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은 할인상품이 아니다
  • 이영주 노동문제연구소 解放 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7 10: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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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란 새 이름표에 가려진 노동자의 권리

플랫폼 노동이 최근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그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이나 대리운전, 가사서비스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라 국민 눈에 쉽게 보이고,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다. 이 노동 방식이 다른 업종으로도 번져나갈 것이란 예측도 매우 중요한 이유다. 플랫폼 노동의 규범 체계와 방식이 미래의 노동에 대한 법적 규율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분위기는 과열됐지만 실질적인 논의 진전이 그동안 구체적으로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론적으로는 플랫폼 노동 전반의 넓은 분야에 관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실에서 논의의 초점은 몇 개 업종에 국한되어 있다. 근로자성 인정이나 산재보험 등 해결 과제로 제시되는 문제들은 플랫폼 노동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쟁점이 아니다. 이미 20년 가까이 논란이 되어 왔다. 이름표만 바꿔 달았을 뿐 너무 익숙한 논의다 보니 최근 택배기사 과로사 논란에서 볼 수 있듯 플랫폼 노동이 마치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와 동의어처럼 혼용되어 쓰이기도 한다. 오래된 낡은 관행 위에 뜬금없이 새로운 상상이 복잡하게 덧씌워지면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2020년 6월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플랫폼드라이버유니온,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노동부의 플랫폼 노동 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20년 6월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플랫폼드라이버유니온,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노동부의 플랫폼 노동 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자인가 아닌가

가장 근본적이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는 과연 이들이 근로자인지 여부다. 만일 근로자라면 임금·근로조건, 노동3권, 사회보험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프리랜서 같은 자영업자라면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플랫폼 기업은 대부분 서비스 공급자와 고객이 서로 쉽고 편리하게 만날 수 있도록 거래를 알선하는 IT 회사일 뿐이고 그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플랫폼 노동자 역시 양면시장의 한쪽(공급 측면) 고객일 뿐 자신들이 고용한 근로자가 아니므로 플랫폼 기업은 노동법상 책임이 없다고 한다. 사업모델을 단계별로 복잡하게 쪼개 각종 사회적 책임을 회피했던 ‘타다’가 그 전형적인 예다. 지난해 5월 중앙노동위원회가 타다 드라이버는 근로자라고 판정했지만 타다 측은 불복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논의는 근로자와 독립계약자의 이분법적 분류를 기반으로 전개되고 있다. 실질이 근로자인데도 형식상 독립계약자로 취급하는 ‘오분류’에 해당하는지가 주로 다뤄진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노무를 제공하는 개인이 근로자인지 판단할 때 그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사용자에게 있는지, 혹은 그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사용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아 왔다. 법적 분쟁은 긱 경제가 부상하면서 더 치열해졌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류배송업체 기사들이 제기한 오분류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들이 최저임금 및 근로시간 법령이 적용되는 근로자라고 손을 들어줬다. 그 판단기준으로는 이른바 ‘ABC 테스트’를 채택했다. ABC 테스트란 노무 제공자를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ABC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 그가 시장에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 독자적으로 거래하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독립계약자로 보는 방식이다. 이듬해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이 판결 내용을 반영한 법안(AB5)을 논란 끝에 통과시켰다. 지난해부터 이 법이 시행되자 주 정부는 즉각 후속 조치에 돌입했다. 

오분류 시정 명령을 받게 된 플랫폼 기업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우버, 리프트 등은 주민투표를 발의하고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이들은 독립계약자 지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자신들이 약속한 일정한 혜택들을 추가적으로 누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의 주민발의안 제22호는 지난해 11월 주민투표에서 58.43%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한껏 고무된 우버 CEO는 이러한 모델의 입법을 미국 전역에서 추진하겠다고 호언했다. 이번 결과는 AB5와 유사한 내용으로 입법을 준비하고 있던 미국의 다른 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플랫폼 노동 규제에도 큰 우려를 끼치고 있다.

최근엔 ‘회색지대론’이 주목받고 있다. 회식지대론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고용 형태나 작업 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전통적 근로자와는 달라 기존 노동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중간 영역, 이분법적 분류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전제한다. 이에 절충적인 지위를 만들어 부분적으로나마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현재 상태보다 나은 진전(+)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핵심은 사실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 적용에서 공식적으로 제외시키는(-) 데 있다. 플랫폼 기업은 불확실한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질지 모르겠지만, 그 후에 ‘이제까지 없었던’ 권리나 보호의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기업은 사회안전망을 흉내 낸 사이비 복리후생을 당근으로 제시하지만, 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선언한 조건이 과연 공정한 등가 관계에 있는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노동자가 그 조건을 변경할 수도 없다. 이는 승률이 희박한 위험한 도박으로 플랫폼 노동자를 내모는 것이다. 근로자로서 법적 보호를 누릴 수 있는 지위는 그 실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임의로 거래해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입법을 통해 제3의 지위를 창설하는 것 역시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깡(cashing out)’하는 것에 불과하다.

 

AB5 법안이 주목받는 이유

국내에서 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배달·운송 서비스 분야는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근로자성이 강하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노동법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아직 불거지지도 않은 플랫폼 노동의 다른 영역에 대한 미지의 걱정으로 물타기해 일찌감치 제3의 지위로 후퇴할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플랫폼 종사자’라는 특수한 지위가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를 두텁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근로자성 판단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기존 방식 속에선 플랫폼 기업은 사업모델을 간단히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노동법상 책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플랫폼 노동뿐만 아니라 종속적 자영업자 전반에 대해 미국의 AB5와 같은 근로자 추정 및 자영업자 판단 징표의 활용 방식을 적극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플랫폼 노동이라고 새 이름표를 달았지만 그 실질은 근로자인 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보호를 할인하는 입법이 아니다. 이미 갖고 있는 권리를 명백하게 확인하고 집행권원을 발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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