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아남자” ‘경제 빙하기’ 대비 들어간 기업들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19.11.14 10: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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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줄이고 불필요한 사업부문 정리 수순…정부 낙관론 ‘무색’

정치권 일각에선 여전히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오래된 주제를 놓고 입씨름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관심사는 이제 ‘생존’이다. 한 10대 그룹 관계자는 “회사생활 오래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제부터는 살아남는 싸움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현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경제정책을 설계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출세가 목표라면 기업은 생존이 목표”라며 “전망이 어두우면 당연히 ‘축소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내놓는 ‘경제 낙관론’이 무색하게 기업들은 이미 사실상 ‘경제 빙하기’ 대비에 들어갔다. 경기침체 상황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불필요한 사업 및 조직을 줄이고 채용 방식을 바꾸는 식의 ‘다운사이징’이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韓 잠재성장률 2년 새 0.4%P 하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72%다. 2017년 대비 0.4%포인트가량 떨어졌는데 36개 회원국 중 아일랜드, 터키 다음으로 하락폭이 크다. 미국과 일본은 오히려 잠재성장률이 올라갔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가 보유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물가를 상승시키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뜻한다. 쉽게 표현하면 잠재성장률이 낮으면 재정 투입 등으로 돈을 쏟아부어도 경기가 다시 살아나기 힘들다는 뜻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전망을 통해 확인됐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2.0%, 2.2%로 전망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올해 및 내년 각각 1.8%, 1.6%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미래연구원은 한국이 올해 1.87%, 내년 1.78%로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해 충격을 던졌다.

수치뿐 아니라 기업 체감경기도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들은 이미 하나둘 장기 침체에 대비한 월동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우선 고용과 관련해 심상찮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기업들의 대졸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했을 때 고용을 늘리겠다는 답은 17.5%밖에 안 됐다. 올해 경기가 어렵다는 방증인데 앞으로의 경제 전망도 좋지 않다 보니 기업들이 채용을 늘리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대규모 공채보다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수시 채용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업 입장에서 채용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데, 실제로 현대자동차나 SK 등 대기업들이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불확실성 커졌다’ 비상경영 돌입한 재계

부실하거나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사업부문에 대해서도 발 빠른 정리가 이뤄지고 있다. 계속 영업손실을 내는 부문을 단순히 희망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끌고 갈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화와 두산이 최근 면세점 사업에서 발을 뺀 것이 그 예로 꼽힌다. LG 역시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비주력 사업들을 정리하고 주력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항공사들도 수익성이 크게 나지 않음에도 그동안 끌고 가던 부문들에 대해 정리에 들어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화물 서비스를 일부 중단했고 LCC(저비용항공사)들은 부실한 노선을 차례로 없애는 수순에 들어갔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업계 전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인데 우선 내년도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항공기 도입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채용도 함께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와 더불어 기업들은 위기를 버티기 위해 현금성 자산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금성 자산은 불황기에 기업이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케 하는 지표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역설적으로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실기업들이 매물로 나오는 가운데 현금을 축적한 기업들이 필요한 부문을 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하나가 바로 금융위기 때”라며 “현금을 확보한 기업들이 부실한 기업들을 인수하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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