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와 김영철의 ‘뒤끝 작렬’…모멸감에 보복, 재보복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5.07 11:00
  • 호수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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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는 어쩌다가 ‘비둘기’에서 ‘매’로 변신했나…작년 7월 방북 때 김영철에 ‘모멸감’

4월의 마지막 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는 최근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조선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하여 궤변을 늘어놓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올해 말까지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면 핵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시한부를 정해 주시었다”고 말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미국 협상팀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지만 ‘올해 말’이라는 시한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4월 들어 미국을 향한 북한의 반응은 ‘강성파 비난’으로 요약된다. 대상은 협상팀을 이끌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4월18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국장 권정근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대담에서 “폼페이오가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판이 지저분해진다”며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대화 상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고 답했다. ‘슈퍼 매파’ 볼턴에 대해서는 외무성 실세 최선희의 입을 빌려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기자의 질문에 최선희는 “지금 볼턴의 발언은 매력이 없이 들리고 멍청해 보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지난해 7월7일 북한 평양에서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지난해 7월7일 북한 평양에서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 연합뉴스

폼페이오, 무리한 보안검색으로 앙갚음

북한은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 협상팀을 더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이다. 그 기저에는 이번 노딜에 강성 참모진의 진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최선희의 발언에서 그러한 생각이 읽힌다. 실제로 2월 하노이 회담에서 폼페이오와 볼턴은 ‘얄미운 시누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볼턴이야 원래 ‘미국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인사라고 치더라도 폼페이오의 변심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하노이 회담장 주변에서는 볼턴보다 폼페이오의 반대가 더 심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폼페이오가 애초부터 매파를 자처한 건 아니다. CIA(중앙정보부) 국장 시절만 해도 폼페이오는 볼턴 이상으로 대북 문제에 원칙론을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국무장관에 오르자 대화파로 변신을 시도한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매파인 볼턴과 비둘기파인 폼페이오 간 이견차가 상당했다는 소문도 그래서 나왔다. 이러한 행정부 내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북핵 문제는 폼페이오, 중동·중남미 문제는 볼턴이 맡는 것으로 정리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리고 싱가포르 회담 전후만 해도 폼페이오는 남과 북을 오가며 북핵 협상의 새로운 판을 짜는 듯했다. 

그랬던 폼페이오의 모습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싱가포르 회담 직후인 지난해 7월 평양을 다녀오고 나서부터다. 미국 행정부 내 소식에 정통한 한 외무관리는 “폼페이오가 평양에 가 김영철과 회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김영철이 폼페이오에게 모멸감을 줬고, 그 일로 폼페이오는 북한의 협상 의지에 의문을 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폼페이오가 평양을 떠나자마자 당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요구가 “날강도적 망발”이라고 반발했다. 외교가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고 본다. 10월 폼페이오가 4차 방북을 하고 나서 바로 김영철이 뉴욕으로 날아가기로 돼 있었지만 미국이 돌연 회담을 취소하면서 두 사람 사이 갈등은 표면화됐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여러 차례 김정은 위원장 명의로 친서를 보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일반에 공개한 것은 올 1월3일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친서를 통한 대화는 꾸준히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1월초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회담 의사를 공개하면서 북·미 간 공식 대화는 재개됐다. 하지만 폼페이오의 ‘뒤끝’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월 중순 김영철을 워싱턴으로 부르는 과정에서 미국 항공사가 북한 수행단에게 과도한 보안검색을 요구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외교사절단에까지 무리하게 보안검색을 하는 경우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는 외교 수장인 폼페이오가 충분히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김영철 등 특사단이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해프닝 뒤에 ‘폼페이오의 뒤끝’이 있다고 보고 있다. 폼페이오와 김영철 간 기 싸움은 이후 워싱턴 회담에서도 이어졌다. 북핵 신고를 요구하자 김영철이 “우리가 무슨 핵이 있다고 이러느냐”며 너스레를 떤 것이다. 폼페이오와 회담을 마치고 김영철은 지나 헤스펠 CIA 국장을 별도로 만났다. 이 또한 폼페이오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는 외교부보다 정보기관의 힘이 세다. 김영철이 CIA 국장을 별도로 만났다는 것은 외교라인이 결정하지 못하는 협상을 정보기관끼리 만나서 해결하자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미국 협상팀은 김영철 교체를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유엔 총회 등 여러 자리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치켜세우고 나선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폼페이오와 김영철 간 갈등 탓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폼페이오가 매파로 변신한 배경에는 개인의 정치적 야망도 숨겨져 있다. 1963년생인 폼페이오는 캔자스주 연방 하원의원을 지내다 CIA 국장에 오른 깜짝 스타다. 여세를 몰아 2018년 국무장관에 선임되면서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 정가에서는 폼페이오가 2020년 캔자스주 상원의원에 도전할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공화당을 등에 업고 상원의원에 오르기 위해서는 보수적 색채를 낼 필요가 있으며 최근의 강경 노선도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게 미 정가의 분석이다. 


北, 김영철 문책성 교체로 선수 쳐

북한은 최근 북핵 협상의 무게중심을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바꾼 모습이다. 김영철이 통전부장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인 50대 장금철이 선임됐다. 북한의 협상팀 교체에 미국은 아무런 대응을 않고 있다. 현 국면은 미국의 무대응에 북한이 연일 강도 높게 비난하는 형국이다. 폼페이오는 북한이 자신을 협상라인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한 데 대해 “내가 여전히 키를 쥐고 있다”고 일축했다. ‘연말까지’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미국을 압박하는 데는 북한 협상팀의 다급함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일단 북핵 협상 2라운드의 첫 수는 북한이 뒀다. 협상라인 교체가 그것이다. 공은 미국에 넘겨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영철 교체는 하노이 회담 실패에 따른 문책성 인사며, 김영철이 물러났다고 해서 군부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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