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국감이 왜 이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6 09: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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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씩 정치에 맡겨지는 일이 있다. 나라 살림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피는 국정감사가 그것이다. 일정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만큼 이 중대사를 수행하는 데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올해는 예년에 비해 기간도 짧다. 그런 만큼 말 하나하나에 열의와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정성을 다 쏟아 ‘송곳 감사’에 몰두해도 국민이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후덕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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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귀중한 시기에 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목청을 높이며 상대를 공격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감을 마치고 맞붙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문제들을 놓고 거칠게 싸운다. 일정의 중반을 이제 막 지났는데 지금까지도 국감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여태껏 싸움의 소재가 되었던 것들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을 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관련 의혹과 월북 공무원 피격 사건 등으로 열을 올리다가 옵티머스‧라임 사태를 두고 말씨름을 이어가는 흐름이다. 물론 그 사안도 허투루 넘겨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진실을 가려 고칠 부분은 고치고 처벌이 필요한 경우에는 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금쪽같을 수밖에 없는 ‘국회의 시간’이다. 정부 부처 등 국가기관을 비롯한 피감기관들이 나랏돈을 펑펑 써버리지는 않았는지, 숨겨둔 비리는 없는지를 세밀히 살피기에도 일정이 빠듯한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의혹이나 사건은 국감이 끝난 뒤에 이어서 따져도 늦지 않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있던 문제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는다.

국감은 국회의원들에게도 자신의 역량을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행정 부실이나 국고 낭비 등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내 밝히면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감 스타’로 떠오를 수도 있다. 펭수나 백종원씨 같은 인물을 증인으로 채택해 눈길을 끌어보려는 심사와는 차원이 다른 화제성을 얻게 된다.

2년 전 국정감사 때 박용진 의원이 그랬다. 그는 2013~17년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립 유치원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해당 유치원의 명단까지 공개했다. 당연하게 큰 파장이 일었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도 이어졌다. 박 의원은 나중에 비리 유치원 고발에 나선 배경에 대해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냥 넘길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물론 이번 국감에서 박 의원과 같은 활약을 보인 의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인 한 삼성전자 임원이 국회 출입기자증으로 의원회관을 자유롭게 드나든 사실을 들춰낸 류호정 의원도 그중 한 명으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감이 갈 길은 멀다. 각 상임위원회마다 맥을 제대로 짚지 못한 질문과 답변이 넘쳐난다. 일례를 들어 국감장에 나온 교육부 장관에게 “6‧25는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지난 한 해 동안 일을 잘했는지, 국가 예산을 낭비한 일은 없었는지를 집중해서 따지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그런데도 이번 국감의 질문들은 곳곳에서 뒤죽박죽이다. ‘정쟁 국감’이 아니라 ‘정책 국감’을 보고 싶은 국민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국감장에 울려 퍼진 나훈아의 《테스형》 속 가사 ‘세상이 왜 이래?’에 앞서 ‘국감이 왜 이래?’를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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