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망을 방치한 ‘제3의 공범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8 10: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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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아닐거야’ 그들의 방심이 죽어가는 정인이를 방치했다
사건 3개월째…서울시 기관, 홀트복지회 책임 떠넘기기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를 두고 온 사회가 공분에 휩싸였다. 그 중엔 경찰 등 외부 기관도 공범이라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인이 사망 3개월이 다 돼 가는 지금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기준만 탓하는 형국이다.

정인이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올 기회는 세 번 있었다. 지난해 5월25일과 6월29일, 9월23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서울 양천경찰서가 아동학대 신고를 접수했던 것. 하지만 모두 내사 종결하거나 무혐의 처분했다. 결국 정인이는 지난해 10월13일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경찰은 뒤늦게 정인이의 양모 장아무개씨(3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왼쪽)양천경찰서, 홀트아동복지회 ⓒ시사저널 이종현

① 이화섭 양천서장...징계 대신 '대기발령' 조치돼

서울경찰청은 감찰에 돌입했다. 이후 양천서 여성청소년과장 등 경찰관 12명에 대한 징계 조치를 밝혔다. 이 중 1차 신고 담당자들은 ‘주의’ 처분을, 2차 신고 담당자들은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분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주의와 경고는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의 종류에 해당되지 않는다. 경찰청 예규에 따르면, 주의를 2번 받았을 때 경고 처분을 받게 된다. 경고에 처해지면 1년간 유효한 벌점을 받는 데 그친다.

마지막 3차 신고를 담당했던 팀장과 학대예방경찰관 등 5명의 경찰관은 징계위원회에 넘겨졌다. 서울청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1월 중순 이후에 징계위원이 구성돼 이달 말쯤 징계위가 열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일단 3차 신고를 담당한 양천서 여성청소년계장은 경고를 받고 보직 이동 조치됐다”며 “나머지 (3차 신고 담당자) 4명은 현직에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총책임자인 이화섭 양천서장(총경)은 과거 경찰청 경찰개혁추진TF팀장 등 경찰 개혁의 선봉장이었다. 그는 원래 이번 징계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1월4일 청와대 게시판에는 ‘양천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란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는 하루 만에 답변 기준인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다음 날인 1월6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대기발령은 징계 외의 일시적 인사 조치다.

경찰은 전문성 부족과 법망의 한계를 호소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아동보호전문기관 전문가와 같이 출동해 아동의 상태를 점검한다”며 “전문가가 학대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동을 부모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분리 조치를 하려 해도 결정 기준이 없다”고 해명했다. 외상이 심하거나 신고가 수차례 접수돼도 분리 조치를 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사건 보고자료에 따르면, 정인이는 1차 신고 때 이미 허벅지 양쪽에 멍이 든 상태였다.

이철재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뉴욕에선 아이의 몸에 멍이 생기거나 행동 이상이 나타나면 (학대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보고 누구나 당국에 신고할 수 있다”고 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당국은 법원의 결정 없이도 아이를 즉시 부모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다. 또 병원을 포함한 치료기관은 아동학대 의심 사례를 발견하면 법원 심의가 시작될 때까지 아동을 보호할 권한이 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정부는 뒤늦게 ‘외양간 고치기’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정인이 사망 한 달여 뒤인 지난 11월29일 아동학대 관련 지침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동학대가 두 번 이상 신고되면 피해 아동을 적극적으로 분리 조치하고, 멍이나 상처가 발견될 경우 우선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② ‘학대 판단’ 안 한 서울시 기관...연 10억6600만원 지원받아

학대 신고 때마다 정인이의 상태를 살펴본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기관 담당자는 세 차례 신고 때 모두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1차 신고 때는 ‘방임’으로 판단했다. 해당 기관 현장조사 팀장은 “방임도 학대의 한 종류”라고 했다. 나머지 2, 3차 신고 때는 학대로 판단하지 않았다.

특히 3차 신고 때 기관 담당자는 전문가의 학대 의견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인이에 대해 학대 소견으로 신고한 사람은 강서구의 A소아과 의사다. 신고가 접수되자 정인이 양부는 강서구의 또 다른 B소아과에 아이를 데려갔고, 학대가 아닌 구내염 소견을 들었다. B소아과는 양부모의 단골 병원으로 알려졌다.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은 “신고 당일 담당자가 A소아과와는 전화통화만 했고, B소아과에는 양부와 같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기관은 B소아과 의사의 소견을 참고해 ‘아동학대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 굳이 B소아과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 기관 팀장은 “양부모의 단골 병원이라 간 건 아니고 거리가 가까워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복지법에 의해 설립된 법정 단체다. 전국 각 지자체 산하에 설치돼 아동학대 현장조사와 피해아동 치료 등을 담당한다.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의 경우 비영리 사단법인 굿네이버스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금은 서울시와 강서구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해당 기관에 들어간 예산은 추경액을 포함해 10억6600만원이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관계자는 “통상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실수로 문제가 불거지면 서울시가 징계 요청을 하고 위탁 법인(굿네이버스)이 징계 절차를 밟게 된다”고 설명했다. 단 “지금 단계에서 징계 요청 여부를 말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1월7일 오후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갖다 놓은 물품들이 놓여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③ ’차량 방치’ 그냥 넘긴 입양기관...연 460억원 지원받아

그 밖에 정인이의 입양을 중개한 홀트아동복지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기관은 입양 후 1년 동안 아동의 신체·정서 발달과 양부모와의 유대관계 등 사후 관리를 해야 한다. 홀트복지회는 지난해 2월1일 정인이의 입양이 확정된 이후 총 세 차례 가정방문을 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방문은 지난해 5월 1차 학대 신고가 접수된 다음 날 이뤄졌다. 보건복지부 보고자료에 의하면, 당시 홀트복지회는 정인이에게 생긴 멍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양육에 좀 더 민감하게 대처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넘어갔다.

이후 홀트복지회는 지난해 6월 2차 학대 신고가 있은 지 3일 후에 방문했다. 당시 신고 내용은 양모가 정인이를 30분 이상 차량에 방치했다는 것이었다. 홀트복지회는 이 사실을 알았음에도 “발달 및 건강상태 확인”에 그쳤다. 미국 20개 주는 아동의 차량 방치를 학대로 간주한다. 일리노이주에선 10분 이상 아동을 홀로 놔둘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2500달러 벌금에 처해진다. 유타, 텍사스, 하와이주 등은 처벌 기준이 ‘5분’이다.

홀트복지회는 지난해 9월 3차 신고 뒤에도 가정방문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모의 거부로 추석 이후인 10월15일로 미뤄졌고, 결국 없던 일이 됐다. 10월13일 정인이가 숨졌기 때문이다.

홀트복지회 측은 절차를 지켰다는 입장이다. 1월6일 보도자료를 통해 “입양 실무 매뉴얼의 사후 관리는 1년 중 4회로, 가정방문 2회와 유선·이메일·사무실 내방 등의 상담으로 2회 실시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8개월 동안 3회의 가정방문과 17회의 전화상담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인이 사망 이후 보건복지부 지도점검에서 우리의 입양 절차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홀트복지회가 매뉴얼을 어겼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정인이가 학대 신고를 세 번이나 당하고 외상이 심각한데도 넘어간 점에는 분명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아동학대방지협회 등 10개 단체는 지난해 12월23일 서울 마포구 홀트복지회 사옥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입양 절차를 책임졌던 홀트복지회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1월5일부터 수차례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질의사항을 전달했다. 이후 6~7일 두 차례 서울 마포구 홀트복지회 사옥을 찾아 답변을 요청했다. 박꽃송이 홀트복지회 홍보팀장은 기자와 만나 “공개한 보도자료로 입장을 갈음하려 한다”고 일축했다. 총책임자인 홍우정 나눔사업본부장, 김호현 회장과의 대면 의사를 밝혔지만 7일 오후까지 “곤란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2019년 홀트복지회가 거둬들인 수입금은 총 893억원이다. 이 중 국가·지자체 보조금이 466억원(52%)으로 절반이 넘는다. 또 개인과 단체·기업 후원금으로 117억원(13%)을 모았다. 목적 사업보다 후원금과 보조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더 크다.

정인이 양부모는 처벌을 앞두고 있다. 양모 장씨는 지난해 12월8일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장씨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부 안아무개씨(36)는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양부모를 살인죄로 죗값을 받게 해 달라”는 청원이 23만여 명의 동의를 얻어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월13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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