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탄생의 모든 스토리를 꾹꾹 눌러 적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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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선 전 강원지사 《평창실록-동계올림픽 20년 스토리》 출간
올림픽 유치 3수 과정과 2014년 7월 조직위원장 돌연 사퇴 내막 등 담겨

 

동계올림픽의 유치부터 준비까지, 나보다 그 과정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모든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내가 올림픽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사명이란 생각이다

 

온 나라가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에 한창이던 201712, 기자와 만난 김진선 전 강원지사는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머물며 지난 20여 년 간 동계올림픽 역사를 조용히 기록하고 있었다. 지역의 도지사로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올림픽 유치 3수 과정을 주도하며 올림픽 산파(産婆)로 불려온 김 전 지사. 그는 훗날 올림픽을 돌아볼 때, 자신의 기록이 정사(正史)로 남길 바란다는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1년여 집필을 거쳐 김 전 지사는 약650페이지 분량의 《평창실록-동계올림픽 20년 스토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책에는 두 번 올림픽 유치에 아깝게 실패했을 때의 눈물과, 세 번째 평창이 호명됐을 때의 환희, 그리고 20147월 모든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올림픽 초대 조직위원장 전격 사퇴의 내막 등이 담겼다. 김 전 지사는 이처럼 20년 공직생활의 희노애락을 모두 함께한 동계올림픽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러 차례 정의했다.

혹 올림픽이 폐막한 지 1년이 지나, 책이 세간의 관심을 덜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그에겐 없었다. 집필 과정에서도 그는 줄곧 책이 잘 팔릴 시기에 맞춰 부랴부랴 내보내기보다 하나라도 더 체크해 많은 내용을 찬찬히 담아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완성된 책 말미 100페이지에 걸쳐 올림픽 스토리를 함께 그려온 수천 명의 이름과 정보를 빼곡히 적은 것은 이러한 그의 목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월15일 출간되는 김진선 전 강원지사의 책 『평창실록-동계올림픽 20년 스토리』  ⓒ시사저널
1월15일 출간되는 김진선 전 강원지사의 책 『평창실록-동계올림픽 20년 스토리』 ⓒ시사저널

두 차례 유치 실패 기억 한참을 펑펑 울었다

1998년 강원지사로 취임한 이듬해 9, 김 전 지사는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의사를 공식 표명하며 긴 운명의 출발선에 섰다. “세 번의 도전 중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중요한 일을 했던 때였다”. 책에서 김 전 지사가 삼세판 도전의 기반이 됐다고 말한 첫 번째 도전을 시작으로, 그는 이후 12년에 걸친 올림픽 유치 삼수의 기억을 생생히 그려냈다. 인지도가 거의 없어 평양으로 오해받기도, 또한 그곳에도 눈이 내리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던 미지의 평창을 알리기 위해 그는 분투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IOC 위원들을 한명한명 만나 설득했고 1시간 가까운 국내외 프리젠테이션 자리에도 수차례 올라 연설했다.

세상에 평창의 이름을 알리기까지 두 번의 실패는 피할 수 없었다. 2010·2014 동계올림픽 유치 도전에서 불과 2~3표차로 캐나다 벤쿠버와 러시아 소치에 각각 패배한 뒤 김 전 지사가 느낀 낙담은 책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어느 순간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펑펑 울었다또 다음 4년을 기약해야 할 그때, 그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2017년 12월1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 하고 있는 김진선 전 강원지사 ⓒ시사저널 임준선
2017년 12월17일 시사저널과 인터뷰 하고 있는 김진선 전 강원지사 ⓒ시사저널 임준선

의아했던 조직위원장 사퇴 내막 공개

2011, 세 번의 도전 끝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후 모두들 김 전 지사는 올림픽 폐막까지 당연히 함께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올림픽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던 20147월 그는 돌연 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사임했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어떠한 관련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년 전 인터뷰 당시 그는 내가 괜히 나서면 지금 실무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다행히 문재인 정부 행보를 보니 동계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과제로 생각하고 살뜰히 챙기더라.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밝힌 바 있었다. 조직위원장 사퇴 이유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김 전 지사는 이번 책에서 2018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의 이명박 정부와 주변 인사들로부터 받았던 견제와 2014년 조직위원장 사퇴 내막을 조심스레 공개했다. 속 시원한 고발보단 당시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를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그에 따르면, 유치 도전을 앞두고 유치위원장을 맡을 때부터 그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탓에 선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묘한 신경전 끝에 결국 정부는 조양호 한진 회장과의 공동 유치위원장 선임을 허락했다. 유치위원회 구성에서도 정부 인사를 주요 직책에 임명하려는 정부 측과, 경험 많은 강원도 공무원을 주로 배치하려는 김 전 지사 간의 줄다리기도 있었다. 때마침 강원지사 퇴임을 앞두던 때라 위원장직도 함께 내려놓기를 바라는 분위기는 더욱 커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평창공동취재단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평창공동취재단

평창 유치가 확정되고,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바뀐 후에도 그를 향한 견제는 계속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0년 김 전 지사와 함께 한나라당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지원 특별위원회활동을 함께 하는 등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정부 부처의 견제를 지속적으로 받았고, 급기야 20145월 감사원으로부터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수입 면에서 운영이 부실했으며, 문동후 조직위 부위원장이 타깃이 된 것이라는 얘기가 흘렀지만 결국 감사의 칼끝은 김 전 지사에게도 향하게 됐다.

그해 7월 결국 동계올림픽과의 오랜 인연을 내려놓은 김 전 지사는 처음 동계올림픽을 만난 것이 운명이었듯 이렇게 떠나는 것도 운명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리고 36개월 만에 무사히 열린 올림픽을 그는 집에서 시청했다. 올림픽 당시 그는 기자에게 감격적이고 다행스럽다. 지난 기억들이 스쳐가는 순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축제가 끝나고 1년이 또 지난 지금 김 전 지사는 책을 통해 주요 시설에 대한 활용 방안, 동계스포츠 강국을 만들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책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와 쓴 지금, 이 기록이 향후 올림픽 유치에 다시 도전할 때 가장 정확한 도움을 주는 교과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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