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좁은 김민재, ‘유럽 센터백’ 숙원은 언제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6 12:00
  • 호수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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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으로 유럽 이적시장 얼어붙어…올 시즌 종료 후 ‘마지막 희망‘

한국 시간으로 2월2일 오전 8시, 유럽 축구의 겨울 이적시장이 셔터를 내렸다. 벨기에의 신트트라위던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던 이승우가 극적으로 포르투갈의 포르티모넨스로 임대 이적한 것 외에 나머지 한국 선수들의 이동이나 신규 진입은 없었다. 지난여름 이적 후 RB 라이프치히(독일)에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황희찬은 웨스트햄(잉글랜드) 임대를 추진했고, 발렌시아(스페인)에서 행복하지 못한 이강인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적 루머가 나왔지만 현실화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김민재는 이번에도 중국 슈퍼리그에 남게 됐다. 베이징 궈안 소속인 김민재는 지난여름에 이어 이번에도 유럽 진출을 타진했지만 이적시장이 열려 있는 동안 본격적인 이적설은 없었다. 토트넘(잉글랜드),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 라치오(이탈리아) 등과 협상까지 진전됐던 여름 이적시장과 달리 이번에는 토트넘·첼시(잉글랜드)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도만 확인됐을 뿐, 본격적인 이적 협상 테이블은 차려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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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으로 유럽 구단들 지갑 모두 닫아

가장 큰 이유는 5개월 사이 더욱 위축된 유럽 축구계의 상황 때문이다. 올겨울 유럽 축구 이적시장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여름만큼 활발하진 않아도, 각 팀들이 시즌을 치르며 노출된 문제점을 해소하는 전력 보강을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열 수 있는 시기지만 다들 소극적인 세일즈에 그쳤다. 우수한 선수를 사지도, 또 팔지도 않는 소강 상태였다. 선수 영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지출을 최소화하는 임대 이적을 활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항이 가장 크다. 영국의 ‘스카이스포츠’에 따르면 올겨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개 팀이 선수 영입을 위해 지출한 총 금액은 130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최근 다섯 시즌 동안의 겨울 이적시장 거래 중 가장 적다.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전인 2020년 1월과 비교하면 3분의 1, 2018년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코로나19는 구단들의 재정 상황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이상 스페인)와 함께 세계 최고의 인기 구단이라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는 회계연도 재무제표상으로 1년 사이 1100억원의 수입 감소가 발생했다고 알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봉쇄 조치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지속되며 티켓 판매 등의 수입이 줄어들었다. 중계사와 후원사들이 받는 재정 압박은 구단들에 고스란히 연결된다. 

선수 개인으로 보면 황희찬이 속한 라이프치히로 이적한 헝가리 국가대표 미드필더 도미니크 소보슬라이가 기록한 2600만 유로(약 350억원)가 최대 이적료였다. 그나마도 지난 1년간 시장에서 언급되던 소보슬라이의 이적 예상 금액에서 반 토막 난 것이었다. 1년 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포르투갈 국가대표 미드필더 브루노 페르난데스가 기록한 760억원의 이적료가 최고 기록이었다. 

이런 상황은 유럽 진출을 원하는 김민재에게 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유럽의 빅클럽마저 큰돈을 쓸 수 없는 사정이지만 베이징은 여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적료를 요구했다. 베이징이 요구하는 김민재 이적료는 여전히 1000만 유로(약 135억원) 수준이다. 사실상 안 팔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겨울에 유럽 전체를 통틀어 1000만 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는 15명뿐이고, 센터백은 그중 한 명도 없다. 센터백 포지션에서 가장 높은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는 브라질 산토스에서 포르투갈의 벤피카로 이적한 루카스 베리시모인데 650만 유로(약 88억원)에 불과했다. 

중국 슈퍼리그의 달라진 환경도 김민재의 유럽 진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국축구협회는 지난해 12월 특별 정책 컨퍼런스를 열고 새로 도입할 규정을 발표했다. 국내외 선수 연봉 상한선과 구단 총지출을 제한하는 샐러리캡 도입이 골자였다. 지난 10년간 슈퍼리그에서는 무분별한 경쟁으로 과도한 지출을 감행하는 팀들이 속출했다. 우승 경쟁권 팀들은 연봉 200억원이 넘는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고, 연간 2000억원을 훌쩍 넘는 예산을 썼다. 광저우 헝다, 상하이 상강 등이 클럽 축구에서 아시아 정상권으로 뛰어오르는 소기의 성과는 냈지만, 정작 대표팀은 월드컵·올림픽 등 각급 대표팀 레벨에서 나아진 게 없었다. 브라질 국적의 유명 선수들을 귀화시켜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합법적 편법’까지 동원했지만 효과는 적었다. 

게다가 슈퍼리그 팀들의 모기업은 대부분 국영공사와 건설·부동산 기업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으며 현재 같은 흐름에서는 파산하는 구단이 속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5분의 1 수준도 쓰지 않는 K리그의 효율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중국축구협회는 자국 선수들의 연봉은 최대 500만 위안(약 8억원), 외국인 선수는 300만 유로(약 40억원)로 묶었다. 외국인 선수들의 총 합계 연봉은 최대 1000만 유로(약 132억원)다. 

이런 중국 슈퍼리그의 급진적인 정책으로 인해 그동안 고액 연봉을 받기 위해 중국행을 택하던 외국인 선수들은 유럽 혹은 중동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유럽 구단들로서는 중국에서 뛰던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 굳이 1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김민재를 영입할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슈퍼리그 팀들 입장에서는 제한적인 연봉 제도에서 기량이 검증된,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우수한 선수를 더 선호하게 됐는데 김민재는 그 기준에 부합하는 선수다. 2019년 전북에서 베이징으로 이적한 김민재는 유럽과 남미에서 온 외국인 공격수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형 수비수다. 게다가 그의 연봉은 샐러리캡에 해당하는 4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입장에서는 확실한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김민재를 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민재와 베이징의 계약, 올 시즌 끝으로 종료

유럽 클럽들의 미온적 관심, 그와 대비되는 베이징과 중국의 급박한 상황은 결국 김민재의 유럽 진출을 또다시 좌절케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시 유럽 진출의 기회는 올까? 일단 김민재와 베이징의 계약은 올해로 종료된다. 베이징 입장에서는 올여름이 김민재 영입 당시 투자한 이적료 약 70억원을 회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해소되지 않는 한 올여름에도 유럽에서 그 정도 이적료를 지불하는 건 어렵다.

반대로 선수 입장에서는 1년만 버티면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떠날 수 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의 탈출이지만, 김민재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시간이다. 1996년생인 그는 이제 만 25세가 됐다. 손흥민이 맹활약하며 아시아 선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지만, 여전히 유럽 축구계는 가급적 어린 선수를 데려와 성장시키고 검증하는 방식을 원한다.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으며 군 문제를 해결했다 쳐도 20대 중반의 아시아 선수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유럽 진출 시점이 점점 늦춰지며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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