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안철수와 윤석열…‘중도층 딜레마’에 갇히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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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이낙연, 지지율 고전에 당내 반발까지
후보, 이슈 선점 놓친 국민의힘도 난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해 벽두를 깨고 나온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에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야당이 아닌 여당 대표의 입에서 사면 언급이 나오면서 파장은 더 컸다. '통합' 명분 아래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결정에는 '중도층' 확장에 대한 복잡한 속내도 함께 읽힌다. 연말연초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3위' 고착화의 갈림길에 선 데다, 미니 대선인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승기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층 확장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안 대표의 질주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여당 뿐만이 아니다. 국민의힘도 당내 인사 중 윤 총장과 안 대표를 압도할 만한 인물이 없어 야권 연대와 단일화에 이르기까지 험로가 예고된 상황이다. 여기에 여당에서 불 지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론까지 더해지며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게 됐다. 

 

시험대 오른 이낙연, 지지율 고전에 당내 반발까지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사면론을 꺼내든 시점은 대선 후보 지지율이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총장에 뒤처졌다는 성적표가 나온 직후다. 이 대표는 지난해 연말과 올해 연초 실시된 복수의 조사에서 이 지사와 윤 총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사와 윤 총장이 1·2위를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이 대표는 변동없이 3위에 머물렀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부동의 1위였던 이 대표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민심은 그를 순식간에 후순위로 밀어내버렸다.

이 때문에 이 대표의 사면 발언은 '국민 통합' 메시지를 필두로 중도와 보수층을 아우르며 대선 레이스를 본격화 하려는 신호로 해석됐다. 아직 특정후보를 정하지 못한 '부동층'과 움직일 여력이 큰 '중도층' 비중이 높은 만큼,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쳐 전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어떤 방향에서 해석하든 '중도'에 대한 이 대표 자신과 여권의 고민이 담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대표가 던진 사면론이 지지율 상승과 국민 통합에 과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지는 미지수다. 당장 당내 반발과 핵심 지지층 이탈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 대표의 발언에 반대하는 당원과 친문(親文) 지지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사과와 반성없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며 이 대표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 발언을 지지하는 당내 목소리도 있지만, 이번 후폭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대표가 당내 분위기에 반전을 이끌어 낸다면 리더십과 정치력이 재평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 거듭되면 단일대오를 만들어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자충수를 두게 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사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직후 당 안팎에서 거센 반발이 터져나오자, 주말인 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열고 "당사자의 사과와 반성이 중요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 대표가 4일 재차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께 사면을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논쟁은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분수령은 오는 14일이다. 대법원은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상고심을 열고 형을 확정한다. 이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나온 이후 사면론을 더욱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께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미 형이 확정된 상태다. 사면에 대한 구체적인 발언을 삼가고 있는 문 대통령 역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이 확정되면 여론 추이와 당내 상황을 고려한 별도의 언급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2021년 새해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2021년 새해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피 말리는 시간싸움 벌일 김종인虎 

'정권심판'을 강조하며 연일 정부·여당을 때리고 있는 야당도 딜레마에 봉착했다. 코 앞으로 다가온 재보궐 선거는 물론 대선 레이스에서도 경선 출마를 확정한 당내 후보 중 뚜렷한 두각을 보이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범야권인 안 대표와 윤 총장의 지지율 수직상승에 이들과 거리를 좁힐 수도, 또 넓힐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수 쇄신을 기치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이마저 여당 이슈로 빼앗길 처지다. 

야당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에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선거 후보 선정에서 안 대표와 기싸움을 해야 할 국민의힘은 사면론이 확산해 야당 내 갈등과 분열이 커질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친이계와 친박계는 사면론이 나온 후 즉각 환영의 뜻을 냈다가, 여당이 '사과와 반성' 조건을 내걸고 나오자 민주당을 맹폭하는 등 시시각각 기류가 변화하고 있다.

당내 분위기가 수습되지 못하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두 전직 대통령의 탄핵·구속 관련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물꼬를 튼 중도층 외연 확장이 한층 어렵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는 범야권 단일화를 추진하며 경선 방식과 비중을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전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중도층 표심을 잡지 못하면 안 대표로의 쏠림 현상을 막아내기 어렵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지도부는 재보선 정국에서의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을 고려해 당분간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사면론 후폭풍에 주춤하는 사이 안 대표는 '정치적 이용을 경계한다'는 입장을 내고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했다. 안 대표는 4일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본인의 생각을 국민 앞에 밝히는 게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면은 선거 목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정권교체의 초석을 놓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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