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에 총선·대선 결딴난다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2.06 17:00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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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의 민심풍향계] 선거제는 총선에, 공수처는 대선에 큰 영향

패스트트랙으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밥값을 못 하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당연히 통과되어야 할 민생법안은 벌써 여러 달째 패스트트랙 올가미에 갇혀 있다. ‘민식이법’ 등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안전법규나 안전시설 미비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부모들이 울부짖어도 요지부동이다. 지난 4월 국회는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느라 이미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어 있지만 의원들은 마치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백병전을 불사했다. 법을 만드는 전당에서 불법이 자행되는 현장은 실시간으로 안방에 중계되었다. 민망하고 낯 뜨거운 수준이었다.

11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위)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아래)이 국회에서 각각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11월29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위)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아래)이 국회에서 각각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범진보진영,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유리

여기서 없어지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해 왜 한쪽에서는 통과시키기 위해 저리 야단이고,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결사 저지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패스트트랙이 내년 총선과 그다음에 있을 대통령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선 내년 국회의원 선거는 이번 선거제 개정에 따라 판도가 달라진다. 기존 선거법으로 실시된다면 지금까지 해 왔던 선거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늘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면 정당에 따라 사정이 달라진다. 득표 비율에 비례하는 의석수가 타당하다는 일반론에 정치인들이 동의하겠지만, 게임의 룰이 어느 한쪽에 유리하고 또 어느 한쪽에는 불리해진다는 사실에 선거를 준비하는 현역 의원과 후보자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갈린다. 당장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전망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분명해진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 11월5~7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물어보았다. 더불어민주당 41%, 자유한국당 25%, 바른미래당 7%, 정의당 9%, 민주평화당 0.4%, 우리공화당 1%로 나타났다. 조사기관에 따라 정당 지지율 결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내년 선거까지는 수개월이 남아 있으므로 그사이에 얼마든지 판세 변화를 보일 여지는 있다. 그래서 이 조사 결과에서 개별 정당이 아닌 범진보진영과 범보수진영으로 나누어 보았다. 범진보진영은 민주당·정의당·민주평화당을 한데 묶었다. 범보수진영은 한국당·바른미래당·우리공화당의 통합 세력으로 보았다.

내년 총선 투표 의향에서 범진보는 50.4%, 범보수는 33%로 나타났다(그림①). 패스트트랙의 통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산술적으로 범진보는 내년 선거에 유리해진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본다면 범진보가 주도하는 국회가 만들어지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왜 정당들이 한쪽에서는 통과를, 한쪽에서는 저지를 외치는지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패스트트랙이 총선이나 대선을 결딴내는 까닭은 공수처 설치 법안이 총선이 아니라 대선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가 내년 총선에 치명적인 변수라면, 공수처는 그다음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걸핏하면 보수진영을 자극했던 표현이 ‘20년 집권론’이다. ‘20년 집권론’이 현실화되기 위해 반대 세력에 대한 견제는 불가피하다. 가장 확실한 무기는 서슬 퍼런 검찰 권력을 통제하고 현 정부의 반대 세력이 합법을 가장한 불법이나 탈법으로 공격해 올 가능성을 막는 일이다.

공수처는 주로 현 정부 고위 공직자의 비위 혐의를 조사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성역이 따로 있지는 않다.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빼들었다. 의혹에 그친다면 무방한 일이겠지만 혐의가 실체로 드러나는 순간 현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탄생한 정권 성격이라 문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부정과 부패는 대통령에게도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이런 돌발적인 변수까지 감안한다면 공수처 설치는 차기 대선 가도에 필수 불가결한 안전장치다. 게다가 국민들의 호응까지 받고 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10월29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응답자 3명 중 2명 가까이는 설치 찬성으로 나타났다(61.5%). ‘반대한다’는 의견은 3명 중 1명 정도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보수 정당을 주로 지지해 왔던 응답자들조차 ‘공수처 설치’ 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찬성 의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대에서 공수처 설치 찬성 의견은 10명 중 7명이나 됐다(그림②). 공수처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 현 정권이 그동안 감성적으로 접근했던 ‘적폐청산’이 제도적으로 안착하게 되는 기회까지 만들어진다. 총선이 아니라 대선 가도에 ‘검찰 변수’라는 불확실성만큼은 최소화하게 되는 셈이다.

이낙연-황교안 대선후보 지지율에도 영향

패스트트랙이 총선과 대선을 결딴내는 세 번째 이유는 대선후보 지지율 때문이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권 후보는 이낙연 국무총리, 야권에서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다. 두 사람은 총리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분명히 다른 짐을 짊어지고 있다. 이 총리는 연륜에서 우러나는 무난한 업무 처리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별로 부정적인 변수는 없다. 대통령 중심제인 국가에서 국정의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지게 된다. 그러므로 국정과 의정활동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더더욱 패스트트랙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황 대표는 사뭇 다르다.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우고 삭발과 단식까지 이어간 대외적 명분은 선거제와 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반대 목적이다. 짊어진 과제가 무거운데 범보수진영 차기 대선후보들의 잠재력은 아직 여당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리얼미터가 정기적으로 계속 실시해 오고 있는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범보수 후보자들의 경쟁력은 반대 진영보다 10%포인트가량 낮았다. 올해 5월과 8월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잠재력은 조금 더 벌어졌다(그림③).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동시에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 역시 한국당을 왕따로 만들더라도 반드시 패스트트랙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 이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패스트트랙이 총선뿐만 아니라 다음 대통령선거까지 결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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