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은 비겁했고, 김종철은 정직했다”
  •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imibooks@nate.com)
  • 승인 2021.01.29 10:00
  • 호수 16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기 두 사람의 가해자가 있다.

한 사람은 60대의 공무원, 어느 여름날 그는 사라졌다. 실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복 차림의 그가 서울의 어느 등산로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이별했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나는,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어느 날 갑자기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는지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알까? 자신의 상관이 왜 사라졌는지 안다고 말한 비서가 있었던가? 그가 남긴 마지막 글, 그의 유언이라고 추정되는 쪽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뭐가 죄송한데? 없다. 아무런 설명도 없다. 아무런 사과도 변명도 없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한 마디도, 한 글자도 없다. 그냥 죄송한 그는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서울 시정을 책임졌던 사람이 왜 그렇게 급하게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의 모든 것은, 그의 최후는 소문과 신비에 싸여 있다.

박원순의 시낭송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생전에 그를 알던 한 사람으로서 그에 대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시 《선운사에서》는 그의 애송시였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시라고 그는 내게 말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을 낭송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 어른거린다. 그가 사라지기 석 달 전에 내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또 보았다. 거기서 어떤 실마리를 찾으려고,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서. 내 시가 그의 극단적인 선택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처음 며칠 나는 괴로웠다.

죽을죄는 아니지만 그는 잘못을 범했다. 그는 죽었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의 죽음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우리는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 권리가 있다. 서울 시민들은 서울시장이 왜 자신들을 버렸는지 알아야 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여기 그와 다른 가해자가 있다.

어느 정당의 대표인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추한 행동을 했는지 우리는 안다. 그가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게 글로 써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아주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로 그는 머리 숙여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당원과 국민 여러분에게도 깊은 사과의 말을 남겼다. 시간과 장소를 특정해 1월15일 저녁 여의도에서 차량을 기다리며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밝히고, 당기위원회에 자신에 대한 ‘엄중한 징계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1페이지 남짓한 그의 입장문에는 ‘사죄’라는 단어가 4번, ‘죄송’이 2번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졌다. 어떤 변명이나 자기연민도 없는 충분한 사과였다. ‘정의’라는 이름을 내세운 정당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내게 충격이었지만, 충격의 시간이 지나 그의 입장문을 읽은 뒤 나는 안도했다.

 

포르노만 있지 건강한 에로티시즘은 실종된 사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성추행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도사렸는지를 말해 준다. 머리로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이지만 한국 남자들 의식의 깊은 곳에는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잔재가 남아 있다.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유교적 가치관, 오로지 입시에만 매달리는 교육도 성범죄를 부추긴다. 사춘기에 자유롭게 남녀 교제를 하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도 여자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며 왜곡된 방식으로 욕망을 해결한다.

21세기 IT 강국인 한국. 초고속 성장의 시계 밑에서 일벌레가 된 남자들은 삶을 즐길 줄 모른다. 포르노만 있지 건강한 에로티시즘은 실종된 사회. 성공한 한국 남성들의 상당수가 돈과 권력 그리고 섹스가 아닌 인생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성폭력은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그가 속한 조직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건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다른 정당에서는 성추행이 없었을까?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다들 쉬쉬하고 덮으려는 사건을 공개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한 정의당에서 나는 오히려 희망을 본다.  

어떤 신비도 도피도 없는 진정 어린 사과에서 희망을 보다

어떤 신비도 비밀도 도피도 없는 그의 진정 어린 사과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그는 비겁했던 전직 시장과 달리, 자신의 잘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한 발짝도 도망가지 않았다. 어떤 모호한 말도 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을 속였을지언정 자신을 속이지는 않았다. 한순간의 잘못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그를 더는 비난하지 말자. 정의당에 대한 비난을 멈추자. 그들은 (비록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을 다했다.  

두 사람의 가해자가 있었다. 산속으로 사라진 사람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한 사람. 누가 더 어른다운 어른인가. 서울시장이었던 가해자와, 정의당의 대표였던 가해자를 구분하는 것은 ‘반성 능력’이 아닐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던,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죽음으로 도피했던 박원순은 비겁했고, 김종철은 정직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성추행을 범했을지언정 김종철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성폭력 생존자인 그녀들, 정직하고 용감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기 두 사람의 피해자가 있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그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 얼굴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 이름을 알려고 하지 말자.

여기 또 다른 당당한 피해자가 있다. 그녀는 현직 국회의원이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안다. 그녀에게 그날의 모든 것을 말하라고 요구하지 말자. 그녀는 모든 것을 말할 의무가 없다.

그녀들은 닮았다. 성폭력 생존자인 그녀들은 정직하고 용감했다. 상처를 직시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그녀들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말해야 자유로워진다.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최영미는 누구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다시 오지 않는 것들》,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청동정원》을 출간했고, 산문집 《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일기》《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화가의 우연한 시선》《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아무도 하지 못한 말》이 있다.

미투 이후 2019년 이미출판사를 설립하고 시 《괴물》이 수록된 6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최초의 영문시선집 《The Party Was Over》를 펴냈다.

2006년 시집 《돼지들에게》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시 《괴물》 등 창작활동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과 남성 중심 권력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시켜 성 평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을 받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