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과연 맞는 길인가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8 10: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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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 ‘부흥’ ‘개혁’이라는 뉴딜 3대 열쇳말 빠져

지난 5월7일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는 ‘한국판 뉴딜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와 경제·사회구조 변화가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비(非)대면화·디지털화 대응에 중점을 두고 디지털 기반 경제혁신 가속화 및 일자리 창출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한국판 뉴딜의 핵심이다. 이에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라는 3대 축으로 구성돼 있다.

대규모 재정투자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미래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정부의 계획은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재정 확대에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예산 당국의 변화된 태도 역시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그렇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한국판 뉴딜이 정말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내용이 뉴딜(New Deal)이라는 타이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 등장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은 구제(relief), 부흥(recovery), 개혁(reform)이라는 세 부문으로 구성됐다. 대공황으로 극한의 빈곤과 어려움에 내몰린 개인과 산업에 대한 구제를 우선 시행하고, 이를 통해 사회 부흥을 이룩하며, 이 과정에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구조에 대한 개혁을 포함하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런 뉴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22일 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에 ‘한국판 뉴딜’ 기획단 설치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4월22일 5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에 ‘한국판 뉴딜’ 기획단 설치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뉴딜의 본질 놓친 ‘한국판 뉴딜’

뉴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제조업에 대한 구제와 지원이다. 한국은 누가 뭐래도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잘 버티고 있는 나라인 한국, 독일, 중국의 공통점은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이다. 자국 내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조달할 수 있다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결정적 유리함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국제무역의 셧다운 상황은 우리 제조업과 일자리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제조업은 좋은 일자리의 원천이자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의 버팀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판 뉴딜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기존 제조업에 대한 지원이다. 우리의 장점이 약화되고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보다 제조업이 일정 수준으로 가동돼 기업과 인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수요를 통해 만들어진 생산품으로 사회를 좀 더 안전하고 좋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좋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 부문이 이런 대상을 찾아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줘야 한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노후화된 무궁화호와 수도권 전철을 교체하는 방안을 먼저 고려해 볼 수 있다. 세월호 이후 논의만 무성하다가 흐지부지된 연안 여객선 교체 사업도 중소 조선소 지원을 위한 대책으로 활용될 수 있다. 전기·수소차로 대표되는 친환경 자동차 보급 역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재정 투입을 통한 제조업 수요 창출은 고용 유지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보다 쾌적하고 안전한 이동수단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역량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제조업이 유지돼 고용과 생산을 유지하도록 한 다음에는 SOC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SOC 투자에 부정적 시각이 많지만 건축과 토목에 대한 투자는 건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터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철도와 같은 교통망 투자는 출퇴근 시간 단축을 통해 주택공급 확대와 유사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주택가격 안정은 주택을 더 공급하는 것보다 교통시설 확충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SOC 투자는 일차적으로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빠르게 완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그렇게 완공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사회는 새로운 자극을 받고 활력을 찾게 된다. 멋진 신세계를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우리 삶을 지탱하는 제조업과 SOC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기존 시스템의 유지를 도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진정한 뉴딜의 핵심은 ‘개혁’에 있다. 개혁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한 지원을 위한 제도의 변화다. 돈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철도 차량을 발주하려고 해도, 선박을 새로 만들려고 해도 예산 투입의 효율성을 따지는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를 거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명분으로 등장한 예타는 신속한 사업의 집행을 불가능하게 한다. OECD 국가 가운데 모든 국가사업에 예타와 같은 평가 절차를 진행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한국판 뉴딜’과 함께 ‘그린뉴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과 청와대는 ‘한국판 뉴딜’과 함께 ‘그린뉴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시국엔 비상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비상시국에는 비상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개별사업을 대상으로 예타를 면제하는 것이 아니라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예타 제도를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각종 심의, 평가 절차 등도 한시적으로 중단하거나 통폐합해 빠르게 재정 투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산 편성 방식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모든 것을 예산 당국이 틀어쥔 형태에서 벗어나 실제로 사업을 수행하는 부처에 총액으로 비용을 책정하고 부처의 책임하에 사업을 편성·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타협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대상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포함돼야 한다. 중소기업은 우리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제도와 예산을 통해 지원해 왔다. 중소기업은 언제나 보호받고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는 사이에 사회적 책임에서는 멀어졌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투명한 경영과 회계를 통해 기업의 수익이 회사에 유보되고 노동자에게 합리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중소기업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외면하는 중소기업은 결국 살아남을 수 없고, 제조업 기반은 무너지게 된다. 사회는 그동안 이뤄진 지원에 부합하는 기업의 역할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와 기업이 새로운 질서에 대해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뉴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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