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인가 ‘오만’인가…강경발언 쏟아낸 윤석열의 15시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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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국감서 여당 공세 되받아치며 시종일관 ‘강성 모드’
추미애 장관, 검찰 비위 정조준 한 합동감찰 지시하며 ‘맞불’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15시간 동안 이어진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당 의원들과 시종일관 대립각을 세우며 설전을 벌였다. 윤 총장은 여권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겨냥하며 자신과 검찰 수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여야 의원들은 윤 총장 청문회 때와 정반대 입장을 보이며 공수를 교대했다. 윤 총장의 반격을 지켜보던 추 장관은 라임 사태 수사축소 의혹과 관련한 합동 감찰을 지시하며 맞불을 놨다. 

국회에서 열린 대검찰청 국정감사는 23일 오전 1시가 넘어서 종료됐다. 전날 10시부터 시작돼 이튿날까지 이어진 국감에서 윤 총장은 예상대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수사지휘권 발동과 라임 사건에 대한 검찰의 짜맞추기 의혹, 부인·장모 관련 수사 논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 수사 공정성 등을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한 윤 총장은 향후 '검찰발(發)' 대형 소용돌이를 예고했다. 


'중상모략, 부하 아냐, 패죽인 것' 강경발언 쏟아낸 尹

윤 총장은 국감 막이 오르자마자 추 장관에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뒤 내놓은 대검 입장문에서 '중상모략'이라는 표현이 포함된 것에 대해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며 "무슨 근거로 (법무부가) 검찰총장이 부실 수사와 관련돼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관의 수사지휘가 부당하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가) 근거·목적 등에서 위법한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며 "중범죄를 저질러 중형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라고 쏘아붙였다. 윤 총장은 한발 더 나아가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장관의 부하라면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먼 얘기가 되고 검찰총장이라는 직제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도 했다. 

송기헌 민주당 의원이 "구체적 사안에 대해 장관과 검찰총장은 상하급자 관계"라고 하자 이를 "억지논리"라고 평가절하 하며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기도 했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에서 촉발한 검사 비위 의혹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윤 총장은 "(관련 수사) 결과가 나오면 사과해야 하지만, 검찰이 수사 중 사람을 패 죽인 것과는 경우가 좀 다르지 않나 싶다"고 주장했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의 사임을 거론하며 2002년 발생한 검찰의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 때 검찰총장이 물러난 것을 상기시키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호통을 치자 윤 총장은 결국 한발 물러섰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윤 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언급하자 반응은 더 격해졌다. 김 의원이 검찰 개혁을 언급하며 잇딴 측근 비리 의혹을 열거하자 윤 총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게 뭡니까", "참~ 어이가 없다", "하, 참 나"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답변시 반말이 뒤섞여 있다는 지적까지 받은 윤 총장은 김 의원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며 언성을 높였다. 윤 총장은 "법정 신문도, 검찰 조사도 그렇게는 안 한다"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김건희씨의 미술 전시회에 수사를 받는 기업이 협찬했다는 주장 등에 대해선 "아내의 일에 관여한 일이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가족 문제와 선을 긋는 윤 총장을 향해 "부인 가족을 지켜주시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의하자 "공직은 엄정하게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정당하게 일하는데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면 누가 공직을 하겠냐.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공수교대 여야…윤 총장, 사퇴 압박 거부

이번 국감에서는 윤 총장과 여당 의원들이 계속 충돌하며 양측에서 고성을 주고 받았다. 지난해 7월 윤 총장을 상대로 한 청문회 당시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였다. 윤 총장에 대해 '여당은 공격, 야당은 엄호'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박범계 의원이 윤 총장의 행태를 꼬집으며 "선택적 정의"라고 비판하자 "그것도 선택적 의심 아닙니까"라고 되받아쳤다. 윤 총장은 박 의원을 향해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종민 의원은 "법무장관을 상대로 '나는 당신 부하가 아니다, 논쟁해 보겠다'는 식으로 풀어선 안된다"며 "그럴 거면 옷 벗고 정당에 들어와서 논쟁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해 불공정했다는 여당 지적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번민했다. 검찰 조직의 장으로 오히려 불리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도 했다"며 수사 당시 심적 고통이 컸다고 토로했다.  

윤 총장에 대한 여당의 공세가 계속되자 야당은 윤 총장을 적극 옹호하며 추 장관과 정권 차원의 몰아내기를 맹비난 했다.  

윤 총장은 여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사퇴 압박과 관련해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스스로 물러서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총선 이후 민주당에서 사퇴하라는 얘기 나왔을 때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며 소임을 다하라'고 전해주셨다"고 말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합동감찰로 응수한 추미애

윤 총장이 국감장에서 격론을 벌이던 시각, 추 장관은 장외에서 이를 지켜보며 합동감찰 지시로 응수했다. 추 장관은 라임 사건과 관련해 검사들의 비위를 은폐하거나 야당 정치인에 대한 봐주기 수사가 있었는지를 법무부와 대검 감찰부가 합동으로 감찰할 것을 지시했다. 

추 장관은 합동감찰 지시를 내놓기 전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총장의 발언을 반박하며 장외에서 '정면 충돌'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수사지휘가 위법하다"는 발언을 하자 "검찰총장은 법상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공무원입니다"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검찰청법 제8조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명시돼 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때 구체적 사건을 특정했으므로 법적 요건에는 부합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정치적 목적과 객관성이 결여된 점을 지적하며 "근거와 목적 등에서 위법한 것"이라고 재차 맞섰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폭로로 전담수사팀이 꾸려진 데 이어 추 장관 지시로 합동 감찰반까지 구성되면서 검찰 조직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검장 사의를 시작으로 잇딴 항명성 발언과 법무부의 조치에 반대하는 의견이 검찰 내부에서 터져나올 가능성도 크다. 검찰 일각에서는 갈등과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논란의 중심에 선 윤 총장이 그만 물러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추 장관이 법무부와 공동조사를 지시한 대검 감찰부는 조국 전 장관이 임명한 한동수 감찰부장이 이끌고 있다. 지난 9월엔 검찰 조직 내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 왔던 임은정 부장검사가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연구관으로 합류한 상태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감찰 지시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이것은 조금 일방적이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 국면이 장기화 하는 상황에서 검찰 내 반발 움직임이 커질 경우 초유의 충돌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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