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공무원의 거액 장학금 기부 논란…곤혹스런 강진군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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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급 사무관 승진자, 고액 장학기금 기탁 ‘구설’
“다시 찾아가라” vs “순수한 기부 뜻 왜곡 말라”

전남 강진군이 최근 한 5급 사무관 승진 공무원이 거액을 강진군민장학재단에 기탁하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당사자는 “자발적 기부”라는 입장이지만 석연찮은 시선을 받고 있어서다. 군은 즉각 기탁 취소를 권유하며 논란 진화에 애쓰고 있으나 당사자가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좀처럼 논란의 불길이 잡히지 않는 모양새다. 

강진군청 전경 ⓒ강진군
강진군청 전경 ⓒ강진군

5급 사무관 승진자 2000만원 기부에 ‘군청 발칵’ 

2004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황주홍 전 군수는 취임하자마자 ‘교육발전팀’을 신설했다. 당시 강진에 5개 고교가 있었는데 모두 미달 사태를 빚고 있었다. 황 전 군수가 인구 증감에 대해 확인해 보니 하루에 학생 50~70명이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가고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강진군민장학재단’ 설립이었다. 

2005년 문을 연 장학재단에는 자발적인 성금이 줄을 이었다. 한 명당 이발료로 5000원을 받는 이발사가 300만원을 내놓는가 하면 경로당에서 500원, 1000원을 모아 수십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황 군수는 장학재단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성금을 낸 모든 기부자들을 군청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지금도 강진군은 매달 기부자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한때 농촌지역 군 단위 지자체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200억원대(현재 170억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조성했다. 관내 5개 고교에 집중적으로 기금을 지원하면서 정원미달에 허덕이던 고교가 3년 만에 모두 정원을 넘겼다. 이중 강진고는 6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는 등 전남 남부권 명문고로 성장했다. 골칫거리였던 인구 유출이 줄고, 오히려 전입자가 늘어나는 반전의 계기가 됐다.  

 

“선행이냐, 거래냐”…뒷담화에 강진군 ‘당혹’

그런데 최근 이 ‘효자’ 장학재단에서 때 아닌 ‘고액기탁’이 구설에 올랐다. 26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강진군청 내에선 통상 5급 사무관 승진 시 100~200만원, 4급 서기관 승진 시 300여만원 상당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등 지역인재 육성에 앞장서는 자발적 기부문화가 마치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올해 1월 1일자로 단행된 승진인사에서 일부 5급 사무관 승진자와 4급 서기관 승진자, 공로연수자 등은 자발적으로 각각 100~500만원의 장학기금을 냈다. 앞서 같은 해 7월 1일자로 단행된 강진군 승진인사 발표 후에는 4급 1명, 5급 2명, 6급 5명의 승진자 전원, 6급 승진자 일부, 모범공무원 표창 수상자 2명과 강진출신 신규임용자 1명 등이 1800만원의 장학금을 장학재단에 기탁했다. 

이외에도 매달 자동이체로 5000원에서 1만원을 장학기금을 기탁하는 공무원들이 113명에 이르며, 지난해 7월 한 달에만 총 139명이 동참해 4900만원을 강진장학재단에 기부하는 등 앞장서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사달은 올해 초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한 공무원 A씨가 익명으로 2000만원을 군민장학재단에 기부하면서 났다. 이는 통상적인 기탁 수준을 넘는 고액으로, 조직 내 위화감 조성은 물론 군청 안팎에서 선행과 거래 사이를 오가는 여러 추측성 말들이 나오는 빌미가 됐다. 말이 기탁이지 사실상 승진 성사 후 ‘대가’로 치른 일종의 ‘뇌물성 기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시선도 있다. 

 

“12년 전 악몽 재현될라”…강진군 ‘촉각’ 

강진군은 뜻밖의 고액 장학기금 기탁 논란이 터지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이번 논란으로 장학기금 기부와 승진 인사, 공사 업체 간에 대가성 등 유착 의혹이 부각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군과 승진자, 공사업체 간에 사전에 승진 내지 공사수주 대가를 장학금 쾌척으로 약속했다면 황주홍 군수 시절의 장학금 기탁 관련 감사원 감사와 수사기관 수사 대상에 올랐던 악몽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며칠 전 강진군장학재단 운영실태 전반을 들여다보기 위해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한 12년 만에 감사원 감사 착수도 강진군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군 관계자는 “기부자의 자발적 기탁이지, 결코 어떤 대가를 조건으로 한 기금 조성은 없었다”고 펄쩍 뛰었다. 

강진군은 장학기금 조성과 관련 ‘잊지 못할 흑역사’가 있다. 2009년 이후 이미 3차례 감사원 감사와 2차례 경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어서다. 감사원은 2009년 9월과 10월 각각 이틀, 사흘씩 강진군을 감사한 데 이어 이듬해 3월에도 열흘간 강진군을 감사했다. 경찰 또한 2010과 2011년 두 차례 수사에 나서 내사 종결과 검찰에 의해 기소유예 처리됐었다. 당시 광주경찰청의 수사는 국가기관의 자치단체에 대한 감사·수사로는 무려 다섯 번째여서 뭔가 사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외부기관 교육에 참가 중인 A씨는 지방공무원의 꽃인 사무관 승진에 대한 순수한 감사의 뜻에서 장학금을 낸 만큼 취소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진군 관계자는 “A씨에게 여러 차례 반려를 제의했으나 당사자가 ‘기부의 순수한 뜻을 왜곡 말라’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거부했다”며 “2005년 장학재단설립 이후 공무원 승진자들 사이에 자율적으로 기부 문화가 이뤄져 왔다는데 논란이 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A 사무관에게 고액기탁 배경 등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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