이런 죽음을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양봉업자에게로 돌아가보자. 양봉업자 중 J씨는 예전부터 A씨와 깊은 관계를 맺어온 전직 목사였다. 그런 그가 마치 A씨를 처음 본 것처럼 행동한 점이 이 사건을 풀 핵심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논란 불러온 최초 발견자의 행동

J씨는 A씨가 가입한 종교 관련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였다. 그는 사건 발생 4~5일 후인 5월5일과 6일에 자신의 인터넷 카페에 ‘십자가에 달린 사람-발견 과정에 대해’와 ‘나도 알고 싶다. 그 사람에 대하여’ 등 두 개의 글을 올렸다. 그는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올린 시점이 경찰 조사가 시작되던 단계였다. 사건 당일에 시신이 있는 장소로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간 정황도 포착됐다. 같이 온 일행이 이미 아래쪽에 벌통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더 올라가지 말고 내려가자고 했는데도 굳이 사건 장소까지 올라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다가 시신을 발견했다는 게 일행들의 주장이다. 즉 J씨가 일부러 사람들을 데리고 가 사건 현장을 발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J씨가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가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었다. 물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모습이 궁금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괴기스러운 시신을 발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후 J씨가 인터넷에 올린 사건 현장 사진이 논란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J씨는 또 자신으로부터 신앙 상담을 받은 A씨가 자신의 종교 사이트를 보고 문경을 방문한 사실도 숨겼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숨진 A씨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수사 결과, A씨는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택시기사로 밝혀졌다. A씨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자신의 생계 수단인 택시를 처분하고 통장에 있던 900만원가량을 형 계좌로 이체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여기서도 자살의 정황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A씨는 왜 일반적인 자살 방식이 아니라 이처럼 기괴한 방식으로 자살을 실행했을까. 주변 사람들이 본 A씨의 평소 성격이나 종교생활 등은 시신으로 발견된 상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A씨는 평소 겁이 많고 온순했다. 종교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다. 동료 택시기사들에게 운전할 때 들을 음악을 선물해주기도 했는데 거기에 불교음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A씨의 행동은 자신을 철저히 감춘 모습이었다는 게 이후 수사에서 밝혀졌다. 겉으로는 온순하고 평온했지만 사실 그는 1990년대 부인과 이혼하고 자녀 두 명과도 연락을 끊고 지낸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자신에게 간 이식을 해줬던 아들이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게 된 것이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을 것이다. 자기를 대신해 아들이 죽었다고 여겼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원래 믿던 종교를 떠나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들을 죽게 했다는 극도의 죄책감이 자신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인 예수와 동일시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스스로에게 극한의 고통을 가하면서 지금의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부정하는 모습에서 그가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식의 죽음을 혼자서 선택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런 죽음에 대한 암시나 추동(推動)·고무 등을 이끈 누군가가 존재했을 수 있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기 어렵게 된다. A씨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너무도 약한 상태에 놓여 있던 그에게 누군가가 예수의 죽음을 각인시켰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사이비 종교인들이다. 일종의 간증을 위한 희생양을 내세울 때 사람들의 약한 지점을 공략한다. 사이비 종교의 리더가 사건 현장에 자신의 신도들을 데려가 십자가 처형식을 목격하게 했을 수 있다.

아들 죽게 한 죄책감에 예수와 동일시

2011년 5월3일 경북 문경의 한 채석장에서 50대 남성이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의 차량 내부 모습과 천막에서 발견된 메모. ⓒ 연합뉴스

이제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 A씨의 사건 전후 행적을 살펴보자. A씨는 2011년 3월 말 자신이 직접 구입한 차를 몰고 창원에서 문경으로 이동해 사건 현장인 채석장 부근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해왔다. 사건 현장의 십자가 나무도 4월13일 김해의 한 제재소에서 직접 구입했다. A씨는 다음 날 문경 시내에서 식료품을 구입했고, 상주의 한 우체국을 방문해 적금을 해지해 현금 900만원을 찾아 형 앞으로 송금했다. 일부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다. 그리고 4월11일과 14일 사용하던 태블릿과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이때 이미 A씨는 자신의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 일종의 의식을 재현할 생각이었다. 그는 택시를 처분하고 코란도 차를 새로 구매했다. 그는 새로 산 차를 처음 타는 것을 마치 예수가 죽기 전 사람이 탄 적 없는 나귀를 탄 것과 동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부터 예수의 죽음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사망 시각도 성경 내용을 따라 했다. 채석장도 골고다 언덕이 돌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수가 죽을 당시 머리에 썼던 가시 면류관과 몸에 둘렀던 홍포(紅布·붉은 옷감)를 연상케 하는 물건들도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에는 ‘채찍으로 39번’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예수가 죽기 직전 채찍으로 39번 매를 맞은 것과 같다. 놀랍게도 시신이 발견된 기간도 성경에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기록된 시기와 일치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 일부는 잘 빠져나오지만 일부는 더 나락으로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중요하다. A씨의 경우 성격도 내성적인 데다 이혼으로 인해 삶 자체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의 좋은 표적이 된다. 마음의 약한 부분을 자극해 영혼을 파괴시킨다. 사이비 종교인들은 A씨를 살아 있는 간증의 표상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언어대로 십자가의 역사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형법적으로는 자살과 자살방조 정도의 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잔혹한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어려움에 처한 영혼을 무너뜨리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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