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전두환씨에게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8 14:00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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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군말 없이 다음 재판에 자진해 출석하길

평소에 골프를 아주 좋아하고 즐긴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골프 좋지요. 무엇보다, 넓게 펼쳐진 잔디의 짙은 초록빛은 골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계절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골프장의 상큼한 초록을 즐기는 데도 한계가 있지요. 겨울이면 짙푸르던 그 풍경도 어김없이 사그라집니다. 그런 겨울 골프장에 당신은 가 있었습니다. 12월 찬 바람이 매서운 그곳에서 끝까지 라운딩을 마쳤다고 하더군요. 그 체력과 열정이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그처럼 강인한 체력과 열정을 지닌 당신이 자신의 범법 행위를 심판하려는 재판에는 알츠하이머 병과 지독한 감기·고열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추운 겨울에 골프를 했든 하지 않았든, 골프장에서 여전히 ‘각하’라는 호칭을 듣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법부 판결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하긴 했어도 골프를 즐길 자유까지 박탈된 것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당연히 가 있어야 할 재판에 건강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습니다. 큰 사건이건 작은 사건이건 일반 국민들은 자신의 범죄 행위와 관련한 재판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출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법적 의무라고 여깁니다.

5·18기념재단과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전 씨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훼손 관련 재판 출석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 연합뉴스
5·18기념재단과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전 씨의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훼손 관련 재판 출석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 연합뉴스

당신은 당신이 쓴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맹비난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 혐의에 대한 법적 시비를 가리자는 재판에 당신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지난해 8월의 첫 재판에는 알츠하이머 병 진단을 받았다며 나오지 않았고, 그다음에는 광주가 아닌 서울에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면서 버텼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법부의 권위에까지 도전한 당신의 행동으로도 모자라 당신의 부인인 이순자씨는 한 발짝 더 나가 국민들의 속을 뒤집는 황당한 발언까지 쏟아냈습니다. 전두환 당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니요. 부창부수도 유분수지, 신군부의 잔혹한 통치와 5·18 민주화운동의 상처가 여전히 깊은 나라에서 그런 말이 어찌 아무렇지 않게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아 아직도 머릿속이 멍멍합니다. 당신의 집권 시절 국민들을 죽게 하고, 다치게 하고, 마음 아프게 했던 그 끔찍했던 기억을 두 부부만 까맣게 잊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전두환씨, 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29만원’ ‘독감’ 등등 숱하게 이어지는 당신의 비겁함을 계속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칩니다. 더는 군말 없이 다음 재판에 자진해 출석하는 것만이 당신 때문에 고통받았던 많은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길임을 부디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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