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르포] 수해복구 직접 해보니…“농사 망했다” “고마워서 어쩌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8 08: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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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수해 지역 자원봉사…습기·열기·모기와 싸우는 봉사자들

차에서 내리자마자 오감(五感)이 곤두섰다. 30도의 덥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젓갈과 된장을 한데 섞은 듯한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는 마을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짙어졌다. 길가에는 온갖 생활쓰레기가 쌓인 광경이 보였다. 또 굴삭기가 쓰레기를 헤집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쓰레기의 높이가 곧 닥치게 될 노동의 강도를 암시하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에 11일 오후 수해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에 11일 오후 수해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마을. 지난 8월8일 4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전체가 물에 잠긴 곳이다. 곡성군 전체 피해 규모를 따지면 8월11일 기준으로 이재민은 1230명, 재산 피해액은 600억원이다. 이 중에서도 신리마을은 지대가 낮아 곡성군 전체에서 수해가 가장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75가구에 사는 주민 200여 명이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됐다. 곡성군 공무원들은 14일까지 휴가를 취소하고 수해 복구 지원에 나섰다. 전남도청과 군부대도 일부 인력을 투입했다. 기자도 11일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복구작업에 힘을 보탰다.

마을의 이윤희 이장(57)은 기자의 옷차림을 보고 혀를 찼다. “금방 더러워질 텐데 그렇게 입고 되겠냐”는 것이었다. ‘전혀 상관없다’고 하자 축축한 목장갑을 건넸다. 새 장갑은 다 떨어졌다고 한다. 이 이장은 자신의 머리보다 한 뼘 정도 위에 손을 갖다 대며 말했다. “여기까지 물이 찼어요. 내 키가 182cm인데.”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마을에서 8월11일 공성윤 기자가 군인들과 함께 수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마을에서 8월11일 공성윤 기자가 군인들과 함께 수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마을에서 8월11일 공성윤 기자가 군인들과 함께 수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리마을에서 8월11일 공성윤 기자가 군인들과 함께 수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몽땅 잠긴 신리마을…색이 변해 버린 주택

허풍이 아니었다. 둘러본 마을 주택의 모든 벽은 지면으로부터 일정 높이를 기준으로 색깔이 확연히 나뉘었다. 빗물이 삼킨 벽면에 진흙 등 홍수의 잔여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져보니 여전히 습기가 느껴졌다. 이 이장은 “마을 주택이 대부분 1층짜리라 수해를 피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이날 마을에는 육군 31사단 병력 약 100명이 전날에 이어 파견 나와 있었다. 기자는 이 가운데 1개 소대 6명과 함께 집을 하나씩 방문하며 복구작업을 도왔다. 첫 번째로 들른 집에서는 썩은 내가 흘러나왔다. 창고 안 냉장고의 음식물이 물과 섞여 부패한 듯했다. 마당에는 정체 모를 시커먼 액체가 흥건했다. 

가전기기와 생필품, 가구 등을 밖으로 옮겼다. 물에 젖지 않은 물건이 없었으니 사실상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처리 대상이었다. 집주인 문인호씨(52)는 연신 “남은 게 없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서울에서 청과물 유통일을 하는 그는 폭우 소식을 듣고 급하게 내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집은 이미 물에 잠긴 뒤였다.  

다른 집으로 이동했다. 뒤뜰에 널브러진 축축한 모포를 집어올리자 숨어 있던 벌레들이 기어 나왔다. 마당 한쪽에는 감자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치워도 되느냐”고 묻자 집주인인 90대 할머니는 계속 망설였다. “버리는 게 아까워서 쉽게 말을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할머니는 물건을 옮길 때마다 손사래를 쳤다. 복구를 돕던 일부 현장 관계자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바깥에서 누군가가 “뱀이다!”라고 외쳤다.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긴 몸통의 생명체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자세히 보니 뱀이 아니라 장어였다. 곡성군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내수면 양식장 5곳이 물에 잠겨 이곳에 있던 장어 413만 마리 중 대다수가 유실됐다. 8월11일 유실된 경남 합천군의 소가 밀양시에서 발견된 것처럼, 이 장어도 그렇게 떠내려온 것으로 보였다. 군 관계자는 “마을 곳곳에 널린 장어들을 주워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양식 어업뿐만 아니라 농사도 모두 갈아엎을 판국이다. 곡성군의 대표적 농산물은 멜론과 딸기, 감자, 고추 등이다. 곡성군은 지난 4월부터 전국 백화점에서 농산물을 팔아 3개월 만에 2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 하반기는 절망적이다. 인근의 한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보니 수확해 둔 고추가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안으로 발을 디디자 개펄처럼 푹푹 파였다. 주민 이세기 할머니(84)는 “열아홉 살 때부터 여기서 농사짓고 살았는데 올해는 망했다”며 “남편은 몸져누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 비 피해가 심했던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주민 진경기씨(71)의 30평짜리 집이 폭우로 엉망이 돼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살면서 이렇게 수해 심했던 적 없어”

수해 복구가 필요한 다른 집에 들렀다. “와, 맛집이다!” 집 뒤편의 창고에서 박윤규 소대장(중위)이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알고 보니 일거리가 상당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창고 안에는 쇳덩이와 통나무, 골판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곳은 원래 방앗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마가 휩쓸고 간 뒤로는 그 용도를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소대원이 모두 달라붙어 1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창고 안 물건을 꺼냈다. 그러나 결국 다 비우지 못했다. 의외의 복병은 종이류와 목재류였다. 보이는 것과 달리 막상 들어보니 꽤 묵직했다. 물을 머금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짧은 통나무도 들어올리려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했다. 이 때문에 작업 시간이 계속 지체됐다. 

작업을 힘들게 하는 건 또 있었다. 모기였다. 모기 유충은 물이 고인 곳에 알을 낳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수해 현장에는 모기가 기승을 부리곤 한다. 기자도 일하는 중에 팔다리가 가렵다 싶으면 어김없이 모기가 붙어 있었다. 마을 곳곳에선 방역차가 수시로 살균가스를 뿌리고 다녔다. 

오후 4시. 군부대에서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소대원의 군복이 땀과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만 작업 내내 목이 마르거나 배고프진 않았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계속 간식과 음료수를 제공해 준 덕분이다. 주민들은 “고마워서 어쩌나”란 말을 추임새처럼 반복했다. 

병력은 철수했지만 주민들은 삶터를 뜨지 못했다. 박택임 할머니(83)는 “이웃집 옥상에 모기장 쳐놓고 잔다”며 “밤에도 차마 이대로 못 놔두겠다”며 하소연했다. 이연재씨(62)는 “폭우가 온 날에도 집 2층에서 물이 담을 넘어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신리마을에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다만 20km 떨어진 곡성군 성덕마을에서는 8월7일 산사태로 주민 5명이 숨졌다.

31사단 95연대 신승환 공보과장(대위)은 “모든 병력이 훈련을 중단하고 현장 복구에 투입됐다”면서 “마을이 수습될 때까지 매일 나올 것”이라고 했다. 차를 타고 마을을 나섰다. 또 장대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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