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남역 사건 화장실, 스티커만 ‘여성안심’ 경찰은 ‘모르쇠’
  • 김민주 인턴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30 13:44
  • 호수 15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 가보니 CCTV도 비상벨도 방치…관련 법안은 국회에 표류 중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발생했던 건물의 여자화장실이 최근 수개월 간 안전장치가 전혀 설치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안심 화장실’ 스티커와 CCTV, 비상벨 등 안전장치가 ‘엉뚱한’ 남자화장실에만 있었다. 취재 결과, 사건 직후 경찰은 건물 2층 사건 현장에 초기 조치를 취했지만, 지난해 5월 화장실이 층별 분리가 된 뒤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3층으로 옮겨진 여성화장실에는 8개월째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다. 여성들은 건물 밖에 붙어있는 ‘여성안심 화장실’ 스티커를 보고 안심하고 들어가더라도 위험에 처했을 때 경찰로부터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16년 5월22일 시청역 출구에 서울 강남역 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2016년 5월22일 시청역 출구에 서울 강남역 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누구도 관리 않은 강남역 사건 화장실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 한 술집의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여성들은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며 포스트잇을 붙이고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사건 발생 직후, 남녀공용화장실은 칸막이로 분리됐고 비상벨이 설치됐다. 2년8개월이 지난 지금, 사건 현장을 다시 살펴봤다. 

1월14일 기자가 찾아간 강남역 화장실은 층별로 분리돼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화장실은 2018년 5월에 2층 남자화장실, 3층 여자화장실로 재분리 됐다. 2층 남자화장실 문 옆에는 진한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경고 종 모양이 그려져 있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스티커에는 ‘여성안심 화장실’, ‘첨단 비상벨 시스템 작동 중’이라고 적혀있었다. 내부 세면대 쪽에는 비상벨이 하나 부착돼 있었다. 비상벨 밑에는 ‘위급 시 누르면 경찰이 출동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3층 여자화장실에서는 남자화장실에 붙어있는 ‘여성안심 화장실’ 스티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자 전용 화장실 ONLY WOMEN’이라는 큰 글씨의 문구만 붙어있을 뿐 비상벨도 없었다.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계 관계자는 “업주가 화장실을 분리할 때 스티커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붙어 있던 게 그대로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남자화장실에 있는 비상벨마저도 망가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래 비상벨을 누르면 서초경찰서 112 상황실로 연결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층별 분리를 하면서 선이 끊어졌다. 이와 관련해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계 관계자는 “층별 분리 이후 선이 떨어져서 연결이 안 되고 있다. 시설주의 동의가 없으면 유지 보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비상벨은 강남역 사건 발생 이후 경비회사인 케이캅에서 기업의 사회공헌사업 일환으로 설치했다. 케이캅 측은 “작동이 안 되고 있었는지 몰랐다. 사업주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재설치를 하더라도 설치비용과 매달 나오는 통신비를 부담할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서초경찰서는 1월22일 케이캅 측에 전화를 걸어 비상벨 점검을 요청했다. 이후 케이캅 측은 1월23일 화장실이 있는 상가 사무실과 1층 사업주의 요청에 따라 2층에 작동이 안 되고 있던 비상벨을 철거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고장 나 있던 것을 고치거나 새로 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다. 

CCTV 역시 남자화장실 문 위에만 붙어있었다. 그러나 작동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1층 술집과 2층 노래방에서 사용하는 화장실이지만 현재 2층 노래방은 공사 중이었다. 1층 술집 안에는 CCTV가 작동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기자가 전해 받은 점장 번호로 전화를 시도했지만 2주간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서초경찰서 측은 “공공 CCTV가 아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서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발생했던 건물의 2층 남자화장실에 '여성안심 화장실' 스티커와 CCTV가 있다(왼쪽). 같은 건물 3층 여자화장실에는 '안심' 스티커와 CCTV가 있지 않다. ⓒ 시사저널 김민주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발생했던 건물의 2층 남자화장실에 '여성안심 화장실' 스티커와 CCTV가 있다(왼쪽). 같은 건물 3층 여자화장실에는 '안심' 스티커와 CCTV가 없다. ⓒ 시사저널 김민주

경찰 “우리 책임 아냐…순찰 강화로 충분”

강남역 사건 이후 경찰은 사건이 발생했던 화장실을 ‘서초경찰서 특별순찰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해당 구역의 안전과 직결되는 CCTV와 비상벨 등이 8개월째 유명무실한 채로 방치돼 있음에도 경찰은 이를 업주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계 관계자는 “(비상벨과 관련해서는) 업주의 권한이라 별다른 추가 조치 계획은 없다”며 “다만 순찰을 돌 때 더 자주 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화장실에 ‘여성안심’ 스티커가 없고, 비상벨과 CCTV도 없는 상태에서 매일 24시간 순찰하지 않는 이상 ‘특별순찰’의 범죄 예방 효과는 미지수다. 서초경찰서 측은 1월29일 강남역 사건 화장실의 안전 보완과 관련해 “구청이랑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화장실 내 비상벨 설치의 의무화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하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모든 공중화장실에 비상벨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그 설치 및 관리비용 등의 일부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병관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개정안은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법안소위원회에 상정돼 심의에 들어간 상태로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이 개정안을 대표발의 한 배경은 공중화장실을 관리하는 지자체의 조례 제정 움직임이 더디기 때문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비상벨 설치 근거 조례를 제정한 지방자치단체는 전국 228곳 중 35곳(15.4%)에 불과하다. 서울시의 경우 송파구와 금천구 두 곳뿐이다.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서초구는 지난해 12월19일에 관련 조례 개정안을 상정했으며 아직 계류 중이다.

현재 법으로는 이미 사용 중인 남녀공용화장실을 남녀분리화장실로 바꾸라고 강제할 수단도 없다. 2017년 11월 바닥면적 2000㎡(약 605평) 이상인 업무시설과 상가 건물 등 근린생활시설을 지으려면 반드시 화장실을 남녀 분리해 설치하도록 하는 ‘공중 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8년 11월부터 시행된 이 개정안은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 시설물에만 적용된다. 이미 지어진 건물이나 작은 평수의 상가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정부가 공중화장실 안전과 관련해 사업을 지원하기로 확정한 대상은 ‘민간 개방 화장실 남녀 분리 지원사업’이 유일하다. 전국 시·군·구 226곳의 민간 남녀 공용 화장실 2곳씩 모두 452곳의 남녀공용화장실을 남녀개별화장실로 분리할 방침이다. 이 사업은 시민단체인 ‘화장실문화시민연대’가 국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직접 제안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는 관련 예산으로 200억원을 제안했지만 실제 확정된 예산은 22억6000만원이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는 “2016년 서울시 조사 결과 민간 남녀공용화장실이 약 10만개였다. 전국 452곳은 너무 적다”며 아쉬워했다. 서울시는 올해 이 사업을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는 강남역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8개월이 지났지만 사건 관련 실태조사조차 아직 하지 않았다. 서울시 질병관리과 환경보건팀 신귀식 주무관에 따르면, 서울시는 올해에 남녀공용화장실이 몇 개가 있는지 실태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토대로 내년도에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4년 만에 대책 마련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