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나가고 싶은데 자기계발은 ‘막막’
  • 이미리 문토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1 15:00
  • 호수 15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리의 요즘 애들 요즘 생각] 정부 주도 평생교육 시장, 옛날 그대로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자기계발’이라는 유령이. 우리는 고민의 수렁에 빠졌다. 직장 생활 3년 차에 접어들 무렵에 말이다. 회사를 이렇게 계속 다닐 수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업무가 겨우 손에 익숙해지니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불안감. 회사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평생직장’은 그야말로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한민국 직장인 상당수가 3·6·9년 차에 느낀다는 그 불안감. 바로 ‘3·6·9 법칙’이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소셜 살롱의 문을 찾는 ‘유령’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평생교육에 대한 참여자들의 뜨거운 열의와 달리 관련 산업과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특히 정부 주도의 평생교육 시장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 갇혀 있다. 당장 인터넷에 ‘국비 교육’을 검색해 보라. 취업률 제고를 위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기반한 자격증 중심 교육 일색이다. 잘해 봐야 컴퓨터 응용 프로그램을 습득하는 강의뿐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직장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최근 소셜 살롱을 많이 찾고 있다. ⓒ 이미리 제공
‘평생직장’이 사라진 직장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최근 소셜 살롱을 많이 찾고 있다. ⓒ 이미리 제공

경직된 교육 플랫폼은 혁신의 걸림돌

문제는 NCS에 기반한 교육이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실무 여건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산업 환경은 최신 기술을 불과 몇 달만 지나도 진부한 것으로 만든다. 그런 시기에 국가가 특정 직무 역량을 일률적으로 표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니. 자격증 위주의 커리큘럼과 강사 중심의 공급자 중심주의적 주입식 교육 행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 데 적절치 않다. 기존 질서를 혁신적으로 해체하고 파괴하는 시대에 자격증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애플이 아이패드 같은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늘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성공 이유를 통섭과 융합에서 찾았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경쟁력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은 한국식 평생교육 산업에서 어떤 경쟁력을 느낄까? 스티브 잡스가 얘기했던 혁신의 원천, 통섭과 융합은 찾을 수 있을까? 정부의 교육 플랫폼은 국가가 정한 NCS 기준에 따라 커리큘럼을 만들고 교육을 해야만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경직성은 기존 사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혁신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낡은 모델은 낡은 시장을 혁신하려는 스타트업들이 해당 분야를 혁신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1999년 평생교육법이 제정되고 20년이 흘렀다. 그간 직무 역량 중심의 평생교육 정책은 한국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각 산업에 필요한 역량을 표준화해 인적자원을 시장에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산업구조는 더 빠르게 변했다. 우리 사회가 지금 필요로 하는 역량은 정해진 일을 똑같은 방식으로 찍어내는 ‘공장식 직무 전문가’가 아니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결합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 직무 전문가가 필요한 때다. 국가 평생교육 정책 방향에 새로운 전환이 요구된다. 시대의 소명을 다한 배회하는 유령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