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해체하는 데 10년은 걸리겠지요”
  •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4 09:00
  • 호수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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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일본인의 오래 살던 마을 보내기

“오늘로 마을 자치회 총회는 마지막입니다. 공동재산을 나누는 데는 반 사람들끼리 결정해 주세요. 임원들이 결정하지 못합니다.”(나가쓰라 자치회 회장)

대(大)쓰나미로 마을이 없어진 지 만 7년10개월이 지난 1월20일 80여 명의 자치회 소속 주민이 모인 마지막 총회가 열렸습니다. 재해 전에는 150세대 규모의 마을이었습니다. 8년 사이에 크고 작은 마을 모임이 있었지만 80명이나 모인 자리는 드물었습니다. 열 명 남짓 둘러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이 정갈하게 정렬돼 있었습니다. 1반부터 7반까지 번호를 달고 있는 테이블에 그 반 사람들이 둘러앉는 형식이었지요. 6반과 7반은 구성원이 적어 합석테이블이었습니다. 각각 10여 명이 둘러앉고 가장 앞자리에 임원과 총회에 참석해 준 현의원·시의원 등 내빈이 앉았습니다. 마을 총회에 현의원이 참석하는 예는 드물지만, 2세 의원인 그는 이 마을이 자신의 튼튼한 지지기반이기에 중요한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해 인사를 합니다. 마을 총회로는 모양을 잘 갖춘 격이지요. 

마지막 총회에 모인 나가쓰라 자치회 소속 주민들 ⓒ 이인자 제공
마지막 총회에 모인 나가쓰라 자치회 소속 주민들 ⓒ 이인자 제공

일본 시골 마을 ‘야나미’로 공동체 구성

“어디 살아?”

“그동안 연락도 못 하고 죄송했습니다. 아이들 학교도 있고 해서 시내에 집을 지었습니다.”

“어머님은 안녕하셔?”

“지금도 바다 일은 하고?”

“피난소 생활 때 보고 처음이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회의가 시작돼도 그칠 줄 모릅니다. 뿔뿔이 흩어져 살기에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많은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쓰나미로 집은 물론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었기에 매년 행사로 치러지는 오마쓰리(お祭り)에 나오지 않으면 서로 만날 기회가 아주 없거나 드물지요. 

일본의 시골 마을은 ‘야나미(家並·가옥의 순서)’로 소단위 공동체를 구성합니다. 마을이 있고 그 안에 가옥 순서대로 반(班)을 정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가옥 순서로 정하는 반은 마을 공동체 간의 역사나 서열을 알려주고 마쓰리나 공동작업 등을 할 때 큰 역할을 합니다. 이 마을의 경우 6반과 7반은 가장 나중에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즉 신참자(新参者)지요. 한 반은 보통 25세대로 구성되는데, 6반과 7반은 합해도 18세대밖에 안 됩니다.

마을 옛 모습을 조사하던 중 들은 얘기로는 이들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이나 대만에 살다 패전 후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외가나 친가의 먼 친척들을 의지해 돌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한 부류는 마을 어귀 바닷가 한편에 염전 터가 있었는데 여기서 일하려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그곳에 산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외진 곳에 하나둘 집을 지어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면적이 넓어 두 반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밀도가 낮아 둘을 합해 한 반으로 취급해 왔다고 합니다. 이렇듯 마을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그들의 역사와 서열이 반으로 남아 구별하고 때로는 차별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마쓰리나 마을 공동작업을 할 때 동원돼야 할 노동력이나 필요한 예산을 갹출하는 데도 반별로 사람 수나 금액을 정해 분담합니다. 특히 마쓰리에 있어 반(또는 구미(組)라고도 함)은 아주 중요합니다. 반별로 마쓰리를 준비하는 당번이 정해지고 돌아가면서 총책임을 지게 되거든요. 서로 경쟁하는 구도도 벌어지기에 같은 반 사람끼리 술 모임을 자주 하면서 자연스럽게 결속력도 키웁니다. 이 마을의 역사가 300여 년이기에 대를 이어 그렇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 마을이 쓰나미로 없어졌습니다. 

3·11 동일본대지진 재해를 계기로 쓰나미로 바닷물이 들어온 곳은 위험지역으로 지정돼 집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이 통과되면서 마을 재건은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다시는 그곳에 집을 지을 수 없게 돼 마을 커뮤니티를 상실하게 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해체 작업에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점입니다. 마지막 총회를 가진 이날은 마을 공동재산이었던 산야의 나무를 판매한 수입 870만 엔(8900만원 상당)을 나누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10년은 걸리겠지요? 마을을 해체하는 데.” 

동일본대지진이 있던 2011년 4월(지진으로부터 한 달 후), 쓰나미 피해가 컸던 마을 사람이 생활하는 피난소를 찾았습니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마을 구장(區長)의 말입니다. 저는 이해가 안 갔습니다. 쓰나미로 인해 마을은 송두리째 바닷물에 잠기거나 산 위로 패대기쳐진 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마을 터는 쓰레기조차도 없을 정도로 말끔했는데 10년에 걸쳐 마을을 없앤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됐던 것이지요. 


중요한 결정 반별로 의견 수렴

“슬프게도 쓰나미로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네 그래서 끝났지요. 후손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것만은 싫거든요”라는 말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9년이 지난 이 시점에 공유재산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 구장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300년간 함께 만들어왔던 마을을 완전히 해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에 걸쳐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9년간 나가쓰라 사람들은 비록 사는 곳은 달랐지만,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거나 공동체로서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는 선조 때부터 내려온 가옥 순이 살아나 반별로 움직였습니다. 지진 후 거처하던 피난소에서도 앞으로의 일들을 도모하기 위해 반별로 모였습니다. 실종자 수색도 반별로 할당된 인원이 모여 작업했습니다. 그 후로 뿔뿔이 흩어져 생활터전이 바뀌자 반별로 연락처를 관리하고 안내해야 할 일들을 맡아 했습니다. 공유재산을 나눌 때도 누가 자격이 있고 누가 자격이 없는지 반별로 모여 토론해 정했습니다. 마을 의견을 총괄하는 구장은 반에서 내놓은 의견에 철저히 따릅니다. 마쓰리를 주도적으로 해 조사에 항상 도움을 주던 분들의 표정도 이날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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