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잡은 특검, 특수본은 다 잡는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 15:10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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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총장, 강도 높은 수사 의지 표명 SK·롯데·CJ 등 수사선상 오른 대기업 옥죄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가 내려지기 하루 전인 3월9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언론사 간부 등과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강도 높은 수사 의지를 피력했다. 물론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한 말이었지만, 그는 박 전 대통령 수사에 우선순위를 두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대기업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해 반드시 특검 이상의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형식적인 수사에 그치지 않겠나”라는 시선을 불식시키려는 모습이었다. 박영수 특검팀에 대해 쏟아지는 찬사 여론을 다분히 의식한 모습도 보였다.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1기)도 시간만 좀 더 있었다면 삼성에 대한 수사를 보다 더 철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발언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김 총장의 입장에 무게를 싣는 검찰 특수본(2기) 주변 목소리도 이어졌다. SK·롯데·CJ 등 삼성 외 기업에 대한 수사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현재 출국금지 상태인 최태원·신동빈 회장 등에 대한 출국금지를 해제할 뜻이 없음도 분명히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특검도 삼성에 대해 2개월 이상 더 수사해 성과를 냈듯이, 특수본도 SK·롯데 등에 대해 최소 2개월 이상 더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구체적인 기업 이름은 세 군데가 거론됐지만, 검찰이 포괄적으로 기업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할 뜻을 드러낸 만큼 특검팀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검찰 특수본의 수사가 대기업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별검사팀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하면서 타깃이 된 기업들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 시사저널 박정훈

특검서 대가성 입증…대기업 수사 확산

 

‘K스포츠에 자금을 출연하기로 한 16개 그룹은 안종범(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대통령(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의 어려움 등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중략) 최순실과 안종범은 대통령과 공모해 대통령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기업)들로 하여금 288억원의 금원을 출연하도록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

 

지난해 11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호성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최순실 게이트’ 중심에 선 3인에 대한 검찰(특수본 1기) 공소장 내용 중 일부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은 ‘공범’, 기업들은 ‘피해자’로 묘사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자금을 출연했다는 것이다. 기업들 역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강요죄의 경우 피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소장에 이름이 거론된 기업들 사이에 위기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특검 수사가 종료된 2월말, 상황은 달라졌다.

 

특검 수사에 의해 삼성의 대가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만큼 검찰 특수본에서 못다 한 대기업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3월10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헌재 결정은 법원 판례와 마찬가지로 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헌재는 직접적으로 뇌물죄나 강요죄 여부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형사책임과 별개로 ‘파면의 필요성’만을 검토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최순실의 독자범행’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고, 대통령도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최씨의 이권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박 전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대목만 보면, 헌재는 기업을 강요죄의 피해자로 본 듯한 인상을 준다. 재계를 중심으로 ‘강요죄론’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특검 수사 내용이 탄핵심판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안창호 재판관이 내놓은 보충의견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는 보충의견을 통해 이번 사건을 ‘비선조직의 국정 개입, 대통령의 권한 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으로 정의했다. 정치권력과 결탁해 온 기업은 단순한 선의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래는 안 재판관의 보충의견 내용의 일부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선조직의 국정 개입, 대통령의 권한 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정치적 폐습이다. (중략)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비선조직의 국정 개입, 대통령의 권한 남용,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특검팀 찬사 여론에 검찰 수뇌부 충격”

 

앞서 언급했듯, 3월3일 특검팀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특수본도 기업 수사에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특검팀이 전례에 없던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검찰 수뇌부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수뇌부를 중심으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명예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 수사망에 올라 있는 대기업은 SK·롯데·CJ그룹 세 곳이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특별사면을 대가로 문화창조융합벨트(K컬처밸리) 사업에 1조4000억원을 지원키로 한 의혹을,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의 특별사면을 위해 K스포츠재단 등에 111억원을 출연한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는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내놨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특수본은 특검팀으로부터 수사자료를 넘겨받은 직후 기업별로 3~4명씩의 검사를 배치해 분석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은 향후 이들 기업에 뇌물공여죄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특검팀 수사 과정에서 상당한 증거가 입수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CJ그룹과 관련,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측에 5차례 이상 특별사면을 요청한 사실을 파악했다. 또 안 전 수석 수첩에 적힌 ‘이재현 회장을 도울 길이 생길 수 있다’는 구절도 대가성을 입증할 증거가 될 수 있다. SK그룹의 경우는 김영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이 사면 직전이던 최 회장을 구치소에서 만나 “경제 살리기가 회장님이 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 녹음 파일과 김창근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안 전 수석에게 보낸 ‘최태원 회장 사면·복권시켜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휴대폰 메시지가 확보된 상태다.

 

수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 기업은 여전히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을 지키며, 계속된 수사로 경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특수본은 아랑곳 않고 대기업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첫 타깃은 SK그룹이었다. (시사저널 1430호 ‘탄핵 후폭풍, 삼성 다음은 SK?’ 보도 참조) 특수본은 3월16일 박 전 대통령을 만나 특별사면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창근 전 의장은 물론, 김영태 전 위원장, 이형희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등 전·현직 최고위 임원 3명을 소환조사했다. 특수본은 향후 롯데그룹과 CJ그룹 등으로 수사를 확대해 나갈 방침으로 전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특수본은 동시에 박 전 대통령과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수본은 3월14일 박 전 대통령의 소환 방침을 밝힌 데 이어, 다음 날인 15일 소환조사 일정(3월21일)을 통보했다. 우 전 수석 비위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미 5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고, 자문료 의혹이 있는 투자자문업체를 3월14일 압수수색했다. 당초 검찰 주변에서는 특검팀에서 넘겨받은 자료가 막대하다는 점, 시기상으로 탄핵이나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수사가 늦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예상을 깨고 3대 핵심 수사 대상에 대한 동시다발적 수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특별사면을 대가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새 정부에 부담 주지 않기 위해 수사에 속도”

 

이처럼 거침없는 전방위 사정을 가능케 한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이 지목된다. 박 전 대통령이 사인(私人) 신분이 되면서 ‘족쇄’가 풀린 것이다. 더 이상 수사를 머뭇거릴 이유도 명분도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가적인 대기업 수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혐의 입증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대기업 조사를 통해 대가성 입증을 위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한편, 여기서 확보한 증거나 진술을 3월21일로 예정된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 때 활용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에선 탄핵 인용으로 ‘날개’를 단 특수본이 당초 예상을 넘는 ‘초고속 수사’를 벌이는 배경을 대선과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19대 대선이 실시되는 5월9일 전에 수사를 마무리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을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은 관례적으로 선거 기간에 수사를 피해 왔다”며 “그러나 진행되던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 짓기보다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선거가 끝나면 재개하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교체된 이후까지 수사가 이어지게 되면 자칫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을 탄압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어 검찰로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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