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을 가다] 《기생충》 관중을 홀렸고 《악인전》 밤을 수놓다
  • 프랑스 칸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4 10: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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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국제영화제 현지 리포트

5월14일 개막한 제72회 칸국제영화제(25일 폐막)가 반환점을 돌았다. 개막작인 짐 자무쉬 감독의 《더 데드 돈트 다이(The Dead Don’t Die)》를 시작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기 위한 레이스를 시작한 총 21편의 경쟁작들도 대부분 공개된 상황.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출품되면서 한국영화는 4년 연속 경쟁부문에 후보를 올리게 됐다. 이원태 감독의 《악인전》도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칸 현지에서 올해 영화제의 풍경들을 전한다.

ⓒ EPA 연합

황금종려상을 향한 레이스

올해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은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켄 로치, 다르덴 형제, 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거장뿐 아니라 ‘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도 신작을 올렸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포함된 가운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가 경쟁부문의 마지막 작품으로 깜짝 발표되며 기대를 모은 바 있다. 타란티노의 신작 초청은 《펄프 픽션》(1994)으로 제4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에 대한 영화제의 예우다. 동시에 최근 몇 년간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와의 관계 단절, 스타 부재 등에 대한 지적을 꾸준히 받아온 칸영화제가 할리우드에 적극적으로 구애를 보낸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주연인 브래드피트와 마고 로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왼쪽부터)도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주연인 브래드피트와 마고 로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왼쪽부터)도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 EPA 연합

실제로 올해 영화제를 방문한 최고의 스타들로 단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첫손에 꼽힌다. 주연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가 레드 카펫을 밟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비경쟁부문 상영작이긴 하지만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중 하나인 파라마운트사의 신작 《로켓맨》의 프리미어를 유치한 것 역시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로켓맨》은 영국의 전설적 팝스타 엘튼 존의 전기영화로, 《킹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태런 에저튼이 엘튼 존을 연기한다. 그 역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신인 감독들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중국의 신예 디아오 이난 감독의 독특한 누아르 《더 와일드 구즈 레이크(The Wild Goose Lake)》, 비디오 아트 작업 등으로 유명한 라지 리 감독이 프랑스 사회 속 아프리카계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아낸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흑인 여성 감독 마티 디옵의 《아틀란티크(Atlantic)》 등이다. 신인 감독들을 적극적으로 경쟁부문에서 소개하는 것 역시 칸영화제가 최근 몇 년간 주력해 선보이는 움직임 중 하나다.

다만 영화제 초반은 크게 이슈 몰이를 하는 화제작 없이 다소 조용한 분위기였다. 개막식 다음 날인 5월16일 공개된 켄 로치 감독의 《소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는 그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만든 첫 영화이기에 어느 정도 주목받은 면이 있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칭이 있는 감독은 이번에도 노동문제를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임시직 선호 경제, 즉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그늘 아래 갇힌 가족의 이야기다. 터무니없이 비인간적인 시스템 아래서 노동의 스트레스는 가족의 삶을 잠식하며, 그들은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서로를 탓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5월17일 공개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는 영화제 공식 매체인 스크린 데일리에서 최고 평점(3.3점, 총 4점 만점)을 받으며 눈길을 끌었다. 알모도바르 감독이 자신의 영화 인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사랑의 기억들을 돌아보며 만든 자전적 작품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가 출연한다. 평점으로는 황금종려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지만, 탐미적이고 유려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영화가 사회적 시사점을 선호하는 칸의 입맛에 맞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된다면 알모도바르 감독의 인생 첫 황금종려상 수상이다. 1770년대 프랑스 여성 화가와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우아한 드라마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Portrait of a Lady on Fire)》 역시 평점 3.1점을 기록하며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이다.

palais des festivals은 칸영화제의 공식 센터로 모든 극장과 마켓이 연결돼 있다. ⓒ 이은선 제공
palais des festivals은 칸영화제의 공식 센터로 모든 극장과 마켓이 연결돼 있다. ⓒ 이은선 제공

전반적으로 침체된 마켓…블록버스터 등 인기 여전

영화제 개막 후 가장 북적였어야 할 첫 주말 역시 차분한 분위기로 지나갔다. 종일 비가 내리며 쌀쌀해진 날씨가 한몫했다. 5월19일 배우 알랭 드롱의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을 두고서는 잡음이 일기도 했다. 그가 과거 가정폭력 등의 이슈에 연루됐기 때문. 수상의 정당성을 지적하는 한 취재진의 질문에 티에리 프리모 예술 감독은 “우리는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는 게 아니라 배우로서의 경력에 상을 수여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올해로 60회를 맞은 칸영화제의 마켓(마르셰 뒤 필름) 분위기 역시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다. 영화제 마켓이 열리기 전 이미 시놉시스 등만으로 사전 거래되는 작품이 늘고, 콘텐츠가 필요한 넷플릭스나 아마존 그리고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등 ‘큰손’들의 다양성 영화 구매가 해마다 점점 더 늘고 있는 분위기다. 마켓 기간 동안 중소 규모 업체들이 구매할 수 있는 영화들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무역전쟁을 선포한 여파로 중국 바이어들이 지갑을 꽁꽁 묶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이어들의 관심을 고루 모은 건 스타 감독의 신작 그리고 블록버스터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를 시작으로 최근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여러 편의 마블 히어로 영화를 연출하며 스타 연출가로 성장한 조 & 앤서니 루소 형제 감독의 신작이 칸영화제 마켓에 공개됐다. 조 루소는 5월16일 칸의 칼튼 호텔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전 세계 바이어들 앞에서 톰 홀랜드 주연의 신작 《체리(Cherry)》를 소개했다. 원작은 니코 워커의 동명 회고록으로, 이라크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얻고 돌아온 육군 의료원이 약물 치료제 중독에 빠지고, 이후 은행 강도가 되는 드라마틱한 실화다. 크리스 헴스워스 주연의 액션 《다운 언더 커버(Down under cover)》,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신작 SF 《문폴(Moonfall)》 역시 바이어들의 관심을 끈 작품이다. 《문폴》의 경우 의뢰가가 250만 달러에 달한다는 점도 화제였다.

바이어들은 올해 마켓에서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로 젠더 이슈를 꼽았다. 여성 감독 연출작, 여성 중심 서사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클리프행어》(1990) 여성 리부트 버전, 로자먼드 파이크 주연의 스릴러 《아이 케어 어 랏(I care a lot)》 등이 발표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젠더 이슈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성 중심 서사임에도 여성이 여전히 소모적인 캐릭터로 등장하거나, 극의 퀄리티 자체가 떨어지는 작품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수의 수입사 관계자는 마켓에서 먼저 공개된 올해 경쟁작 《시빌》 역시 그런 면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해외 바이어들의 한국영화 구입 문의도 이어졌다. 올해 마켓에 진출한 한국영화 업체는 총 8개. CJ엔터테인먼트의 《기생충》, 엠라인에서는 전도연 주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에 해외 바이어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스크린 데일리는 “한국의 코미디, 정치 드라마가 바이어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고 보도하며 《엑시트》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남산의 부장들》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5월21일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 이은선 제공·EPA 연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5월21일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 EPA 연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5월21일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 이은선 제공·EPA 연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5월21일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 이은선 제공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5월21일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 이은선 제공·EPA 연합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5월21일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 EPA 연합

영화제 후반 분위기 불 지핀 《기생충》

다소 조용했던 영화제의 분위기가 반등한 것은 5월21일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영화제 후반부에 배치된 두 감독의 작품이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합을 벌일 가장 강력한 후보들로 부상한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9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맨션에 침입한 살인마 찰스 맨슨이 감독의 아내 샤론 테이트를 잔혹하게 살해한 실화에 타란티노의 상상이 더해진 작품이다. 타란티노는 디카프리오와 피트가 연기하는 서부극 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감독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들과 그 시절에 바치는 러브레터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끔찍한 실화는 상상을 더해 실제와는 크게 다른 각색으로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이것이 타란티노 특유의 ‘난장’으로 표현됐다는 것을 특이점으로 지적할 만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상영 전부터 외신의 관심을 받아왔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봉 감독의 기존작에서 장르를 뒤섞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특별한 재능이 엿보인다”고 평하며 이번 작품의 방향을 가늠하는 인터뷰를 소개했다. 《베니티페어》는 칸영화제 특별판에서 올해 상영작 중 가장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로 이 영화를 꼽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옥자》(2017)로 칸의 환대를 받았던 봉 감독이 그의 장기인 ‘기이하게 스멀거리는 근원적 이야기(creepy-crawly roots)’로 돌아왔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편 상영 하루 전인 5월21일 전 세계 취재진에 배포된 《기생충》 보도자료에는 스포일러 자제를 부탁하는 감독의 특별 전언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현지 시각으로 5월21일 밤 10시에 공개된 《기생충》은 과연 ‘스포일러 금지 당부’가 필요한 영화였다.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2013)가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계층 구조를 수평으로 보여준 영화였다면, 이번 영화는 지상부터 지하까지 연결하는 계단 등 수직의 이미지로 한국 사회의 계층 차이와 충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전 가족 백수인 기태(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과외선생으로 들어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반지하 등 특수한 한국적 공간과 사회적 상황들을 버무린 이 영화에서는 놀라운 유머 감각 역시 두드러진다. 

5월21일 뤼미에르 대극장 상영 이후에는 8분간 기립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상영에 앞서 상기된 얼굴로 레드카펫을 밟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등은 환한 미소로 쏟아지는 관객의 환호에 응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봉 감독과 《옥자》로 인연을 맺은 뒤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배우 틸다 스윈튼과 다리우스 콘지 촬영 감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외신도 대부분 긍정적 리뷰들을 내놨다. “덩굴처럼 손을 뻗어 당신 안에 깊숙이 박히는 영화”(가디언), “《살인의 추억》 이후 봉 감독의 가장 성숙한 작품”(할리우드 리포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공포가 어른대는 동시에 희비가 엇갈리는 작품”(인디와이어) 등의 호평이 이어졌다.

5월22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나는 언제나 조금 이상한 장르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며 “다만 장르 규칙을 고스란히 따르지 않아 생기는 틈바구니로 사회 현실, 정치적인 이슈, 한국인의 삶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흘려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수직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계단이 많이 등장해 우리끼리는 ‘계단영화’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말하며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 역시 밝혔다. “반지하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어와 프랑스어 표현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그곳은 분명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더 힘든 상황이 된다면 완전히 지하로 갈지 모른다는 공포감. 그런 묘사가 서구 장르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송강호는 “《기생충》은 예술가 봉준호의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성숙”이라고 표현하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영화 《악인전》의 주연 배우 마동석도 이번 칸영화제에 참석해 환호를 받았다. ⓒ 이은선 제공
영화 《악인전》의 주연 배우 마동석도 이번 칸영화제에 참석해 환호를 받았다. ⓒ 칸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칸에서도 마동석은 통했다…《악인전》도 주목

5월22일 밤 10시30분.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악인전》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이 열렸다. 이원태 감독 그리고 배우 김무열과 김성규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6년 《부산행》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 때는 칸의 레드카펫을 밟지 못했던 마동석이 올해는 참석해 칸의 환호를 받았다. 120여 분 동안 극장 안은 웃음과 때론 탄식으로 가득했고, 영화가 끝난 뒤 약 5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원태 감독은 “집에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란다. 특히 이 남자(김성규)를 조심하라”는 유머러스한 인사를 전했다. 앞서 《악인전》은 3분가량의 프로모션 영상만으로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 선판매된 바 있다. 칸 필름 마켓에서도 마동석의 인기에 힘입어 해외 바이어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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