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시대 개막한 한미약품그룹 ‘지분 승계 딜레마’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7 10: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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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家 3남매, 사장 승진하며 2세 경영 본격화
고(故) 임성기 회장 지분 34.27%가 관건

한미약품그룹의 2세 경영이 본격화됐다. 최근 연말 인사에서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의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부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부사장 남매가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임 회장의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을 비롯한 한미가(家) 삼남매 모두가 한미약품 사장 타이틀을 가지게 됐다. 2세 경영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당초 업계에선 후계구도가 장남으로 기울었다는 전망이 많았다. 2009년 가장 먼저 한미약품 사장으로 승진했고, 2016년부터는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임 회장 별세 이후 모친인 송영숙 가현문화재단 이사장이 회장직을 넘겨받은 데 이어, 최근 두 동생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평가는 달라졌다. 업계에서는 향후 상당 기간 형제간 공동경영이 이뤄질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미약품그룹은 사업영역이 제약업에 집중돼 있는 만큼 다른 재벌가의 사례처럼 계열 분리를 하기 어려워서다.

삼남매가 모두 경영 최일선에 나섰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당장 그룹 경영권을 위한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약품그룹은 현재 ‘임성기 회장→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아직까지 삼남매의 한미사이언스 보유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 임종윤 사장(3.65%)과 임주현 사장(3.55%), 임종훈 사장(3.14%) 삼남매의 지분율을 모두 더해도 10.34%에 불과하다.

당장 한미가 2세들은 임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7%를 넘겨받아야 한다. 아직까진 배우자나 자녀 중 누구에게 얼마만큼 지분이 넘어갈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업계에선 송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자녀에게 지분이 상속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송 회장이 상속세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는 점과 송 회장을 거쳐 자녀들에게 지분이 넘어갈 경우 세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 등을 들어서다. 특히 한미가 2세들이 임 회장 별세 직후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상속세다. 업계에서는 임 회장 보유 지분 상속에 따른 상속세를 6300억원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납부하는 연부연납제도를 활용하더라도 삼남매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한 해 1200억원을 웃돈다. 그러나 한미가 삼남매는 당장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임종윤 사장(67%)과 임주현 사장(56%), 임종훈 사장(45%) 등의 주식담보대출 비율이 이미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금 마련을 위해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각하기도 어렵다.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포토·뉴스뱅크이미지

한미헬스케어, 승계 재원 창구로 지목돼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승계 자금 창구로 한미헬스케어를 지목하고 있다. 한미헬스케어는 한미메디케어에 한미IT가 흡수합병돼 탄생한 회사다. 두 회사는 합병 전부터 2세 승계를 위한 핵심사로 거론돼 왔다. 먼저 시스템통합(SI) 업체인 한미IT는 사실상 한미가 2세의 개인회사였다. 임종윤 사장(34%)과 임종훈 사장(36%), 임주현 사장(21%) 삼남매가 지분 91%를 보유했고, 나머지 9%는 자사주였다.

한미IT는 그룹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성장했다. 매년 내부거래 비중이 80% 안팎을 기록했다. 사실상 자생력이 전무한 셈이다. 특히 2013년의 내부거래율은 92.16%(총매출 145억원-내부거래액 133억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한미IT의 내부거래 비율은 일부 감소세를 보였다. 이 회사의 2014년과 2015년 내부거래율은 각각 73.14%와 82.26%였고, 한미메디케어에 합병되기 직전 해인 2016년에도 74.63% 수준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내부거래액은 154억원에서 247억원, 287억원으로 계속 늘어났다.

한미메디케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한미메디케어의 최대주주는 한미IT(82.55%)였고, 나머지 지분은 임종윤 사장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했다. 한미가 2세들이 한미IT를 통해 간접 지배하고 있는 형태였다. 한미메디케어 역시 매출의 상당 부분을 그룹 계열사들이 책임져줬다. 실제 이 회사의 2015년과 2016년 내부거래 비율과 규모는 각각 62.60%(매출 458억원-내부거래 287억원)와 49.70%(415억원-206억원)에 달했다. 두 회사는 내부거래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경영권 지분 확보에 지속적으로 투입했다. 이를 통해 한미IT와 한미메디케어는 2017년 말 현재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각각 0.48%와 5.95% 보유했다.

이들 회사가 2017년 합병돼 지금의 한미헬스케어가 됐다. 이런 계열사 구조조정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2016년 국정감사와 연관해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당시 국감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한미약품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나서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부당지원행위에 대해 엄중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언급된 회사가 바로 한미IT와 한미메디케어였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2017년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한미메디케어는 그해 6월 한미IT의 100% 자회사인 온타임솔루션을, 같은 해 12월에는 한미IT를 흡수합병했다. 그리고 2018년 4월에는 합병된 한미메디케어의 간판도 한미헬스케어로 고쳐 달았다. 임 회장에 이은 한미사이언스 2대 주주(6.42%)인 한미헬스케어는 현재 임종훈 사장(37.78%)과 임종윤 사장(35.86%), 임주현 사장(24.18%) 삼남매가 지분 97.67%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구조조정은 내부거래율을 낮추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실제 한미IT의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동안의 평균 내부거래 비중은 80.56%에 달했다. 여기에 같은 기간 평균 내부거래 비중(43.19%)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미메디케어와, 일감 몰아주기 이슈와 무관한 온타임솔루션을 흡수합병하면 전체적인 내부거래율이 희석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실제 합병 이후인 2018년과 2019년 한미헬스케어의 내부거래율은 25.67%와 21.63%로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내부거래 규모를 놓고 보면 같은 기간 각각 193억원과 194억원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향후 안정적으로 지분 승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한미사이언스도 승계 자금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사이언스는 매년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다시피하고 있다. 2011년 76.27%이던 내부거래 비중은 매년 증가해 2019년 98.43%를 기록했다. 내부거래 규모도 같은 기간 115억원에서 343억원으로 3배 가까이 커졌다.

재원 창구가 ‘양날의 검’ 될 수도

한미사이언스는 이렇게 올린 매출을 바탕으로 매년 거액의 현금 배당을 실시해 왔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현금 배당금 총액은 약 648억원에 달한다. 제약업계를 통틀어 최대 규모다. 이처럼 후한 배당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임 회장과 자녀들이다. 이들 오너 일가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이 66.4%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미가 2세들은 현재 보유 중이거나 향후 상속받게 될 한미사이언스 지분에서 나오는 배당 수익을 상속세 및 지분 확보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처럼 한미헬스케어와 한미사이언스는 향후 한미가 삼남매의 든든한 곳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규모를 키웠고, 배당 등을 통해 그 이익이 고스란히 오너 일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 2세들이 대주주인 비상장사를 설립한 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규모를 키워 승계에 활용하는 방식 또한 전형적인 재벌가 코스를 밟고 있다.

그러나 이들 회사가 자칫 한미가 삼남매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총수 일가의 편법 대물림 내지는 사익편취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은 수년 전부터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했다. 이 때문에 많은 재벌가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특히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정경제 3법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한미약품그룹은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게 사실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만 적용되고 있어서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2019년 말 한미사이언스의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1조원에 조금 못 미친다.

공거래위원회는 이미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국세청 역시 편법적인 부의 승계를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일감 몰아주기나 편법 지분 승계를 하다 국세청에 덜미가 잡히면서 ‘세금폭탄’을 맞은 중견기업이 현재 상당수다. 두 사정기관의 공격이 본격화할 경우 한미약품그룹 지분 승계 작업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제 막 경영 최전방에 나선 한미가 2세들의 도덕성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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