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섭의 the건강] 빨대와 병원균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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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개월 동안 '플라스틱 지구'라는 연재 기사를 위해 장기간 취재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남한 면적의 15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태평양에 형성돼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의 극히 일부만 그 정도라는 겁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병원균을 이동하는 '뗏목' 역할을 한다는 가설까지 나왔습니다. 영국 스털링대 연구팀은 스코틀랜드 해변 다섯 군데에서 채집한 플라스틱 쓰레기 중 45%가 복통·경련을 유발하는 대장균으로 오염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 90%에서 위염을 일으키는 비브리오도 발견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연구팀은 대장균과 비브리오가 물에서 2~4주일 생존할 수 있으므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병원균을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플라스틱이 자외선으로부터 병원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병원균이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 가설대로라면, 병원균은 오래 생존하면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병원균 확산을 막는다고 해도, 한 나라에서 발생한 콜레라균이 지구 반대편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부메랑과 같습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조각을 먹은 어패류를 인간이 다시 먹습니다. 플라스틱의 환경호르몬과 병원균이 우리 몸에 좋을 리 만무합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파괴된 환경과 생태계도 인류를 위협합니다. 결국 내가 무심코 빨대 하나를 버리는 것은 나를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2017년 7월5일 서울과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충북 충주호(제천지역 명칭 청풍호)에 쓰레기 섬이 만들어졌다. ⓒ연합뉴스
2017년 7월5일 서울과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충북 충주호(제천지역 명칭 청풍호)에 쓰레기 섬이 만들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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