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유재석’ 콤비의 새로운 《무한도전》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2 10: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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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변주되는 《놀면 뭐하니?》…예측불허 전개로 새 영역 개척

MBC 《놀면 뭐하니?》는 《무한도전》을 끝내고 휴식기에 들어갔던 김태호 PD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처음엔 유재석에게 카메라를 주고 자신의 일상을 찍게 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그 카메라를 넘기도록 하는 포맷이었다. 각각 두 사람에게 카메라를 넘기면 받은 사람도 자신의 일상을 찍고 또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이것은 관찰예능의 1인칭 버전 같아 보였다. 기존 관찰예능이 제작진의 카메라가 대상자를 관찰하는 거라면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 직접 찍었다. 그래서 더 내밀하고 자유분방한 영상이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관찰예능이 전성기를 구가함에도 기존 프로그램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던 유재석이 마침내 새 트렌드로 영역을 넓히는 의미도 있었다. 또 TV 방영 전에 유튜브를 통해 먼저 공개됐기 때문에 뉴미디어 실험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재미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여기서 《놀면 뭐하니?》는 변화를 시도했다. 카메라를 받은 사람이 찍은 영상을 단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이 조세호의 집에 모여 함께 영상을 감상하며 품평하는 설정을 추가했다. 스튜디오에서 동영상 시청 토크를 하는 기존 관찰예능과 어느 정도 유사해졌지만, 스튜디오의 정제된 분위기가 아닌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 여럿이 뭉쳐 있는 구도로 변형됐고 그래서 더 친밀한 느낌이 강조됐다.

ⓒ youtube 캡처
ⓒ youtube 캡처

성장하고 확장하는 ‘유플래쉬’의 세계

그렇게 친밀하게 여럿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식사하고, 게임도 하는 실내 버라이어티로 이어지기도 해서 한동안 사라졌던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의 부활 같은 느낌도 줬다. 여기까지의 행보를 보면 이 프로그램이 고정된 형식 없이 계속 변화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변화 끝에 요즘 관심을 모으는 것이 ‘유플래쉬’ 특집이다. 제작진은 유재석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대중적인 드럼 비트를 배우도록 해 그의 드럼 연주를 녹음했다. 프로그램 초기에 카메라를 두 사람에게 각각 전해 줬듯이, 녹음된 파일을 두 뮤지션에게 각각 전해 줘 자신의 악기로 한 트랙을 추가하도록 했다. 예컨대 건반 연주자라면 드럼 비트에 건반 소리가 입혀지는 것이다. 작업을 마친 뮤지션은 다시 다른 뮤지션에게 파일을 넘겨 동일한 작업을 하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파일이 돌면서 단순한 드럼 비트는 점점 풍성한 사운드의 음악으로 변해 갔다. 그렇게 하나의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청자가 지켜보는 것이다. 처음에 유희열과 이적에게 각각 파일이 넘겨졌고, 이들이 다음 뮤지션을 선택했다. 누가 작업했느냐에 따라 애초 하나의 드럼 소리였던 음원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변해 갔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도는 중에 다시 갈래가 갈려 여러 곡으로 발전했고, 심지어 제작진이 의뢰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드럼 비트 소스에 음악을 만들어 추가하는 뮤지션도 생겨났다.

초기에 카메라를 돌렸을 때도 누구에게 넘겨져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상상할 수 없었던 영상 등장의 가능성을 내포한 미지의 모험이었다. 음원을 돌리는 과정도 그렇다. 누구에게 넘겨질지, 향후 누가 참여할지, 어디서 두 갈래로 갈라질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상상도 할 수 없던 곡이 만들어질 수 있는 미지의 음악적 모험이다.

이렇게 예측불허의 전개로 점점 판이 커지는 전개는 흥미진진하다. 특히 이번 ‘유플래쉬’는 그 전개 과정에서 악기와 뮤지션들이 부각돼 의미가 더욱 컸다. 우리 대중음악계에선 가수와 작곡가 정도만 부각될 뿐 악기를 다루는 뮤지션은 세션이란 이름으로 음지에 머무른다. 그런 이들을 이 프로그램이 전면에 세웠고,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에 시청자가 귀 기울이게 했다. 밴드의 전통이 미약한 한국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성과라 할 만하다.

MBC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 MBC
MBC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 MBC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 ‘뽕포유’

음원이 돌면서 마치 생물처럼 성장하는 가운데 유재석도 드럼을 연마하며 성장했다. 마침내 초보적인 클럽 공연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해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안겼다. 이렇게 어떤 과제에 도전하면서 점점 일이 커지고 출연자가 놀라운 성취를 이뤄내는 설정은 바로 《무한도전》의 장기였다. 《놀면 뭐하니?》의 ‘유플래쉬’가 《무한도전》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놀면 뭐하니?》에선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뽕포유’다. 유재석이 유산슬이란 예명으로 트로트 가수에 도전한다는 설정인데 한 회 방영 만에 대박이 터졌다. 트로트계의 스타인 진성과 함께 《안동역에서》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최근 트로트 부흥 분위기와 맞물려 반응이 뜨겁다. 앞으로 유재석이 트레이닝을 받으며 성장해 가고 히트곡까지 발표한다면, 이 ‘뽕포유’도 어느 수준까지 확장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여러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뽕포유’도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 특집을 떠올리게 한다. 《무한도전》 당시 멤버들이 댄스스포츠, 조정, 레슬링, 에어로빅, 신곡 작업과 콘서트 등 다양한 도전에 나섰고 그때마다 상황이 예측불허로 커졌으며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사소한 계기가 알래스카나 인도까지 찾아가는 국제적 스케일로 커지는 이야기가 《무한도전》에선 자주 등장했다.

도전과 확장을 시도하면서, 정해진 틀이 없고, 무한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놀면 뭐하니?》는 마치 《무한도전》과 같은 특성을 보여준다. 《무한도전》에서 출연자들의 성장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감동을 줬던 것처럼, 《놀면 뭐하니?》에서도 유재석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이 시청자를 몰입시킨다. 물론 《무한도전》과 같은 여러 멤버가 없기 때문에 캐릭터 플레이나 유대관계 등은 나타나지 않지만, 유재석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면서 일을 키운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흡사 ‘유재석의 무한도전’으로 《무한도전》의 일부분이 돌아온 듯한 느낌까지 있다. 이런 점이 《무한도전》 종영 이후 상실감을 느꼈던 시청자에게 각별하게 다가온다.

《놀면 뭐하니?》는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설정을 시작할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고정 출연자 충원이나, 캐릭터와의 관계 설정이 나타날 수도 있다. 유재석을 중심고리로 해서 각 프로젝트별 멤버들이 평행우주처럼 공존할 수도 있다. 그러다 가끔 ‘어벤져스’처럼 서로 교차하면서 세계관을 확장할 수도 있다. 《무한도전》으로 한국 예능사의 신기원을 이룩했던 김태호 PD가 앞으로 어떤 상상력을 보여줄지, 유재석은 또 어떤 도전에 나서고 얼마나 성장할지가 향후 《놀면 뭐하니?》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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