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중 게임으로 경기 감각 유지하는 용병들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1 16:00
  • 호수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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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없는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들의 자가격리 일상 들여다봤더니

올해 초 코로나19 유행으로 프로야구 LG 트윈스,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키움 히어로즈 등 5개 구단은 외국인 선수들에게 스프링캠프 종료 후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시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특별휴가를 제공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으로 알 수 있듯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당시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증하고 있었던 미국발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조치가 3월27일부터 강화됐다.

위 5개 구단은 이 조치를 고려해 선수들을 3월27일 이전에 급하게 입국시켜 컨디션과 몸 상태, 경기 감각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자가격리를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KBO(한국야구위원회)가 27일 이전에 입국했더라도 뒤늦게 입국한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2주간 자가격리를 강하게 권고해 구단들은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10월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LG 선발투수 켈리가 4대2로 승리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tvN·MBC
2019년 10월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LG 선발투수 켈리가 4대2로 승리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tvN·MBC

손과 공을 천으로 감싼 실내 투구 연습도

그 결과 해당 구단의 외국인 선수들은 4월6일부터 10일 사이에 팀 훈련에 복귀하게 됐다. 특히 LG와 키움의 경우 외국인 선수들이 이미 팀에 합류했다가 뒤늦게 권고가 내려와 격리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례없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개인숙소에서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펼쳐야 했던 외국인 선수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훈련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각 구단은 실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을 배치해 최대한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큰 힘을 기울였다. 아령·덤벨·고무줄(튜브) 같은 일반적인 운동기구들은 물론이고, 구단별로 독특한 방식과 기구들을 사용해 선수들의 개인훈련을 지원했다.

키움의 경우 투수들의 투구 밸런스 유지를 위해 공인구보다 조금 더 무거운 ‘데커볼’과 수건을 이용한 섀도피칭에 많은 공을 들였다. 투수 출신인 손혁 감독은 조금 더 무거운 공으로 섀도피칭을 전력으로 하면 바이오메카닉 연구 결과 80% 정도 몸을 쓰는 효과가 있다고 밝히며, 이 훈련의 의의를 설명했다. LG의 경우 작년 류현진의 개인코치로 활동했던 김용일 수석 트레이닝 코치의 영상 훈련을 적극 활용했고, 한화는 스트레칭과 근력운동 위주의 기구들과 훈련 프로그램을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독특한 개인훈련을 공개한 선수들도 있었다. LG의 케이시 켈리와 삼성의 데이비드 뷰캐넌은 천으로 손과 공을 감싸 실내에서도 투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피칭삭스’를 활용해 투구 연습을 했다. 삼성의 타일러 살라디노는 요가를 훈련 스케줄에 포함하며 유연성 유지에 힘썼다. 게임을 좋아하는 KT의 멜 로하스 주니어는 게임을 통해 경기 감각을 유지한다는 독특한 훈련법도 공개했다. 메이저리그 콘솔게임의 투구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 실제 타석에서 느끼는 구속 체감 효과를 어느 정도나마 볼 수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아무리 운동을 한다고 해도 단체훈련을 할 때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또한 아무리 기구를 잘 갖춰주려 노력해도 피트니스센터처럼 숙소를 만들기는 어렵다. 단적인 예로 구단들은 층간 소음 문제 때문에 러닝머신 대신 실내자전거를 배치했던 바 있다. 그런 만큼 선수들은 몸 상태와 감각 유지를 위해 최대한 루틴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구단들은 KBO리그 선수들의 영상자료를 제공해 리그 내 다른 선수들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외에도 외국인 선수들은 본인의 과거 영상을 통해 폼에 대한 복습 및 연구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7일 kt의 로하스가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친 뒤 첫 훈련에 참가한 모습(왼쪽 사진). 3월24일 삼성 외국인 선수 살라디노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하고 있다. ⓒtvN·MBC
4월7일 kt의 로하스가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친 뒤 첫 훈련에 참가한 모습(왼쪽 사진). 3월24일 삼성 외국인 선수 살라디노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하고 있다. ⓒtvN·MBC

자가격리 기간 동안 영상통화로 외로움 달래

그렇다면 훈련 이외의 시간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우선 운동선수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식사는 주로 구단 직원을 통해 요청한 재료를 공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직원들은 선수들이 매일 요청한 식재료를 구매해 선수들 현관문 앞에 놓아주었다. 또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삼성 라이블리는 배달 초밥을 SNS에 공개한 적이 있고, LG 켈리는 갈비를 여러 차례 시켜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한국 생활 3년 차인 LG 윌슨은 김치찌개·된장찌개 같은 한식을 주로 시켜 먹었다고 하며 삼성 살라디노는 군만두의 매력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의 시간에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통해 영상 콘텐츠들을 소비하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선수가 많다. 특히 삼성 라이블리는 마블 시리즈 영화를 완전히 정주행하는 것에 성공한 것은 물론 게임과 기타 연주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밝히며 ‘취미 부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또한 선수들은 자가격리 기간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을 영상통화를 통해 달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혼녀를 미국에 두고 한국으로 온 삼성 살라디노는 매일 아침 7시에 약혼녀와 영상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밝혔다. 그라운드 위의 예비 스타들도 식사부터 취미까지 일반적인 젊은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구단들은 물심양면으로 선수들을 도우며 자가격리 지침을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큰 노력을 기울였다. 5개 구단 15명의 외국인 선수는 그 덕에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단 한 발자국도 외부로 나오지 않고 몸 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스프링캠프 종료 후 팀과 함께 입국한 다른 5개 구단의 외국인 선수들도 훈련에 참여하는 것 이외엔 외출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이행하며 조심스럽게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KBO는 4월7일 진행된 긴급 실행위원회를 통해 4월21일부터 타 구단과의 연습경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무관중으로 개막하는 한이 있더라도 5월 중 최대한 빠르게 개막해 144경기를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KBO의 시계는 전 세계 야구 시계 중에서 가장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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