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조용한 호남 광주 방문’…“신선한 충격 줘”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1.3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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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광주방문, 이낙연 호남공략 견제·민심 잡기 ‘양수겸장’
코로나19 확산에 대중접촉·정치 자제하며 ‘대권사업 투자’
‘나홀로 5·18국립묘지 방문 풍경’…정중동 지역민심에 파문 던져

여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모처럼 ‘광주 나들이’에 나섰다. 지난해 5월 5.18 행사에 참석한 이후 8개월만이다. 이재명 지사의 공식적인 방문 목적은 29일 오후 2시 광주시청에서 열린 ‘인공지능헬스케어 플랫폼 구축 사업’ 협약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광주시, 경기도, 부산시가 함께 추진하는 이 사업의 참여자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이 지사는 최근 광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탓에 대면 접촉을 자제하며 최대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협약식 하루 전날인 28일 광주에 도착한 뒤 오후 늦게 눈이 많이 내리는 가운데 광주 북구 운정동 5·18 국립민주묘지를 홀로 참배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8일 오후 눈 내리는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이재명 지지자 모임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8일 오후 눈 내리는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광주시민 제공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8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홀로 참배했다. 이 지사가 참배 직전 작성한 방명록. ⓒ시사저널 정성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8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국립민주묘지를 홀로 참배했다. 이 지사가 참배 직전 작성한 방명록. ⓒ시사저널 정성환

정치적 행보는 자제…5·18국립묘지는 홀로 참배

당초 ‘협약식’에 참석하기 전 국립묘지를 참배하려다가 최근 심각한 광주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상황을 감안해 전날로 일정을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의 이 지사 지지모임 한 인사는 “협약식 행사 전날 광주에 오는 방안도 직접 결정했다”고 말했다. 협약식 이외의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광주에 왔는데 5·18 영령께 당연히 인사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지사가 홀로 묘지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이 지사는 이날 참배에 앞서 국립묘지 관리사무소 방명록에 ‘나의 사회적 어머니 광주, 언제나 가슴속에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지사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광주는 자신의 마음의 스승이자, 고향이라고 밝혀왔다. 신묘역과 구묘역을 30여분 간 머무른 뒤 돌아갔다. 

이 지사는 협약식 이후 열려던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와 윤상원 열사 생가 방문, 지지자들과의 만남도 취소했다. 대신 29일 오전 비공개 일정으로 광주 남구 양림동에 있는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해 5·18 유가족들과 30여분 동안 면담했다. 오월어머니집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남편과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광주방문 때마다 자주 찾는 곳으로, 이날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이후 이 지사는 마지막 일정으로 광주 서구 쌍촌동 천주교 광주대교구청에서 김희중 대주교를 예방하고 면담 뒤 광주를 떠났다. 이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상황을 감안해 시장방문 등을 통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그의 지론인 ‘대동세상’과 ‘광주의 사회적 어머니론’ 등과 맥이 닿아있는 광주 민주세력의 마음을 잡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국립민주묘지 입구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지하는 모임이 내건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국립민주묘지 입구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지하는 모임이 내건 현수막. ⓒ시사저널 정성환

이 지사 측은 줄곧 1박 2일간 광주방문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업무상 방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남민심 잡기’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고 보는 시각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그의 방문은 호남권 민심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시기에 이뤄져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광주 광천동 고속터미널과 5·18 국립묘지 인근 도로변 등 시내 곳곳에 내걸린 지지자들의 ‘광주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과 연결지어 볼 때 ‘광주방문’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최근 광주에서는 이 지사의 지지조직이 결성되고, 더불어민주당 민형배(광주 광산을) 의원이 지지선언을 하는 등 지지세가 결집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역정가 “광주방문, 이낙연 호남공략 제어 효과” 

무엇보다 광주전남의 경우 타 지역보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어 대선 일정이 다가올수록 전략적 가치가 증대할 수밖에 없는 정치지형의 한복판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역 정가에선 그의 광주방문이 내년 ‘대사(大事)’를 위한 사전 투자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경기도가 광주시, 부산시 등과 함께 협력사업 파트너로 참여함으로써 행정가로서 면모를 과시하고, 미래를 기약한 ‘대권(大權)사업 투자’라는 사전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지사도 협약식 행사가 끝난 뒤 시청 1층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호남의 전략적 가치’ 중요성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방문은 업무에 관한 것이다”면서도 “영남의 정치적 지향, 호남의 정치적 의사 결정이 수도권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개혁 진영에선 광주 또는 호남이 엄청난 정치적인 결정권을 가진 게 역사적인 사실이고 지금도 그것이 현실이다”고 부연했다.

1월 29일 오후 이재명 경기지사가 광주시청에서 열린 인공지능헬스케어 플랫폼 구축 결성식 참석을 마친 뒤 시청 1층 로비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월 29일 오후 이재명 경기지사가 광주시청에서 열린 인공지능헬스케어 플랫폼 구축 결성식 참석을 마친 뒤 시청 1층 로비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정가 관계자들은 이번 방문이 대권 라이벌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호남 공략을 제어하는 효과도 어느 정도 얻은 것으로 봤다. 경쟁자인 이낙연 대표의 호남민심 공략 효과를 감쇄시키고, 자신의 대권후보로서 이미지를 제고시켰다는 것이다. 열흘 전, 이 대표는 텃밭이자 정치적 고향인 광주를 찾아 양동시장을 방문하는 등 바닥 민심을 훑었다. 반면에 현직 경기도지사인 이 지사는 광주에서 뚜렷한 정치행사를 갖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3개 광역자치단체 간 협력사업 추진으로 수도권과 영호남 간에 상생 모습과,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나홀로 눈 내리는 5·18 국립묘지 방문 풍경을 깜짝 연출했다. 그의 5·18 국립묘지 참배는 대선을 향한 당연한 수순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 모습은 정중동이던 지역 민심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지역정가의 한 인사는 “이 지사는 이번 방문을 통해 전략적 요충지인 광주에서 호남민들에게 내년 대선 가도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는 점을 가시적으로 보여줬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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