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유죄’ 뒤바뀐 김학의 판결, 법정구속 이끈 결정타는?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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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로부터 제공받은 차명 휴대전화 요금 174만원 ‘대가성’ 인정
성접대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 불가
억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8일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억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8일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접대 의혹과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법정구속됐다. 스폰서 사업가로부터 제공받은 '휴대전화 요금 174만원'에 대한 대가성이 인정되면서 1·2심 재판 결과가 정반대로 뒤집혔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는 28일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에 벌금 500만원, 추징금 43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던 김 전 차관은 판결 직후 구치소에 재수감됐다. 

 

'174만원 휴대전화 요금'이 되살린 공소시효

2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데는 스폰서가 김 전 차관에 제공한 차명 휴대전화 요금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차관에 적용된 여러 혐의 중 사업가 최아무개씨로부터 2009년 6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차명 휴대전화 사용대금 174만원 가량을 제공받은 점에 주목했다. 

1심은 휴대폰 요금과 관련한 김 전 차관의 일부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최씨가 김 전 차관에게 직무 관련 청탁을 한 사실이 없다고 봤다. 또 김 전 차관이 최씨 관련 사건에 관여하거나 수사 검사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직무상 편의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심은 이 휴대폰 사용대금에 대가성이 있다고 결론냈다. 2심은 "최씨가 1998년 자신이 관여한 시행사업과 관련해 담당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검찰 특수부 조사를 거쳐 형사처벌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특수부 검사 출신인 김 전 차관으로부터 수사과정을 알게 되는 등 도움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씨 형사사건은 1999년 확정됐고, 판결 확정 이후인 2000년부터 2011년 사이 최씨는 부장검사와 법무부 검찰과장, 대검 공안기획과장으로 근무한 김 전 차관에게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고 자신의 시행사업과 관련해 다시 특수부 조사를 받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김 전 차관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사를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차명휴대전화 사용대금을 뇌물로 인정하면서 1심에서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이 불가능했던 다른 뇌물수수 혐의도 되살아났다. 앞서 1심은 2000년 10월~2009년 5월까지 김 전 차관이 받은 법인카드와 설날 상품권 등 4300여 만원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 기소돼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뇌물액 1억원 미만은 공소시효가 10년이다. 하지만 공소시효 만료 전 뇌물수수 행위가 유죄로 인정되면서 이미 시효가 끝난 법인카드와 상품권 등 뇌물 혐의도 하나의 범죄 행위로 묶여 공소시효 만료를 적용받지 않게 됐다. 

김 전 차관 측이 상고 의사를 밝히면서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대법원에서도 김 전 차관이 최씨에게 제공받은 차명휴대전화 요금의 대가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 전 차관 측 변호인은 항소심 선고공판 결과에 대해 "항소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사업가 최씨의 증언에 대해 다르게 봤다"며 "다른 변호인들과 합의해 상고를 한 후 대법원에서 다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관련한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등 혐의는 모두 무죄 또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면소 판결했다. 저축은행 회장 김아무개씨로부터 56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고, 9500만원을 받은 혐의 역시 공소시효 10년이 넘어 면소판결한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모습 ⓒ 연합뉴스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모습 ⓒ 연합뉴스

7년 만에 '유죄' 나왔지만…단죄 못한 성접대 혐의

김 전 차관을 둘러싼 뇌물수수 및 성접대 의혹은 2012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윤중천씨 지인이 윤씨를 강간 등 혐의로 고소하는 과정에서 경찰 수사로 '별장 성접대 동영상'의 존재가 알려졌고, 해당 영상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김 전 차관은 결국 임명 엿새 만에 차관 자리에서 물러났고 수사가 진행됐지만,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김 전 차관에 대한 체포영장은 검찰에서 번번히 반려됐다. 김 전 차관이 건강 문제를 이유로 수차례 소환 요구에 불응하자 경찰은 그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방문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수사 끝에 같은 해 7월 기소 의견으로 김 전 차관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4개월 뒤 검찰은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자신이 영상 속 여성이라고 주장해 온 A씨가 검찰 처분에 반발해 2014년 7월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검찰은 2015년 1월 김 전 차관을 재차 무혐의 처분했고, 이에 A씨가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지만 이 역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각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족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을 재조사 대상에 포함해 지난해 4월 검찰에 정식 조사를 권고했다.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지 6년여 만인 지난해 6월 김 전 차관을 윤씨와 함께 구속기소 했다. 복합적인 증거 분석과 과학수사를 통해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다는 점도 입증됐다. 

그러나 윤씨로부터 강원 원주 별장 등지에서 13차례 성접대를 받은 혐의 등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결국 면소 판결되는 등 법적 처벌에 많은 한계를 남겼다. 김 전 차관의 혐의 시점이 대부분 2000년대 중반 이후인 점을 고려하면, 검찰이 2013년이나 2015년 수사 당시 무혐의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면 법원 판결에서 다른 결론이 나왔을 수 있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 및 각종 뇌물 혐의와 관련한 법원의 첫 유죄 판단이 7년 여 만에 나왔지만 수사와 기소로 이어진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 조직의 문제점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김 전 차관에 실형을 선고한 2심 재판부도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검찰의 이같은 '제 식구 감싸기'와 '스폰서' 문제를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 재판은 10년 전의 뇌물수수에 대한 단죄에 그치지 않는다"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가 2020년인 지금 우리나라 검찰에서 더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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