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①] 국회 문턱 못 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3 08:22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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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보수 기독교 세력 반발로 11년째 번번이 무산

지난 10월20일, 서울 도심에선 난민 환영 행사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정부가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481명 중 339명에 대한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 직후의 주말이었다. 이날 난민 환영 측은 “누구도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외쳤고, 반대 측은 “국민이 먼저”라며 이들을 추방할 것을 주장했다. 이튿날인 10월21일, 광주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맞붙었다. 광주에서 처음 열린 퀴어축제 현장 인근에 기독교 단체 등 성소수자 반대세력이 ‘보지 않을 권리’를 외치며 맞불을 놓았다. 금남로 한복판에선 한때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이처럼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해묵은 갈등들이 매주 광장에서 부딪치고 있다. 여성·난민·성소수자 등 소수라 불리는 이들의 권리에 대한 외침과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연일 강하게 맞선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반대할 권리’의 싸움이다. 이 팽팽한 평행선의 중심엔 ‘차별금지법’이 자리하고 있다.

 

9월8일 인천에서 열린 퀴어축제 현장에 나란히 들린 동성애 찬반 피켓 ⓒ 연합뉴스


첫 법안 발의 후 숱한 무산과 폐기 역사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에선 법률 부재가 약자들에 대한 혐오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난민과 성소수자들이 최근 무방비로 가짜뉴스의 과녁이 되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의 제정과 집행 권한을 가진 정부와 국회는 이에 대해 좀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간혹 의원 개개인이 소신에 따라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언급할 뿐, 당 차원의 결집된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실제 법 제정을 외치는 집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얘기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정치권의 의지가 전무하다”는 토로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난민과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주장만 날로 부각돼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추진에 주저하는 이유는 법이 가진 오랜 무산의 역사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본격적인 제정 논의가 시작된 이래 번번이 보수 기독교 단체의 거센 반발로 곤욕을 치러왔다. 2007년 10월 법무부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역시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항목을 문제 삼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발에 부딪혔다. 한 차례 좌절 이후 정부가 국회에 발의한 법안은 성적 지향은 물론, 가족형태·병력·언어·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출신국가·학력 등 7개의 차별금지 사유가 삭제된 반쪽 자리에 불과했다. 이 역시도 당시 17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18대 국회 들어와 노회찬(2008년)·권영길(2011년) 의원 등 진보정당 의원들이 다시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공감대를 모으지 못하고 계류하다 또다시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13년엔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들이 스스로 발의를 철회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최원식·김한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동료 의원 50여 명의 동의를 얻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 직후부터 기독교 단체의 법안 철회 요구가 끈질기게 이어졌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들은 제 손으로 법안을 무르고 말았다. 최원식 전 의원은 11월7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법안을 낸 후 내 지역사무소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끊임없이 항의해 와 난리가 났었다. 교회에 다니는 같은 당 의원들을 접촉해 법안 철회를 강하게 요구해 오기도 했다”며 “기독교 단체들을 숱하게 만나 대화도 해 봤지만 설득이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재·보궐 선거가 다가오던 상황 등을 고려해, 비슷한 시기 법안을 발의한 김한길 의원과 얘기해 철회를 결정했다.

최 전 의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강해진 지금도 정치권의 적극적인 목소리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기독교 단체에 맞서 당에서 차별금지법을 끝까지 밀어붙일 의원은 지금도 없을 것”이라며 “수차례 반대 세력과 공개토론을 진행해 법을 제정하는 쪽으로 여론을 끌어오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 다가올수록 요원해지는 차별금지법 논의

표 계산에 민감해지는 선거철이 되면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정치권에서 더욱 자취를 감춘다. 보수진영 정치인들과 같이 명확하게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는 한, 선거 때 맞닥뜨리는 차별금지법에 관한 질문은 그 자체로 가장 민감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다소 후퇴한 답변을 반복해 시민단체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의원들 역시 다수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 침묵하거나 모호한 입장을 취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회의 차별금지법안 발의는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법안 발의를 철회했던 2013년 이후 멈춰 있다. 향후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그간 반복돼 온 반대논리에 부딪혀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적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대해 11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미류 공동집행위원장은 “현재로선 정부나 국회 모두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꺼내 괜한 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심리가 지배적인 것 같다”며 “법 제정을 미루며 약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들을 내버려두는 정부나 국회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모든 인권과 관련된 법은 모두가 반대하더라도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만큼 결코 표 계산이나 개인적 이해가 개입해 다뤄질 수 없는 문제”라고도 강조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단체들은 현재 새 위원장 체제로 꾸려진 인권위에서 2020년까지 정부 및 시민사회와 협조해 차별금지법 마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다. 향후 인권위가 법 제정에 새로운 동력을 마련해 차별금지법 찬성에 소극적인 정치권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희망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강조한 데다, 인권위의 이러한 행보에 대한 보수야당 측의 거부감도 강해 법 추진 과정이 쉽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0여 년째 ‘다음 기회’만을 기약해 왔던 차별금지법이 과연 남은 20대 국회 기간 내 빛을 볼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인권위가 목표로 내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차별금지법 제정’의 길은 아직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모두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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