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리저리 차이는 대학들
  • 이현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7.27 09:47
  • 호수 14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13일 대입 전형료가 수험생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는 직후 국·공립 대학들은 ‘자율적’으로 전형료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나흘 후에는 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서도 전형료 인하를 검토하기로 했다. 입시지원자들을 볼모로 대학들이 과도한 전형료를 받았다면 마땅히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고맙게도 교육부에선 전형료 원가 계산도 해 줄 것이란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우려할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사실 대학의 자율성이 땅에 떨어진 지는 오래됐다. 대학재단의 비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교수들의 연구비 유용이나 스캔노예 등 대학원생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사회적 논란이 된 상황에서 정부 간섭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 간섭 문제의 본질은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정부 감시와 처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 지시에 대학들이 찍소리 못하고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다.

 

© 시사저널 고성준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대학등록금은 9년째 동결상태다. 물론 교수들의 월급도 9년째 요지부동이다. 그동안 대학들은 건물도 짓고 더 많은 교수들을 충원했다. 대학재단의 전입금이 미미한 현실 속에서 대학들의 재정 문제는 교직원 급여를 줄여야 할지를 고민하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대학들은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하게 됐고, 연구비 수주가 대학과 교수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돼 버렸다. 대학 평가 항목에 정원감축이 포함되면 정원을 줄이고, 교육부가 융합학문을 강조하면 기존 학과를 가차 없이 폐지하고 정체 모를 이름의 새로운 학과가 신설된다.

 

따지고 보면 정유라와 관련된 이화여대 비리도 최순실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으려는 속셈이 출발점이다. 이화여대 정도의 명성과 규모를 가진 대학마저도 정부 지원이 얼마나 간절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의 생사여탈권을 갖다 보니 관료정책이 대학을 좌지우지한다. 이명박 정부에선 ‘녹색’이라는 단어가 연구과제의 핵심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가 포함된 프로젝트가 각광받았다. 정부가 과제 주제를 정하고 연구자들은 구색을 맞춰야 하는 하향식 지원 방식이 일반화돼 버렸다.

 

외부 규제에 휘둘리는 대학의 미래는 암담하다. 다양성과 자율성이 사라진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대학들이 지금의 대학보다 더 자율적이었다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다. 올해 입시요강에서 이미 정해 놓은 전형료를 급작스럽게 인하하는 이유가 자칫 정부에 밉게 보이면 정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까 우려한 대학들의 반응이라면 서글픈 현실일 따름이다.

 

대학은 학문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대학을 휘두르려 하지 말고 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에서 그쳐야 한다. 자본논리에 종속된다면 대학은 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왜 외국에선 기업이 대학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는 것일까. 기업이 할 수 없는 창조가 이뤄지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에선 대학을 도와주는 것과 간섭하는 것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교육부를 없애는 것이 교육을 제대로 세우는 첩경이라는 냉소적 농담이 더 이상 통용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