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웃음 찾은 봉하의 5월
  • 경남 김해=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3 20: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 현장 스케치

“사람들 표정이 바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부터 10년 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지켜온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는 “최근 찾아오는 추모객들을 보면 2008년 노 대통령을 보러 찾아온 방문객들의 표정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봉하에 스무 번째 방문했다는 김현씨도 “마을 입구에 붙은 노 대통령의 ‘아~ 기분 좋다’ 현수막 글귀처럼 찾아오는 우리도 한결 기분이 좋다”고 웃어보였다. 

 

지난 촛불정국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거치며 봉하를 찾는 사람도, 지키는 사람도 모두 이전과 달라진 봉하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앞두고 봉하를 찾은 추모객들은 “올해 추도식은 노 대통령과 함께 ‘축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5월은 여느 해보다 많은 이들로 봉하마을이 붐볐다. 대선이 있던 5월9일 전후엔 평소보다 3배가량 방문객이 늘었으며, 서거 8주기를 앞둔 지난 주말 이틀간은 평소의 5배를 웃도는 3만5000여명이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5월 이후 최다 인파를 기록했다. 마을 내 장터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하나같이 “이런 광경은 대통령 퇴임 직후나 서거 당시를 제외하고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켜드리지 못해 여전히 죄스러워”

 

추도식 당일을 하루 앞둔 5월22일은 월요일인데도 여느 때 주말 못지않게 봉하마을 곳곳은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KTX 기차역인 진영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전부터 만원 상태로 종점인 봉하마을로 들어섰다. 오전 1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이미 묘역 입구에 놓인 방명록엔 200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기록을 남겼고 묘역 앞엔 하얀 국화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노 대통령 추모관 안에 위치한 영상 상영실은 자리가 가득 차, 뒤에 서서 시청하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국에서 모인 방문객들은 노 대통령의 흔적이 밴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추억했다. 노 대통령 생가 앞에선 “부르면 대통령님 부부가 지금이라도 웃으며 나올 것 같다”며 “대통령님!”이라고 불러보는 이들도 있었다. 노란 호접란 한 다발을 들고 온 박정연씨는 “호접의 ‘접’이 나비를 뜻한다. 노 대통령님 좋은 곳 여기저기 많이 다니시라는 의미로 사왔다”고 말하며 묘역 앞에 꽃을 바쳤다. 

 

5월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약 2만5000명의 내빈과 추모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이 진행됐다. ⓒ 사진=구민주 기자


 

봉하를 덮었던 슬픔이 많이 가셨다 하지만 여전히 묘역을 나서며 눈물을 훔치는 추모객들은 적지 않았다. 눈물이 이유는 대부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었다. 조용히 대통령을 기리고 싶어 하루 일찍 봉하를 찾았다는 추모객 변혁씨는 “우리가 노 대통령께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사진을 한참 쳐다보던 원창재씨는 “그땐 우리가 힘이 너무 약했다. 문 대통령만큼은 반드시 지켜드릴 것”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방문객들 사이로 추도식을 주관하는 노무현재단 직원들과 경호원들이 수시로 마을을 둘러보며 다음날 있을 추도식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사상 최다 인파를 고려해 노무현재단은 기존에 1500석으로 계획했던 식장 좌석을 두 배인 3000석까지 늘려 배치했다. 

 

文 “성공한 대통령 돼 다시 찾아오겠다”

 

당일 이른 아침부터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9시께 되자 차량 마을 일대는 추모객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가득 차 대부분의 추모객들이 수백 미터를 걸어 마을로 들어와야 했다. 추도식장 자리를 잡기 위한 추모객들의 줄 행렬도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은 오전10시 노 대통령의 묘역에 모여 함께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사모 회원 김옥선씨는 “올 때마다 울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대통령님 앞에 울지 않고 웃어보였다”고 말했다. 노사모 회원들과, 노무현재단이 사전에 모집한 자원봉사자들은 노란 옷을 맞춰 입고 오전 내내 본 추도식 준비에 나섰다.

 

노 대통령이 서거한 부엉이바위에도 일찍부터 많은 이들이 올랐다. 입구에서 20분정도 오르면 도착하는 부엉이바위에 선 추모객들의 기분은 남달랐다. 서울에서 월차를 쓰고 내려온 오성찬씨는 “부엉이바위에 직접 올라보니 생각보다 너무 높아 놀랐다”면서 “이곳을 오르시던 그날 아침 대통령님 마음은 얼마나 어려웠을까”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나라를 나라답게, 사람 사는 세상’이란 주제로 열린 8주기 추도식은 오후2시 예정대로 시작했다. 권양숙 여사와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식장에 들어서자 추모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맞이했다. 노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등도 함께 입장했다. 식장을 둘러싼 언덕 위까지 추모객들로 가득 찼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을 마친 뒤 분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현직 국회의장의 추도사와 가수 한동준의 축하공연으로 식을 열었다. 각 추도사 속엔 승리의 기쁨을 축하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특히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당신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 새 시대의 첫차가 출발했다”고 말하자 환호가 쏟아졌다. 노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특별영상과 도종환 민주당 의원의 시 낭독이 이어지자 객석에선 박수와 눈물이 교차했다. 

 

문 대통령이 인사말을 전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서자 추모객들은 한 목소리로 “문재인!”을 연호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이미 8주기 추도식 참석을 공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묻고 다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성공한 대통령이 돼 다시 찾아오겠다”고도 밝혔다. 1시간 10분가량 진행된 8주기 추도식은 참석한 내빈들의 헌화·분향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노 전 대통령이 떠난 후 봉하의 8번째 5월은 슬픔과 비탄보다 축하와 기쁨이 앞섰다. 추도식을 마치고 마을을 벗어나던 한 시민은 “8번의 추도식 모두 참석했는데 이렇게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적 없었다”며 내년 9주기 방문을 기약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모두 2만5000여명이 참석해 역대 추도식 중 가장 많은 추모객들이 함께했다. 추도식이 끝난 후에도 많은 추모객들은 한참을 더 봉하마을에 머물며 떠난 그를 충분히 기억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