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극복한 시사평론가 유창선의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9 11: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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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몸의 극한을 넘어선 한 평론가의 분투

종편 전성시대는 시사평론가의 범람을 불렀다. 언론인, 정치인, 변호사 등 다양한 갈래에서 쏟아져 나온 평론가들이 제각각의 톤으로 어떤 사안을 천착한다. 이들 가운데는 진영논리에 따라 말을 바꾸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이 속에서 균형추를 유지하는 이도 있다. 견고한 논리와 균형을 갖고 있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잔영으로 남아 있는 깊은 톤을 가진 유창선 평론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명쾌한 분석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많은 고정팬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최근 인생 곡선은 만만치 않았다. 종편의 홍수로 평론가가 범람하던 보수정권 10년 동안 오히려 마이크를 빼앗겼다. 이 시기 그는 고전을 다시 탐독하면서 인문학으로 범위를 넓혔다.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유창선 지음│사우 펴냄│224쪽│1만3800원 ⓒ 조창완 제공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유창선 지음│사우 펴냄│224쪽│1만3800원 ⓒ 조창완 제공

명쾌한 분석과 균형 잡힌 시각 지닌 평론가

다행히 촛불혁명으로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다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올해 초 그는 뇌종양이라는 힘든 병마를 만났다. 끝을 알 수 없고, 죽음과 직면한 더 큰 암흑이었다. 그런데 그가 최근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출간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아직 재활을 하고 있는 그를 어떤 힘이 책으로까지 이끌었을까?

“나에게 글을 쓰는 시간은 살아서 존재함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병상에서 책을 쓰기에는 여러 가지로 힘든 여건이었지만, 책을 씀으로써 병마를 이겨내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것을 나만의 일기장에 담아두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다시 현장에서 뛸 수 있게 되자마자 병마가 찾아온 올 한 해는 소회가 남다를 듯하다.

“2월에 수술을 받았다. 어렵고 위험한 수술이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여러 후유증이 남게 되었다. 아직 병원에 있으면서 투병과 재활을 계속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기에 고통스러웠지만 시련을 견뎌내는 자신을 발견한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나서 책까지 썼으니,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책을 들고 놀라게 되는 것이 저자가 놀랄 만큼 평정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중에 확인하지만 뇌종양에 대한 다양한 증세들이 나올 때, 병을 발견하는 과정과 수술로 이어지는 장면들도 그렇다. 또 제목처럼 이번 계기를 통해 스스로를 더 찾아가려는 모습은 일반인들에게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며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언행의 일치가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겼다. 인문학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는 ‘당신의 의지로 시련을 이겨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으로 흔들린다는 것은 언행의 불일치가 아니겠는가.”

그런 힘의 계기에는 작가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진 신념이 작용하는 게 당연했다. 시사평론가로 살아오면서 가진 사명을 물었다.

“내가 평생을 지켜온 가치는 정의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감을 지키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써왔다. 그것이 나의 삶을 이끌어온 자존감이었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보릿고개도 길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시사평론가가 되면서 그에게도 다양한 유혹이 있었다. 특히 진영 대결의 구도가 명확한 우리 정치 구도에서 어느 진영에 속하면 많은 이익과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어느 한 진영에 속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우지만, 자기 진영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성찰 없는 태도로 눈감고 모른 척하게 된다. 내가 지켜온 양심은 그런 자기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양자택일의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런 경계인은 환영받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얼굴을 지키기 위해 고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힘든 과정에서 그를 지켜준 이들은 가족이었다. 책에도 수술과 회복 등 모든 과정에서 희망을 같이한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깊게 담겨져 있다.

“아내는 나를 살려내고 다시 일어서도록 모든 정성을 쏟았다. 나는 아내가 고마웠고 아내는 고통을 잘 견뎌낸 나를 고마워했다. 가족은 생사고락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들이다. 가족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힘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좋을 때만 좋은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욕망과 짐 내려놓고 가벼운 삶 살고 싶다”

이번 책이 작가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랄까.

“시련의 과정에서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잘 견뎌낸다면 자신을 재발견하고 살아가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 살면서 찾아오는 불행도 행복도 모두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다. 이 책이 아픔을 겪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널리 읽히고 힘을 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목처럼 이제 작가는 욕망도 짐도 내려놓고, 자기중심으로 무겁지 않은 가벼운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은 생은 작은 서재에서 계속 영혼이 담긴 글을 쓸 수 있고, 그 글을 읽어주는 분들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갖는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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