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인 “文대통령 원칙 지키고 있다…인사는 실패하는 것 같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4 08: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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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인터뷰]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송기인 신부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⑭이종찬 전 국회의원 ⑮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⑯ 박관용 전 국회의장 ⑰ 송기인 신부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서울에서 KTX를 타고 밀양에 도착하니 정오 무렵이 됐다. 점심식사를 할 식당을 찾고 있는데 ‘지잉 지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오후 1시에 인터뷰가 예정된 송기인 신부의 지인이었다. “신부님이 지금 식사 중이신데 와서 점심을 같이 하자 신다”고 했다. 먼저 온 손님이 있다는 걸 아는 터라 사양했더니 그러지 말고 오라며 택시 타고 어디 가자면 된다고 알려줬다.

밀양역에서 출발한 지 30분 남짓 지나자 10여 채의 시골집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나왔다. 마을 뒷산 쪽으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자그마한 정자(亭子)를 품은 한옥이 대문을 활짝 연 채 손님을 맞았다. 거실에서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던 송 신부가 멀리서 왔다며 취재진을 반겼다. 산나물이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에 합석해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산수(傘壽·80세)를 넘긴 노(老)신부의 삶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시작된 1972년 사제 서품을 받은 송 신부는 이후 생을 민주화운동에 온전히 바쳤다. 서슬 퍼런 시절 노무현·문재인 변호사와 의기투합해 독재정권에 맞섰다.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에서 두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에 이르기까지, 송 신부의 발자취를 쫓다 보면 반세기 동안 진행된 한국 사회의 부침과 마주하게 된다.

송기인 신부 하면 ‘과거사’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기자가 송 신부에게 인사한 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을 때다. 송 신부가 공직을 맡은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과거사위원회 일도 시민단체들의 ‘강압’에 못 이겨 떠안다시피 맡았다. 이제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과거사 정리’에 대한 그의 소신은 여전했다.

“우리나라가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는 제대로 다음 발전을 못 한다는 주장을 평소에도 해 왔어요. 우리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일단 정리하고 가야 된다는 거죠. 항상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여한 후에는 적극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법을 너무 좁혀 놔서 한계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잘했다고 생각해요.”

현 정부에서도 적폐청산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얘기하고, 한편으로는 정치적 보복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피로감도 있고, 만날 과거만 붙들고 있다가 언제 전진하냐 이런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그다음 보복이다 이건데요, 만약 보복 받을 일을 했다면 보복을 받아야죠. 좀 떳떳하게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보복을 받는 거니까.”

송기인 신부는 지난해 8월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시작된 유신체제 반대 시위는 인근 마산으로 확산됐고, 이는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가져온 10·26 사태의 계기가 됐다. 올해는 유신체제 몰락의 단초가 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다.

“10·26이라는 게 10·16(부마민주항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습니다. 김재규의 최후진술을 보면 나와요. 정보부장으로서 (부산에 내려와) 시청 앞 육교에서 보니까 이건 학생들 데모가 아니야 민중혁명이야. 그래서 서울에 올라가 거사를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때 만약 10·16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희생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요.”

2007년 3월14일 송기인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필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를 개시하기로 결정한 사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7년 3월14일 송기인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필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사를 개시하기로 결정한 사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은 순수한 분…공평사회 꿈꿔”

송기인 신부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남다르다. 1982년 3월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때 처음 만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함께 이끌었다. 이듬해 총선을 통해 ‘변호사 노무현’이 ‘국회의원 노무현’이 되도록 정계 입문을 권유한 이도 송 신부였다. 1986년 노 전 대통령에게 세례명 ‘유스토’를 영세했던 송 신부는 2009년 5월23일 차갑게 식은 ‘형제’의 이마에 손을 얹고 ‘편안히 하느님 품으로 가시라’ 기도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과는 인연이 오래됐죠.

“오래됐죠. 오래됐고, 같은 생각을 했고, 함께 뜻을 맞춘 것도 많고. (노 전 대통령이) 미문화원 사건 변론을 맞으면서 처음 만났죠. 당시 8명으로 신청한 변호인 중 한 명이 빠지게 된 거예요. 그래서 (변호사) 한 사람 더 필요했는데 (다른 변호사가) 노무현을 얘기하는 겁니다. 변론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깨끗하다고 그래요. 그래서 들어왔는데 월요일마다 재판이 끝난 후 저녁식사를 함께 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이야기 도중에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나오는 배역 이름을 죽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그 많은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 물었더니 학생 때 배웠으니까 기억한다는 거야. 세상에 그런 머리가 다 있구나 생각했는데 ‘머리가 이렇게 좋은 놈이 대학은 문도 못 밟아 봤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대학은 몰라도 성당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오라고 했더니 진짜 온 거예요. 부부가 함께.”

노 전 대통령은 성당에 자주 나왔나요.

“그러진 못했어요. 대통령이 된 후에 있었던 일인데, 김수환 추기경이 나한테 전화를 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신자가 맞느냐’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와 묻는교’ 그랬더니 ‘홍콩 기자가 (한국은) 천주교 나라가 아닌데 어떻게 연거푸 천주교 신자가 대통령이 됐느냐 그렇게 질문을 하는데 대답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러시는 거야. 그래서 ‘천주교 신자일 뿐만 아니라 아주 착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있을 때 무슨 일 때문인지 같이 차를 마시는 자리가 있었어요. 대통령이 성당에 안 나가고 있으니까 내가 욕을 많이 얻어먹고 있다 했더니 ‘아니 신부님이 뭐라 캤는교. 성당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착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는 거야. 그게 맞지.”

노 전 대통령 정계 입문 때 신부님이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소개하신 걸로 압니다.

“(1988년 총선을 앞두고) YS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시민사회에서 4명을 후보로 출마시켜 달라고 해서 알아보겠다고 했어요. 마침 변호사들이 많이 모인 자리가 있어서 ‘국회의원 되고 싶은 사람 있나’ 그랬더니 한 명 말고는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노무현은 생각 없나’ 그러니까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안 할 랍니다’ 그래요. 결국 한 명만 신청했는데 다시 전화가 와서는 한 사람만 더 찾아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에게) 다시 얘기했지. 부산에서 꼬부작 꼬부작 하는 거보다 국회의원이 돼서 서울에 가면 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했더니 ‘전혀 취미 없는데요’ 또 그러는 거예요. 그럼 할 수 없지 했는데 며칠 뒤에 전화가 와서는 출마해 보겠다는 거야. ‘와 마음이 변했노’ 물으니까 ‘국회의원 될 생각은 전혀 없고요, 출마 한번 멋지게 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됐다 싶어 추천했고 (부산) 남구에 출마한다는 신문 보도까지 났는데 남구는 싫고 동구로 나가겠다는 거야. 당시 동구는 허삼수가 현역 의원이었는데 누가 나가도 허삼수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때예요. 그런데 당선이 된 거야. 국회의원이 되려고 나간 게 아닌데 국회의원이 된 거죠.”

신부님은 ‘노무현’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고 계시나요.

“순수한 분이야. 쉽게 표현하자면 ‘촌놈’이야. 자기를 꾸며서 예를 차리는 성격은 못 돼요. 말을 다듬어서 고상하고 세련되게 할 줄도 모르고. 그냥 순수함 그대로예요. 속임수를 쓴다든가 재주를 부린다든가 그런 능력은 없고. 그게 대통령으로서 (야당과) 부딪힌 몇 가지 요인 중 하나가 됐을 거예요.”

후세가 기억해야 할 ‘노무현 정신’은 뭘까요.

“노무현 정신은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어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잖아요. 셋이 같이 모였을 때 서로 공통된 점이 ‘사람이 우선이다’ 이거예요. 사람부터 생각해야 된다는 거죠. 실제로는 법 우선이 많죠. 법치주의 국가니까 당연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군사정권 때는 국가가 더 우선이었죠. 노무현이 특별히 생각한 건 공평사회, 그러니까 힘든 사람은 좀 힘 안 들게 해 주고 힘이 넘치는 사람은 좀 낮춰 살면서 공평사회를 만들자. 그런 꿈을 가지고 옆을 안 돌아보고 나가니까 부딪히는 게 많고 그랬죠.”


“노무현은 얘기하고 문재인은 듣는 스타일”

송기인 신부는 문재인 대통령과도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가 송 신부가 재임했던 영도 신선성당을 다녔다. 문 대통령은 1980년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하고 사업연수원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 형편도 안 됐다.

“변호사가 됐는데 개업을 할 수가 없어요. 돈이 없으니까. 시보(試補) 할 데도 없었어요. 데모했다고. 그땐 겁이 나서 어떤 변호사도 내 사무실에 와서 일하라고 못 했어요. 김광일(변호사)이 시민운동 하는 사람이고 (문 대통령이) 자기 후배고 하니까 시보 자리를 줬죠. 시보 끝나고 사무실 내야겠는데 돈이 없단 말이지. 마침 그때 노무현이 사무실을 오픈한 거야. 그래서 같이 가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학생이나 청년, 노동자들 사고는 전부다 그쪽에서 일을 맡게 됐죠. 같이 모여서 보니까 하나도 안 다른 거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쉽게 동화가 됐죠. 오히려 문재인이 현장 책임자로 가장 많이 앞장섰어요.”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스타일이 좀 다르지 않습니까.

“노무현은 다른 사람 얘기를 듣기보다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고, 반대로 문재인은 자기 얘기를 하기보다 다른 사람 얘기를 많이 들어요. 노무현은 책을 많이 읽어서 본인이 많이 알다 보니 다른 사람 얘기가 시시한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 거고. 문재인은 책을 엄청나게 빨리 읽어요. 나한테서도 책을 가져가면 한 사나흘 있다가 다 읽었다고 가져와요. 독서 속도가 아주 빨라요. 그 양반 부인도 그렇고. 책을 억수로 읽는데도 그렇게 말을 많이 안 해요. 듣는 걸 많이 하지. 지금 청와대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성격이 그런 거 같아. 그 양반은 그렇게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표현을 별로 안 하는 성격이에요. 노무현하고 문재인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고 봐요.”

문 대통령은 정치를 절대 안 할 거라 얘기를 해 왔어요.

“그 말은 진짜예요. 문재인에게 부산시장 출마하라고 데모 그룹을 집에 보낸 적이 있어요. 집 앞에 텐트를 쳐놓고 시장 출마하라 그랬는데 안 하겠다는 거예요. 결국 시장 출마를 안 했죠. 노무현 돌아가시고도 전혀 정치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럼 왜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냐면 이명박(전 대통령)이 너무 못하니까.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지. 거기에 화가 난 거예요. 나한테 늘 그 얘기를 했어요. 나라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정치에 뛰어든 거죠. 직접 해 봐야 되겠다. 그러니까 이명박이 대통령을 시킨 셈이죠.”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됐는데 국정운영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개인적인 생각이니 틀릴 수도 있어요. 확실한 건 원칙을 지킨다는 거예요. 문재인은 원칙을 지키고 있다. 지금 이행을 조금밖에 못 했지만은 공약을 지키고 실천하려고 하는 거죠. 과거사 정리가 그런 거 아니겠어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약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사람이에요. 그리고 청렴결백하게 하고 있죠. 청렴도에서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맑다고 생각해요. 또 정치철학은 사람 우선이다, 일도 좋고 발전도 좋지만 사람을 우선으로 하자. 이 점은 지켜지고 있다고 봐요.”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경제가 불안하다는 건데, 이전에 쌓여왔던 걸 털고 나가려다 보니 이렇게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또 경제라는 게 우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세계경제가 같이 받쳐줘야 되는 거죠. 국민들에게 좀 참아 달라 얘기하고 싶어요. 조금 참으면 기회가 올 거라고 봐요. 경제를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게 꼭 지금 대통령 탓이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북관계는 상당히 개선됐다고 볼 수 있죠.

“남북관계는 전에 없이 좋아진 편 아니겠어요. 그렇게 노력하고 있고. 남북관계나 통일 문제는 국민들이 당장 급한 것부터 챙기니까 그렇지 좀 멀리 본다면 이게 맞다고 봐요. 남북이 분단돼 있는 것보다는 통일이 되는 게 더 이익이라는 거죠. 통일이 안 돼서 보는 손해하고 통일됐을 때 이익하고 차이가 크다고 봐요. 이념을 떠나서 그래요.”

노 전 대통령 때도 그랬는데, 현 정부에 대해서도 한쪽에서는 급진좌파라 그러고 한쪽에서는 개혁후퇴라고 그래요. 대통령으로서 이런 점에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지금 좌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구상에서 좌나 우는 다 지나갔다고 봐요. 지금은 경제 발전을 얼마나 하느냐에 각 나라가 매진하고 있죠. 예컨대 베트남이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잖아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돈벌이를 안 하느냐, 전혀 아니잖아요. 우리가 사회주의여야 되냐 자유민주주의여야 되냐 이런 건 구시대 얘기지 지금 논할 가치가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잘 계승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야당에서는 ‘노무현 시즌2’라고 이야기하는데 또 한편에서는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 게 맞느냐’ 이런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아요, 현재까지 정책 진행 상황을 보면 미흡한 점이 있죠. 대통령도 모르는 게 아니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데 왜 실행할 수 없느냐 그게 아마 제일 딜레마일 것 같아요. 기본 정신인 사람 중심으로 펑펑 밀고 가면 되겠는데 그게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 말이죠. 이 점은 우리 국민 전체가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 번에 만족을 할 수는 없어요. 한술에 배부른 게 아니고 과정을 다 거쳐야 되니까요. 이런 과정을 참아낼 인내심이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요.”


“靑 참모진 이렇게밖에 못하나”

현 정부에 대한 비판 가운데 하나가 인사문제다. 장관 인사가 번번이 국회 청문에 막히고 후보자가 낙마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여권 내에서 청와대 참모진 교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참모진이 대통령을 잘 보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참모진이 이렇게밖에 못하나 이런 얘기인데, 나도 대단히 미흡하다고 생각을 해요. 민정수석실이 (인사 검증을) 그렇게밖에 못하나. 그런데 실제 사람을 찾아보면 정말로 없다고 해요. 어떤 사람이 괜찮다 해서 검증해 보면 뭔가가 걸린다는 거죠. 정말로 무결한 사람을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하고, 흠이 적은 사람을 찾아내야 하는데, 지금 인사에서 많이 실패를 하는 거 같아요.”

문 대통령을 휴가 때 만나셨는데 무슨 얘길 나누셨나요.

“대통령 되고는 따로 안 만나는데 방학(휴가) 때 두 번 만났죠. 할 얘기가 하나도 없어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힘이 안 드는 일이라는 게 없죠. 기대에도 못 미치고. 누가 한다 해도 그런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문 대통령에게 당부나 조언을 하신다면.

“지금처럼 계속해라, 그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공약을 최대한으로 지켜야 돼요. 다만 (최저임금의 경우) 대통령이 조금 순서를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소상공인에게는 종업원에게 만원을 줄 수 있는 돈벌이를 할 수 있게 지원해 주고 나서 만원을 주라고 그랬으면 될 텐데 그게 순서가 바뀐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잘못한 거라고 생각은 안 해요. 잘못이 아니라 순서가 그런 건데, 결국 만원은 받아야 살지 않겠어요.”


“노조 과도하게 보호…권리만 요구해선 안 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 양상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권부터 여야 대치가 치열하다.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나와 장외 투쟁을 벌이고 있다. 각 당이 경쟁적으로 강조해 온 ‘민생국회’는 공염불에 불과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가 철학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 없이 이해관계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국가를 책임지고 정권을 맡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적어도 국회는 가동시키고 싸워야죠. 민생에 있어 이렇게 급한 게 많은데 사보타주를 한다면 그건 사당(私黨)을 위한 거지 국가를 위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사회 통합을 위해선 정치권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자유한국당이) 하는 행태를 보면 지식층이나 어른들이 얘기한다고 들을 그런 수준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뭘까요.

“좀 참는 거예요. 인내하는 것. 당장 필요하다 그러지 말고 조금 기다려보자 그런 정신이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싶어요. 급하게 자기 욕심을 다 만족시키려 하는데 조금 더 템포를 늦춰서 기다려보면 답이 나오게 돼 있어요. 빨리 뭔가를 성취하려는 욕심이 문제라는 거죠. 계단을 다 밟아야 올라가는 거지 계단을 뛰어넘어 올라가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나라 노조도 과도하게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노조에서는 아직도 멀었다 너무 어렵다 그러는데 한 번에 다 이룰 수는 없어요. 노동자들 모임에서 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노조가 욕심을 너무 내는 거예요. 몇 년 더 기다리면 될 건데 왜 그렇게 하느냐 얘기했다가 욕을 먹었죠. 우리 노동의 질이 너무 나쁘다 얘기를 했다가 노조(지도부)가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노동의 질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떨어져요. 노동자들이 권리만 요구할 게 아닌 거죠. 당연히 해야 할 의무에 있어 많이 처져 있지 않느냐, 이건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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