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못 갚은 대출원금 2.6조…불어나는 ‘코로나 빚덩이’
  • 김희진 시사저널e. 기자 (heehee@sisajournal-e.com)
  • 승인 2021.01.06 14: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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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지원 규모 261조원
코로나 감염병發 ‘부실폭탄’ 키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금융 당국이 오는 3월 종료되는 금융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또 한 번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유예된 대출원금과 이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코로나발 대출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대출원금 및 이자상환 유예 규모를 취합한 결과 이자상환을 유예한 대출원금은 2020년 12월24일 기준 2조645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밀린 이자금액은 365억원이다.

전체 은행권으로 보면 상환이 유예된 이자금액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1월말 기준 납입이 유예된 이자금액은 950억원이며, 이자상환 유예 요청 건수는 8358건이다. 소상공인 코로나19 지원 대출의 금리가 2~3% 수준인 점을 고려해 대출 이자율을 2.5%라고 가정하면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은행들의 전체 대출원금은 약 3조8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일러스트 황중환

이자상환 유예 추가 연장에 은행권 ‘난색’

앞서 은행권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원금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이다. 당초 지난 9월 종료될 예정이었던 유예 조치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한 차례 연장됐고, 2021년 3월로 또다시 종료 시점이 미뤄졌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4월부터는 유예된 대출원금을 갚고 이자를 상환하는 등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지원기간을 2021년 3월말 이후까지 추가로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12월21일 코로나19 대응 금융정책 평가 간담회에서 “한시적 금융지원 조치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기업의 지급 능력을 고려한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실물경제의 건실한 회복을 뒷받침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하는 길”이라며 대출 만기 및 이자상환 유예 재연장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은행권은 금융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불어나는 ‘연체 리스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출 만기는 연장하되 밀린 이자만이라도 상환하도록 해 부실 징후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원금상환 유예는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와 연관된 만큼 은행에서도 재연장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이자상환 유예 연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영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영업활동을 하면서 이자는 납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유예 조치가 끝난 후에도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한 번 더 연장하면 그 기간 동안 대출부실 위험이 가중된다”면서 “이자 상환만이라도 기존대로 진행해야 대출 기업에 대한 부실 징후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계속된 금융지원 조치가 오히려 한계기업의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향후 대출원금·이자 유예 연장 등 한시적 금융지원이 종료될 경우 한계기업들을 중심으로 코로나발 ‘부실폭탄’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 당국은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타를 맞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구제를 위해 2020년 초부터 각종 금융지원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코로나19 상황에도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수는 전년 대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 부실징후기업은 157곳(대기업 4곳, 중소기업 153곳)으로 전년(210개) 대비 53곳 감소했다. 부실징후기업 157곳 가운데 66개사는 워크아웃(C등급), 나머지 91개사는 법정관리 등 퇴출 대상(D등급)으로 분류됐다. C등급 기업이 전년보다 7개 늘어났지만 D등급 기업은 60개나 줄었다.

한때 주요 은행은 경쟁적으로 대출상품을 선보였다. 사진은 부동산 규제 이전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상품 안내문 ⓒ연합뉴스

“구조조정 대상 기업 감소는 착시효과”

그러나 이 같은 통계는 금융 당국의 유동성 지원에 따른 착시효과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 역시 “금융권의 코로나19 관련 유동성 지원 효과로 연체율이 하락했고, 회생신청 기업 감소 등의 추세에 따라 D등급 기업 수와 비중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12월4일까지 금융권에서 코로나19 사태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을 위해 진행한 금융지원 규모는 261조1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1월20일 기준 250조원을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0조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의 전방위 금융지원이 한계기업의 부실 징후를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유례없는 유동성 지원으로 연체율이 낮아지면서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며 “겉보기엔 부실징후기업이 줄어들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한계기업이 늘어나면서 사실상 부실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출 만기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재연장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한계기업을 선별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경영 정상화 가능성이 큰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금융지원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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